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바 롯데에서 거포 본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는 김태균. 그는 용병이라는 부담감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한다. 연합뉴스 |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낯선 일본 리그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
▲한국에선 경기 끝나면 지인들과 밥도 먹으면서 지냈는데, 여기는 그냥 혼자라는 생각이 강하다.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잡생각도 많아지는데, 그런 게 힘들다.
―한국과 일본의 야구를 얘기할 때 투수들의 공 끝 차이가 많이 언급되곤 한다. 실제 느낀 적이 있나.
▲많이 느꼈다. 겉으로 보기엔 대부분 일본 투수들의 직구가 140㎞대 초반 아니면 138㎞ 정도다. 그런데 내 체감 스피드는 그게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145㎞ 넘는 직구도 받쳐놓고 쳤다. 여기선 138㎞짜리 직구에도 배트가 밀린다. 솔직히 모르겠다. 일본 투수들의 공 끝이 좋은 건지, 아니면 여기 스피드건이 대체로 적게 나오는 건지. 138㎞짜리가 145㎞로 느껴진다.
―한국에선 팀 내 간판타자였고, 일본에 와선 기본적으로 용병 중 한 명인데.
▲서러운 건 없다. 그런데 구단에서 아무리 잘 챙겨주고 감독님이 부담없이 대해줘도 나는 역시 용병이라 스스로 눈치가 보인다.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은가. 용병이 잘 못하면 동료들이 앞에서는 격려해도 뒤에서는 ‘용병이 뭐 저러냐’ 하는 소리를 하지 않나. 그런 걸 알기 때문에 힘들다. 지금 이렇게(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페이스로) 하고 있어도, 내가 느끼기엔 잘하는 것 같지 않다. 더 잘해야 용병답다는 생각이다. 마음 편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친정팀 한화는 주포가 빠졌으니 올해 다소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함께 뛰었던 한화 선수들이 모두 그립다. 김인식 (전) 감독님을 생각하면, 작년에 꼴찌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현재 한화의 팀 성적에 대해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해 말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대표팀 합류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일본에서 적응하려니 몸이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일본에 오게 된 것도 대표팀 경력 덕분이다. 그 덕분에 군대 혜택도 받았다.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
―팬들은 한국 선수가 일본에서 성공하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 3년 계약의 첫 시즌인데 벌써 ‘김태균, 미국 가라’는 얘기가 나온다.
▲하하, 처음 해외 진출을 생각할 때 미국도 고려했었다. 그런데 내가 미혼이고 혼자 살다보니 미국에서 생활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일본으로 마음을 굳히게 됐다. 3년 뒤에 미국에 도전해볼 생각도 있다. 그때 가서 내가 계속 혼자라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일본 언론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렇고, 역시 요미우리 이승엽과 비교하는 얘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승엽이 형과 내가 모두 잘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요미우리 경기를 앞두고도 한국에서 ‘이승엽 김태균 맞대결’ 같은 얘기가 많이 나오던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승엽이 형과 내가 투타 맞대결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잘하면 좋은 것 아니겠나.
―지금은 다소 고전하고 있지만 이승엽도 요미우리에서 최고의 4번타자로 군림했던 선수다. 같은 한국인 선수이기 때문에 일본 관계자들도 관심이 많다.
▲ 지난 21일 지바 롯데와 야쿠르트의 일본 프로야구 교류전서 1회말 2사 만루 사부로의 안타 때 득점을 올린 김태균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출처=지바 롯데 |
―지바 롯데 홈구장인 마린스타디움은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하다. 타자로서 힘들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면, 홈구장인데 홈구장처럼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야구장은 크고, 펜스는 높고, 바람도 불고. 일본에 와보니 야구장이 전반적으로 크다는 느낌이다.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마린스타디움은 초속 6m 정도 바람이 부는 날이면 평온한 날씨라고 하더라. 바람 많이 불 때에는 렌즈를 끼고 있어 타석에서 눈 뜨는 게 어렵다 (이 질문을 했던 날 마린스타디움에는 경기 중 초속 11m 바람이 불었다. 보통 초속 10m 정도면 우산을 잡고 있기 힘든 정도라고 한다. 이날 경기 중 외야플라이로 생각됐던 타구를 3루수가 내야쪽으로 달려 들어오면서 잡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타자 입장에선 맞바람이 센 곳이다).
―맞바람을 뚫고 홈구장에서 홈런 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마린스타디움에서 홈런 치려면 타구를 띄우면 안 된다. 라이너성 타구로 낮은 탄도로 쳐야 홈런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홈런을 지금까지는 조금 쳤지만, 앞으로는 한동안 안 나올 수도 있다. 아마 홈런은 치겠다고 치는 선수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일본의 야구 환경이 한국보다 낫지 않은가.
