지난 9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영업점에서 투자자들이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 신청 및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화폐의 실질 가치는 물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1억 원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현재 예금은행 신용대출 이자는 연 3%가량이다. 하루 8200원꼴이다. 이보다 수익이 더 확실히 날 확률이 아주 높다면 차익거래(Arbitrage)에 도전할 만하다. 요즘 공모주 시장이다.
유동성 장세에서의 IPO를 보면 대체로 상장 시초가가 공모가를 웃돈다. 공모가는 보통 비교대상 기업의 밸류에이션(가치평가)보다 20~30% 할인된다. 증권사들의 초기 적정주가도 대체로 이 선이다. 청약에서 청약금 환급까지 3일 남짓이다. 이론적으로 2만 원이면 1억 원을 빌릴 수 있다.
공모가 4만 9000원이던 SK바이오팜의 상장 후 최고가는 26만 9500원이다. 평균주가는 18만 원이다. 개인이 자기자금 1억 원과 빌린 돈 1억 원 등 2억 원을 청약했다면 24주가량을 받았다. 117만 6000원을 제외한 청약금은 돌려받는다. 상장 후 평균주가인 18만 원에 매도했다면 수익금만 314만 4000원이다. 1억 원을 빌리는 비용 2만 원을 빼고도 312만 원 이상 남는다. 3일간 1억 원으로 312만 4000원을 벌었다면 연환산 수익률은 380%가 넘는다. 같은 가정으로 카카오게임즈에 적용해도 상장 후 주가가 9% 이상만 올라도 차입비용 2만 원을 제외하고 5만 원이 남는다.
청약금액이 클수록 주식을 더 많이 배정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수익도 커진다. 금융투자협회 규약으로 상장시 공모 물량 배분은 우리사주 20%, 일반투자자 20%, 기관투자자 60%가 보통이다. 개인들은 일반투자자 물량이 너무 작은 것이, 기관투자자들은 개인투자자의 무임승차가 못마땅하다.
기관투자자는 공모가 결정 과정인 수요예측에 참여한다. 초기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더 많은 물량을 배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논리다. 일반투자자 최소배정비율 자체의 철폐까지 주장한다. 올해 초 금융위원회는 기관이 상장 전 공모 물량을 전량 가져가는 ‘코너스톤 인베스터’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었다.
최근 개인들의 불만은 한발 더 나간다. 청약증거금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자산가들은 증권사 우대조건에 해당돼 청약배율이 높다. 대형주 상장은 복수의 주관사를 쓰는데, 여러 증권사에 계좌를 보유한 자산가들에 유리하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는 일반 투자자에 배정된 공모주 20% 중 절반을 소액 청약자 우대, 추첨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매도에 이어 공모주까지 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여론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금융위는 최근 공매도 금지를 6개월 연장하면서 제도개선도 약속했다.
일반투자자 내 배정비율을 조정해도 큰 부자들이 더 유리한 상황은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고액자산가들은 헤지펀드나 일반법인까지 동원할 수 있다. SK바이오팜 수요예측에는 보면 98억 주 공모에 1076개 기관이 참여했는데 헤지펀드가 포함된 자산운용사가 454곳 45억 주로 가장 많았다. 일반법인이 포함되는 기타가 272곳 27억 주였다. 카카오게임즈 수요예측에도 167억 주 공모에, 1745곳이 참여했는데 자산운용사가 621곳 61억 주로 가장 많았다. 역시 기타가 477곳 49억 주로 두 번째로 많았다.
초저금리로 유동성 장세가 계속된다면 공모주시장에 계속 돈이 몰릴 것이 뻔하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해외에서도 풍부한 유동성을 노린 주식공모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에서는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다음 주자다. 글로벌 투자자 관심도 높아 주가상승 잠재력이 카카오게임즈보다 높다. 청약금액 신기록을 다시 쓸 가능성이 크다.
한편 워낙 천문학적 자금이 움직이는 만큼 반환된 청약금의 행방도 관심이다. 지난 6월 23일과 SK바이오팜 청약 이전 47조 원 수준이던 고객예탁금은 이후에도 크게 줄지 않았다. 되레 7월 이후 예탁금은 가파르게 늘어 8월말 60조 원도 돌파했다. 청약 열풍이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SK바이오팜 청약 마지막 날인 6월 24일 코스피를 순매수하던 개인이 72억 원 순매도로 돌아섰다. 이어 6월 25일 개인은 코스피에서만 1조 3000억 원 넘는 순매수를 보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5월 4일 1조 7000억 원 이후 역대 두 번째 기록이었다. 카카오게임즈 청약 마지막 날인 지난 3일에도 개인은 코스피를 1196억 원 순매도했다. 카카오게임즈 주관사였던 삼성증권 통계를 보면 청약 후 환불금을 돌려받기 위한 계좌로 은행계좌를 지정한 고객 비중은 12%에 불과했다. 나머지 88%가 증시 대기자금으로 남는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