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계함 침몰 사건 3일째인 3월 29일,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
주지하다시피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전임 이상희 장관이 이른바 ‘청와대 항의 서한 파문’으로 갑작스럽게 물러나면서 장관에 올랐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25일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에 국방 예산 삭감 움직임의 부당함을 항의하고 장수만 차관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하극상’을 거론하는 편지를 보냈다. 다시 말해 MB 정부의 ‘국방개혁’에 반기를 들었던 셈이다. 예산을 줄이고 운영을 효율화하는 국정 개혁의 큰 틀에서 국방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의중이었던 반면 이 전 장관은 ‘국방은 예외여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이는 경제논리와 안보논리의 충돌로도 요약된다.
그런 이 전 장관의 뒤를 이었으니 김 장관은 국방개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9월 23일 취임사에서 그는 ‘일류 국방경영’과 ‘강한 군대’, ‘국민의 국방’을 자신의 재임 기간 국방운영 기조로 삼겠다면서 “국방부의 경영 합리화”를 가장 먼저 내세웠다. 그는 “다양한 안보위협, 전쟁양상과 국방환경의 변화는 우리 군의 변혁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며 “먼저 국방부의 경영 합리화에 박차를 가하겠다. 변화하는 환경에 효율적으로 적응하도록 국방조직과 업무수행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MB 역시 이후 국방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유지했다. 경제관료 출신인 장수만 차관을 발탁했던 데 이어, 국방부 장관 직속 자문기구로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만들게 하고 민간인인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을 위원장에 앉혔다. 국방부 국방개혁실장에는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를 임명했고, 무기 도입을 책임지는 방위사업청 차장에는 경제관료인 권오봉 기획재정부 재정정책국장을 보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무엇 하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진 못했다. 방위사업청을 ‘수술’하는 문제 하나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방위사업청 개편을 둘러싸고는 김 장관과 장수만 차관의 발언이 시각차를 드러냄에 따라 또 다시 장·차관 갈등이 불거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국방개혁에 대한 군 내부의 반발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김 장관이 느꼈을 부담감은 상당할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천안함이 침몰했다. 군이 천안함 침몰 직후 허둥댔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합참은 당일 밤 9시 45분에 보고를 받은 뒤 이를 9시 51분에 청와대에 즉각 보고했지만 이상의 합참의장은 10시 11분, 김 장관은 10시 14분에 이르러서야 합참으로부터 첫 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이 안보회의를 소집했던 10시에도 두 사람은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이다. ‘보고가 생명’인 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어이없는 실수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침몰 직후 경계 태세 발령 및 각 군의 움직임 등 대응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군으로서는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렇게 군 기강 문제가 도마에 오른 상황을 두고 김 장관과 전임자인 이상희 전 장관을 비교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국방예산 삭감에 항의하다 물러난 이 전 장관은 재임 시절 유독 ‘군 기강 확립’을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특유의 군인다움을 무기로 장관이 되고서도 군을 진두지휘했다. 강한 전사, 강한 군대를 강조하고,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을 외쳤다. 장병들의 해이해진 정신 상태를 질타했고, 군기와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병사들의 이념 편향성을 문제 삼고, 군의 재조형을 주문했다. 한미 연합훈련에서는 총지휘관이 합참의장임에도 불구하고 장관이 직접 벙커에서 잠을 자면서 지켜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그에 비해 김 장관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일 이 전 장관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면 장관에 대한 초동 보고가 이렇게까지 늦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이런 측면은 김 장관이 이번 군 기강 문제에서 썩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에 근거를 보태줄 수도 있다.
어쨌든 이쯤에서 천안함 사태 와중에 군을 향한 MB의 발언들을 살펴보자. 이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이후 대체로 군을 겨냥하는 발언은 자제해 왔다. 사건 직후에는 “군의 초동 대응은 비교적 잘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종자 구조작업이 우선이었던 탓도 작용했다. 하지만 지난 4월 15일 천안함 함미가 인양되고 실종자 대부분의 시신이 수습되는 시점을 기해 발언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한다.
▲ 이날 의원들의 질의에 김태영 장관이 사고 당시 구조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4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원로들과 간담회. MB는 “나는 기본적으로 군을 믿지만 관행적으로 계속해오던 일을 한 번 철저하게 돌아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정비해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MB의 군에 대한 언급들은 점차 강도가 세지고 있다는 점 외에도 주목할 게 더 있다. 바로 앞서 말했던 국방개혁과 점차 밀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4월 22일 MB는 “6·25 60주년인 올해 이를 기념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 군 전반을 점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군 기강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 군의 인사 예산 병무 군수 방산 등 국방의 모든 분야를 점검하는 국방개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밝힌 셈이다.