▲확실히 느낀다. 선수가 편하게 훈련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이 집중된다. 또, 내가 이곳에서 아는 사람들이 없다는 점도 오히려 나에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선 경기가 안 풀리면, 경기 후에 술도 한잔 하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선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얌전하게 일찍 잠자리에 든다. 정 스트레스 받으면 스윙 연습을 하면서 풀어버린다.
―니시무라 감독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개막 후 단 한 번의 타순 변경 없이 줄곧 4번을 치고 있다.
▲정말 나에게 잘 대해주신다. 본래 용병들에게 친절하신건지, 아니면 나에게만 잘 해주시는건지 모르겠지만(웃음). 2월에 전훈캠프를 치를 때에는 내가 힘들어하니까 감독님이 쉬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나를 불러 밥을 사준 적도 있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김치를 주시기도 했다.
―점점 더워지는 계절이다.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텐데.
▲한국에서 12홈런에 타점 1위 성적을 내고 있으면 아마 마음이 조금 풀어졌을 것이다. ‘이 정도면 올 시즌은 잘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에선 그런 생각이 안 든다. 이러다 또 어느 순간 홈런을 계속 못 칠 수도 있다. 또 내가 용병이라서 기준점을 어느 수준으로 잡아야할지 모르겠는 부분도 있다. 늘 마음을 풀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좋은 성적을 내도, 주변에서 당연하다는 듯 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지바 쪽에 숙소가 있다. 도심과 멀어서 쉬는 날에도 심심할 것 같다. 휴식 때 도심에 나가 구경도 하면서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차 몰고 도심 신주쿠까지 가려면 한 시간도 넘게 걸린다. 그냥 집근처에서 쉬는 게 편하다. 머리도 깎고 몸도 치료받고 하면서 지낸다. 나에겐 최고의 트레이너(손세진 씨)와 최고의 통역(김영롱 씨)이 있기 때문에 함께 잘 지내고 있다.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일본에 연착륙하고 있다는 얘기도 많이 나온다.
▲그건 조금 아닌 것 같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늘 준비를 해왔다. 일본 와서, 본래의 내 스타일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이것저것 고쳤다. 그래서 최근 몇 달간 야구가 늘었다는 느낌이다. 나는 알고 보면 낙천적이고 태평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신경쓰고 스트레스 받는 성격이다.
심경 토로 이승엽 향후 행보
“이대로는 한국 못갑미더”
이승엽은 “나는 평범한 선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2년간 벤치 멤버로 뛰면서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이 쌓인 것 같았다. 그는 “이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는 것 같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다. 전성기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처음엔 이승엽의 발언을 수첩에 적는 동안, 뭔가 서글픈 느낌이 들기도 했다. ‘국민타자 신드롬’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이제는 보통의 노장 선수들처럼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승엽은 결코 이대로 물러날 선수가 아니다. 그는 “올해로 요미우리와의 4년 계약이 끝난다. 여건상 한국에 돌아갈 수는 없다. 이대로 돌아가면 그건 패배자다. 한 번 더 일어나서, 명예롭게 돌아가겠다. 한국행은 일단 접었지만 구체적으로 진로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말 이승엽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움직임은, 일본 내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다. 이승엽은 출전 기회만 보장받는다면 여전히 한 시즌 30홈런이 가능한 타자다. 선수층이 두터운 데다 좋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 요미우리의 특성상 자꾸 벤치 멤버로 출전하고 있지만, 이승엽은 근본적으로 기량이 쇠퇴한 건 아니다. 때문에 원 없이 뛸 수 있는 팀을 선택해 현역으로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내가 원하고, 또 나를 필요로하는 팀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미국행은 어렵다. 올해 한국나이로 서른다섯인 이승엽이 이제 와서 마이너리그부터 단계를 밟아나가는 건 무리다. 2006년 제1회 WBC에서 홈런왕에 오른 뒤 곧바로 미국에 진출했다면 높은 몸값과 출전 기회를 보장받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 보다는 익숙한 일본 리그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게 많은 야구인들의 견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이승엽은 “다시 한 번 일어나겠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승엽은 분명 찬스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때를 위해 칼을 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부진했다고 해서 ‘국민타자’의 기억까지 모두 잊을 필요는 없다. 마지막 도전에 나서는 이승엽을 위해 야구팬들이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야 할 시기다.
요코하마, 도쿄, 지바=김남형 스포츠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