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오른쪽)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에 서명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대 정원 15년째 연간 3058명
사실 의료진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의학대학 정원 확대는 오랫동안 이어진 논란이다. 그때마다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했고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5년째 연간 3058명이다. 의대 정원을 둘러싼 논쟁은 의료계 파업 때마다 이슈가 됐었다. 2000년 의약분업 관련 의료계 파업 당시 의대 정원(3258명)의 10% 감축이 합의돼 차츰 줄어 2006년 3058명이 된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공공의대의 경우 2018년 서남대 폐교로 해당 의대 정원을 공공의료 전문가로 키우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본격화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졌다.
지난 7월 9일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 자료를 내놨는데 여기에는 2022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늘려 10년 동안 의사 4000명을 양성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또한 ‘지역의사제 특별 전형’ 방식으로 지역의사를 뽑는 방식도 있다. 이처럼 의대정원 확대와 동시에 공공의대 설립 추진이 핵심이다.
이에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결국 의료계 집단휴진 사태로 이어졌다. 8월 21일부터 시작된 의료계 집단휴진은 9월 4일 정부여당과 의협이 최종 합의에 이르면서 보름여 만에 일단락됐다. 합의문에는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추진 중단 △의료현안을 의제로 하는 의정협의체 구성 △의정협의체에서 4대 정책(의대 증원,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논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보건복지부와 의협 상호 공조 △진료 현장 복귀 등 5가지 사안이 담겼다.
8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며 단체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의료계 향한 비난 여론 거세
이렇게 의료계의 집단휴진은 마무리됐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과 의료계는 모두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우선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분노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9월 1일 성명서를 통해 “(의료계) 파업은 무책임한 집단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전공의 1차 파업 당시인 8월 7일로 담낭암 수술이 예정됐었지만 사흘 연기된 환자의 사례를 발표했다. 이 환자는 7일 오전 10시부터 복통·가래 등을 호소했지만 간호사만 있을 뿐 의사는 없었다. 오후 4시쯤 만난 의사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밝혔지만 다음 날 새벽 호흡곤란을 보였고 현재는 식물인간 상태다. 환자의 가족은 집단휴진 등에 따른 의료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술 등의 각종 의료행위가 연기된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는 ‘엄마의 암 수술이 연기됐다’는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부가 8월 31일 집단휴진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열자 그날 47건, 9월 1일 57건의 신고가 들어왔을 정도다.
시민단체들도 의료계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9월 3일 국민주권연대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등이 최대집 의협 회장을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안전사회시민연대 등 12개 시민사회단체도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과대학 교수들이 전공의들의 진료 거부를 부추기고 있다고 규탄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도 3일 성명을 통해 “도를 넘은 의료계 집단행동은 정부를 굴복시킬 수는 있어도 실추된 국민의 존경과 신뢰는 더는 회복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9월 1일 페이스북을 통해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를 비교하는 카드뉴스 형식의 자료를 공개했다. 사진=의협 의료정책연구소 홍보자료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낸 카드뉴스 형식의 자료가 결정타가 됐다. 9월 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의사 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라는 글과 함께 올라온 자료였다.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를 비교하고 ‘수능 성적으로 합격한 일반의대 학생’과 ‘시민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한 공공의대 학생’도 비교했다.
또한 ‘환자가 많은 의대병원에서 수많은 수술을 접하며 수련한 의사’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지방의 공공의대에서 수술은 거의 접하지 못한 의사’를 비교하며 상황에 따라 고르라는 질문들이었다. 이로 인해 의료계의 엘리트주의를 지적하는 여론이 팽배해졌고 결국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2일 오후 문제가 된 게시물을 삭제했다.
#대통령 편 가르기 논란
정부여당 역시 상처를 입었다.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야당에선 감염병 극복에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에 정책 효과를 바로 가질 수도 없는 의료인력 양성 정책을 의료계 상의 없이 추진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의료계의 집단휴진 중단을 촉구하면서도 정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간 것이다.
특히 공공의대를 설립하면 시·도 지사나 시민사회단체가 입학생 선발 추천권을 갖게 된다는 얘기가 알려지면서 의료계는 물론이고 시민들의 반발도 거셌다.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난 여론이 급증했고 ‘공공의대 게이트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정부와 협의해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공의대법에도 시·도 지사, 시민단체 선발권 관련 언급이 아예 없다.
문제는 이런 가짜뉴스 논란을 자초한 게 바로 보건복지부라는 점이다. 논란의 시작은 ‘시·도별로 학생을 일정 비율 배분해 선발한다’는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방안과 기존 의대생 대상 ‘공중보건 장학제도’의 시·도 지사 추천 관련 설명이 섞이면서 불거졌다. 그런데 이를 해명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24일 제작한 카드뉴스에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중립적 시·도 추천위를 구성해 각 시·도에 배정된 인원의 2~3배수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선발해 추천하도록 할 예정”이란 표현이 들어가 논란이 확대됐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오인되게 한 점에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오인되게 한 점에 송구하다”며 “입학생들을 공공의료 목적에 맞도록 선발하는 과정에 대한 여러 대안으로 논의되던 내용 중 일부가 잘못 게재된 것으로 설명 자체가 부적절했다”고 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파업 의사들 짐까지 떠맡은 간호사 헌신에 감사하다”며 SNS에 올린 메시지는 편 가르기 논란에 휘말렸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이 “의사와 간호사를 편 가르기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누구를 적으로 돌릴 셈이냐”고 지적하는 등 야당에서 비난이 이어졌다.
야당의 편 가르기 공세에 일부 언론에서 해당 글을 실제 작성한 것은 청와대 기획비서관실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또 거센 비난이 이어졌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 참 구차하다. 칭찬 받을 때는 본인이 직접 쓴 것이고 욕먹을 때는 비서관이 쓴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