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상소문 형식의 올라온 ‘진인 조은산이 시무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게시물.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스스로를 ‘진인 조은산’이라고 밝힌 30대 후반 두 아이의 평범한 가장은 8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금, 인사, 경제 정책 등을 분야별로 비판한 글을 올렸다. 조선시대 조정 대신이 왕에 올리는 상소문 형식이다.
진인 조은산은 ‘시무 7조’를 통해 “백성은 정치 앞에 지리멸렬할 뿐 위태로움 앞에 빈부가 따로 없었고 살고자 함에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으며 끼니 앞에 영호남이 어우러져 향기로웠습니다”라면서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국회에 모여들어 탁상공론을 거듭하고 말장난을 일삼고, 실정의 책임을 폐위된 선황(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떠밀며 실패한 정책을 그보다 더한 우책으로 덮어 백성들을 우롱하니 그 꼴이 가히 점입가경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세금을 감하시옵소서”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시어 정책을 펼치시옵소서” “명분보다 실리를 중히 여기시어 외교에 임하시옵소서”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시옵소서” “신하를 가려 쓰시옵소서” “헌법의 가치를 지키시옵소서” “스스로 먼저 일신하시옵소서” 등 7가지를 직언했다.
‘시무 7조’가 처음 국민청원에 올라왔을 때만 해도 큰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다. 글이 보름여 동안 비공개 상태로 바뀌어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제대로 노출되지 않도록 처리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비공개 논란에 대해 청와대는 “절차에 따라 글의 공개 여부를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라며 “일부러 글을 숨겼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어 8월 27일 ‘시무 7조’를 공식 게재했다. ‘시무 7조’는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요건(20만 동의)을 넘기고 30만 명 이상이 동의를 표했다. 9월 4일 기준 42만 명이 참여해 청원 동의했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이후 시인 림태주와 진인 조은산의 온라인상 논쟁이 다시 한 번 ‘시무 7조’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림태주 시인은 ‘시무 7조’가 공개된 다음 날인 8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임금이 상소문에 답하는 형식의 글 ‘하교_시무 7조 상소에 답한다’를 올렸다.
림태주 시인은 글을 통해 “문장은 화려하였으나 부실하였고, 충의를 흉내 내었으나 삿되었다”며 “너는 헌법을 들먹였고 탕평을 들먹였고 임금의 수신을 논하였다. 그것들을 논함에 내세운 너의 전거는 백성의 욕망이었고, 명분보다는 실리였고, 감성보다는 이성이었고, 4대강 치수의 가시성에 빗댄 재난지원금의 실효성이었다. 언뜻 그럴듯했으나 호도하고 있었고, 유창했으나 혹세무민하고 있었다. 편파에 갇혀서 졸렬하고 억지스러웠고, 작위와 당위를 구분하지 못했고, 사실과 의견을 혼동했다. 나의 진실과 너의 진실은 너무 멀어서 애달팠고, 가닿을 수 없이 처연해서 아렸다”고 평가했다.
림태주 시인은 1994년 계간 ‘한국문학’으로 등단했으나 시집을 내지 않아 ‘시집 없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시보다는 SNS로 더 유명해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림태주 시인이 2014년 출간한 산문집 ‘이 미친 그리움’에 “림태주 시인의 글에서는 밥 짓는 냄새, 된장 끓이는 냄새 그리고 꽃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림태주 시인의 반박에 대해 조은산은 8월 30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백성 1조에 답한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며 재반박했다.
그는 “너의 백성은 어느 쪽 백성을 말하는 것이냐”며 “네 스스로 너의 백성은 집 없는 자들이고 언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 집주인의 눈치를 보는 세입자들이고 집이 투기 물건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 했다. 그렇다면 고단히 일하고 부단히 저축하여 제 거처를 마련한 백성은 너의 백성이 아니란 뜻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나는 오천만의 백성은 곧 오천만의 세상이라 하였다”며 “너의 백성은 이 나라의 자가보유율을 들어 삼천만의 백성뿐이며, 삼천만의 세상이 이천만의 세상을 짓밟는 것이 네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느냐”고 지적했다.
논쟁이 커지자 림태주 시인은 자신의 SNS 글을 친구공개로 전환했다. 이어 ‘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라는 글을 통해 “선생 글의 형식에 대구를 맞추느라 임금의 말투를 흉내냈고, 교시하는 듯한 표현을 썼다.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 믿는다”며 “좌든 우든 상식과 교양의 바탕에서 견해를 나누고 품위를 잃지 않는 논쟁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교 글은 내린 게 아니라 친구보기로 돌려놨다. 낯선 계정에서 몰려와 막말과 쌍욕으로 도배를 해 방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청와대 국민청원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무 7조’도 정부와 당에서 읽고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소득주도성장과 4대강 사업의 비교, 일본과 외교 마찰, 북한과의 관계 등은 사실관계 오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표현에선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목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