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회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허인회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은 무선도청 탐지 관련 사업을 하는 G 사의 대관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서울북부지검에 따르면 G 사는 허 이사장이 무선도청 탐지시스템의 공공기관 납품을 로비를 통해 돕는 대가로 3억 9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챙기고 2억 원을 더 받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법에 위반하는 사안이다.
검찰에 따르면 허 이사장은 2014년 9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납품업자 부탁을 받아 평소 친분이 있던 국회의원을 소개시켜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허 이사장은 자신이 소개한 국회의원들을 통해, 정부·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설치 매입 여부를 질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매출액의 10~20% 수준인 1억 700만 원 상당을 수수했다는 것이 검찰 수사 내용이다.
국회 보좌관 출신 대관 관계자는 “허 이사장이 자신의 인맥을 통해 G 사 관련 사업 예산을 따주는 로비를 하던 중 꼬리가 밟힌 것으로 보인다”면서 “통상적인 로비 방식과 달리 국회 특정 상임위원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 허 이사장과 특정 업체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과 특정 업체가 국가 예산을 주무르기 직전까지 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허 이사장이 입을 열면 적지 않은 실세 의원들이 내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특정 업체의 로비 정황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11월 2일과 4일 열린 20대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 내용에서 포착된다. 이에 앞서 20대 국회 운영위는 2017년도 예산안 예비심사 보고서를 통해 국회 도청 탐지설비 구축을 위한 관련 예산을 신규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11월 3일 운영위 예결심사 소위원회 회의에선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도청방지 시스템 구축과 관련한 발언을 했다. 박 의원은 당시 회의에서 “도청방지 시스템이 미설치된 상임위원장실과 의원회관에 도청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려 예산 35억 원을 신규 반영했다”고 했다.
국회의사당. 사진=박은숙 기자
11월 4일 국회 운영위 회의에서 ‘로비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진석 운영위원장은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에게 “‘도청방어 예산 신규 반영 필요’, 이래서 35억 원을 올려놓았느냐”고 물었다. 우 총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도청업체가 집요하게 로비를 해서 내가 국회 사무총장을 할 때 절대 이것 안한다고 그래서 삭감했던 안이 또 올라왔다”고 했다. 정 위원장이 도청방지 시스템 업체의 집요한 로비가 19대 국회 당시에도 존재했었던 점을 암시한 셈이었다.
도청방지 시스템 필요성을 제기했던 김도읍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내가 이동식 도청방지 장비 구입 예산을 주장했었다”면서 “반도체 탐지 4500만 원, 주파수 분석기 2800만 원 이렇게 했는데 심사자료를 보니 이게 35억 원에 포함돼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도청방지 장비 구입에 7000만 원 정도를 예상했는데 (35억 원이 편성됐다), 필요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으니 (도청장비 시스템 구입 예산 반영 요구한) 이 부분을 철회한다”고 했다.
도청방지 시스템 예산 편성과 관련해 정 위원장과 우 사무총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마디를 보탰다. 기 의원은 “어디서 집요하게 로비하는 것 아니냐”며 정 위원장에 이어 로비 의혹을 다시 제기했다. 이에 정 위원장은 “나는 모르겠는데, 의원회관에 꼭 도청탐지 시스템이 필요하느냐”면서 “이 예산을 깎자”고 제안했다. 결국 이날 국회 운영위는 국회 내 도청탐지 시스템 구입 예산 항목을 지운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이 반영되진 않았지만, 특정 업체의 로비를 통해 해당 예산 증액안이 운영위 회의에까지 올라왔던 셈이다. 당시 국회 운영위 시야에 도청탐지 시스템 구입 예산이 벗어나 있었다면 얼마든지 기존 심사안 그대로 예산이 집행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정치권 일각에선 당시 도청탐지 시스템 예산 증액안은 G 사가 작성해 허 이사장이 국회로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공공기관의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도입은 본격화됐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을 비롯해 군 관련 시설, 한국전력 등이 입찰을 통해 무선도청 탐지시스템을 구입했다. 특히 경찰은 2019년부터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도입 예산으로 25억 원을 편성했다. 지난해 4월 3일 경찰청은 “전국 77개 경찰서에 무선도청 탐지시스템을 구축한다”면서 “2022년까지 해마다 20여 억 원을 들여 중소도시 경찰서까지 도청방지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했다.
조달청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유지 및 관리’ 입찰을 공고했다. 두 차례 입찰에 배정된 예산은 26억 2596만 원이었다. 두 차례 입찰에서 낙찰된 업체는 이번 허 이사장 수사 당시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업체로 알려진 G 사였다. 2018년 7월 G 사는 예산 6억 1462만 9610원이 배정된 외교부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구축 사업도 따낸 바 있다. 2017년 11월엔 대검찰청이 무선도청탐지시스템 구매 입찰에서 G 사를 사업자로 낙찰했다. 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3억 4722만 6680원이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효력을 발휘한 것은 2018년부터”라면서 “2018년부터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구축 관련 예산의 단위가 달라진 모양새”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허 이사장이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업체의 브로커 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수사기관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면서 “운동권 대부인 허 이사장의 행보와 늘어난 무선도청 탐지시스템 예산의 상관관계가 그저 우연으로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