4월 22일 MB의 발언 중 “나는 기본적으로 군을 믿지만”이라는 대목도 곱씹어볼 만하다. 사실 군에 대한 MB의 불신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이 전 장관의 항의서한 파문에서는 “무기 구매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국방 예산 20% 감축이 가능하다”는 MB의 언급이 회자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군을 믿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정비를 해보자”는 MB의 언급은 ‘그렇지 않아도 군을 뜯어고치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손 좀 보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수세에 몰린 군은 이렇게 해서 순식간에 칼자루를 뺏겼다. 김 장관이 군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요청한 것이 단적인 예다. 김 장관은 지난 4월 16일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군의) 미흡했던 초동조치에 대해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직무감사 요청은 당초 마련된 발표문 초안에는 없었다가 김 장관이 청와대와 협의해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작전의 적절성에 대한 조사를 합참 전비태세검열단이 아닌 감사원에서 진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
특히 천안함 사태에서 불거진 군 기강 문제로 국방개혁의 외연은 더 넓어지게 됐다. 지난해 국방개혁의 화두는 군의 씀씀이를 줄이는 문제였다면 이제 천안함 국면 이후 국방개혁은 전 방위적인 군 개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군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히려 국방예산 문제는 부차적인 사안이 될 수도 있다. “강한 군대는 강한 무기뿐만 아니라 강한 정신력에서 오는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무기 예산만 늘려달라고 떼쓰지 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최근 “무기와 장비가 좋다고 강군이 되는 게 아니다. 정신 상태가 흐트러져 있으면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확장된 국방개혁의 시발점은 아마도 군 문책 인사가 될 듯하다. 그 정점에 선 인물이 바로 ‘책임론’의 한가운데 서 있는 김태영 장관이다. 사실 김 장관은 MB의 신임이 두텁고, 대국회 관계도 원만히 이끌어 왔다. 지난해 인사청문회 당시 여러 장관 내정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개인적인 하자가 아닌, 정책이 주된 화제로 올랐고, 취임 이후에도 장관들 중 발군의 평가를 받아 왔다. 7개월만 장관으로 쓰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지금의 천안함 정국이 희생양을 찾아야 한다면 정치적이고,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최고 책임자는 국방장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장관도 지난 4월 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치권의 질책을 받고는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바 있다.
만약 그가 물러나게 된다면 ‘이중의 희생양’으로 간주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천안함 사태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국방개혁이다. 천안함 이후의 변모한 국방개혁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장관 교체를 통해 확실한 과거와의 단절 및 개혁 의지를 군 안팎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에 올라탄 국방개혁’이 성과를 거둘지, 아니면 과거의 수많은 사례처럼 군 내 기득권에 가로막혀 좌초할지 지켜볼 일이다.
군 대규모 문책 카운트다운
5월 중순 대대적 인사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가 예정대로 5월 초쯤 나온다고 한다면 5월 중순께 장성급 인사가 이뤄질 것이다. 김 장관의 거취 문제도 이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윤곽을 드러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군은 이미 4월 초에 단행할 예정이었던 장성급 정기 인사를 두 차례나 연기해 가며 대대적인 문책 인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관심은 어느 선까지 책임을 묻느냐는 것이다.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이번 사태와 별개로 해군의 3성 장군인 박정화 해군 작전사령관과 김중련 합참 차장이 전역이 예정됐었다는 점이다. 김성찬 현 해군참모총장과 함께 모두 해사 30기인 이들은 지난달 김 총장이 임명되면서 천안함 사태만 없었다면 이달 초 장성급 인사와 함께 전역했어야 한다. 인사 지연으로 아직 현직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일단 해군에서는 1차적으로 천안함이 소속된 해군 2함대사령관(소장)과 그 이하 지휘관 라인은 문책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군의 윗선 지휘라인은 작전사령관과 해군총장인데, 작전사령관의 자연 전역을 감안하면 난처한 것은 해군총장의 거취다. 김 총장은 3월 19일 취임했다. 취임 후 불과 1주일 만에 천안함 침몰 사태를 맞은 탓에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직접 묻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있다. 동기인 김중련 합참 차장과 박정화 작전사령관이 모두 전역하면 후임 인선이 쉽지 않다는 현실론도 작용한다. 더구나 천안함 침몰 원인이 사고가 아닌 작전 실패의 영역으로 좁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해군 살림을 담당하는 해군총장보다는 합참의 실책이 더 중하다는 게 군 안팎의 지적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파장을 고려할 때 여론이 해군 수장의 유임을 용인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 부담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다른 시나리오를 내놓는다. 해군총장이 낙마 쪽으로 흐를 경우 현재 천안함 탐색구조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두(해사31기) 해군교육사령관(중장)을 눈여겨보라는 것이다. 김 총장을 포함한 해사30기 3명이 모두 옷을 벗으면 다음은 해사31기다. 특히 김 사령관은 209급 잠수함 1번함인 장보고함장, 잠수함전단(9전단)장을 역임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수중 공격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간 수상함 계열에 밀렸던 잠수함 출신들이 주목받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해군 못지않은 피바람이 예상되는 쪽은 합참이다. 보고체계의 혼선과 늑장대응 등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실책이 대부분 합참의 소관이다. 더구나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날 경우 경계 및 현장 대응 실패 책임도 더해진다. 이 때문에 합참 내 작전 관련 주요 수뇌부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휘책임을 물어 합참의장을 경질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진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