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한병원의사협의회 홈페이지 캡처
일요신문 취재 결과, 병의협 내에서 ‘미투’ 폭로를 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의사 A 씨에게 검찰이 6월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주신구 병의협 회장도 A 씨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마찬가지로 7월에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앞서 A 씨는 지난해 12월 SNS를 통해 병의협 임원 B 씨에게 스토킹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병의협에 여러 심적 서포트를 받아 그동안 이사로 일했다”며 “허나 2년가량 유부남인 임원 B 씨의 질척거림을 받아왔다. 병의협 회장에 일을 같이 하기 어려워 조직 내에서 정리를 해주시고자 부탁드렸다. 그런데도 계속되는 상황에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지속됐다. 이에 패닉이 와서 정신적 충격이 컸고 그 임원과의 SNS 메신저를 (병의협 임원진) 단톡방에 올려 폭로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결과 제가 말할 수 있는 루트가 모두 차단됐다. 다른 이사님께 들려오는 이야기는 제가 사퇴한다는 소식이었다. 저는 회무에서 배제된다는 이야길 들었다”며 “(회장은) 제가 경솔하게 행동한 것이며 미투는 조직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일이고 제 개인적인 힘듦을 단톡에 이야기한 것으로, 모든 것을 개인적인 잘못으로 몰고 갔다”고 폭로했다.
문제는 A 씨가 병의협에 직접 스토킹 피해를 호소했음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가 공간상, 업무상, 인사상 분리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즉, 두 사람 사이에 실질적 분리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A 씨는 “B 씨는 나의 상사이자 실질적인 결재권자였다. 자주 얼굴을 볼 수밖에 없는 관계다. 미투를 하기에 앞서 회장님에게 피해 내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구했다. 당시 회장님께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B 씨는 ‘아무 말도 못 들었다’고 했고 어쩔 수 없이 미투를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이 사건을 뒤로 병의협을 떠났으나 B 씨는 계속해서 임원직을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B 씨는 A 씨가 주장한 것이 ‘허위 미투’라며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러나 검찰은 “A 씨의 글에 고의성 및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며 6월 30일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병의협 측도 “협회를 성희롱 미투 억압단체로 낙인을 찍은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A 씨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며 도움을 청하자마자 피해자는 가해자와 협회 양쪽에게 고소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두 건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반면 A 씨가 미투를 함으로써 오히려 업무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검찰은 주 회장이 A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건에 대해 “A 씨의 미투 이후, 병의협이 미투 사건의 피해자인 A 씨를 업무에서 배제하고 비공식적으로 사퇴를 통보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며 “A 씨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게시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업무방해에 대해서도 검찰은 “A 씨는 미투를 통해 병의협의 미투 피해자 처리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하였던 것이지 업무를 방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7월 21일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A 씨는 최근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근거로 주 회장과 B 씨를 고소했다. 그는 “협회가 권력을 이용해 피해자 개인의 입을 막으려고 했던 것과 다름없다”며 “2020년 상반기 동안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보수적인 의사 세계에서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럽다. 다만 비슷한 일이 다른 여성 의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에, 그들이 언제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선배로서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병의협의 요구에 따라 공식 메일을 통해 관련 질의를 남겼으나 병의협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대신 “실명 보도나 본회 언급 또는 본회 유추되는 소송 내용 등 허락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보도는 자문 변호사를 통해 대응할 예정”이라고만 답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