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방송가는 다르다. 조금만 문제가 불거져도 “하차하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물론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같고 다름’의 문제에 대해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무조건 “하차하라”는 식의 몰이가 계속되고 있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끊임없는 ‘방송 하차’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출연 중이던 MBC에브리원 ‘대한외국인’에서 스스로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사진=MBC에브리원 ‘대한외국인’ 방송 화면 캡처
#도마 위에 오른 샘 오취리와 기안84
가나 출신으로 원어민 못지않은 한국어를 구사하던 방송인 샘 오취리는 끊임없는 ‘방송 하차’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출연 중이던 MBC에브리원 ‘대한외국인’에서 스스로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사건의 발단은 의정부고 학생들이 가나의 장례 문화를 흉내 낸 ‘관짝소년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색적인 졸업 사진으로 매년 화제를 모으는 의정부고 학생들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이를 패러디했다. 이에 대해 샘 오취리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문화를 따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돼요?”라며 “한국에서 이런 행동들 없었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입장을 냈다.
이후 샘 오취리를 향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몇몇 네티즌은 그가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눈을 찢는 퍼포먼스로 동양인을 비하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샘 오취리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고 학생들의 허락 없이 사진을 올려서 죄송합니다”라며 “제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좀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성난 여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고 그가 출연하던 ‘대한외국인’으로 화살이 날아갔다. 계속된 공격에 자신의 SNS 계정까지 삭제한 샘 오취리는 결국 더 이상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본명 김희민) 역시 사면초가에 놓였다. 그는 3주일째 MBC 간판 예능 ‘나 혼자 산다’ 녹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가 ‘나 혼자 산다’의 주요 멤버이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덤을 오른 것을 고려할 때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 할 만하다. 제작진은 “개인 일정으로 불참하는 것일 뿐 하차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고 있지만 그의 공백이 장기화되는 것은 결코 좋은 신호라 볼 수 없다.
기안84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공식 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힐 때까지 쉽게 끝나지 않을 모양새다. 그의 하차를 결정하지 않는 제작진에게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기안84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며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 작업을 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하차가 능사인가
샘 오취리는 ‘대한외국인’에서 하차한 것을 넘어 당분간 방송 활동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논란이 불거졌다. 과연 그의 하차가 온당한지 묻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샘 오취리가 제기한 ‘블랙 페이스’(Black Face) 문제는 흑인 노예제도를 겪은 국가에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 중 흑인 분장을 한 ‘시커먼스’가 뒤늦게 인종차별적 소지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 수긍하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하지만 왜 유독 샘 오취리의 지적에 대해서는 이처럼 민감히 반응하는 것일까.
한 방송 관계자는 “한국인이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되짚는 것과 외국인인 샘 오취리가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을 받아들이는 대중적 정서가 달랐던 것 같다. 분명 샘 오취리의 문제제기는 타당한 측면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건강한 논의는 사라졌다”면서도 “다만 샘 오취리가 인종 차별이나 비하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고등학생들의 단순 패러디에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분위기를 풍긴 것은 그를 향한 대중적 반감을 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기안84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공식 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힐 때까지 쉽게 끝나지 않을 모양새다. 그의 하차를 결정하지 않는 제작진에게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나 혼자 산다’의 제작진은 쉽게 기안84를 내치지 않는 것일까. 단순히 그가 이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까.
이에 대해 적잖은 방송 관계자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기안84의 웹툰이 ‘정당하다’고 말할 순 없다. 충분히 논란의 소지가 있고,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때문에 기안84는 공식 사과했다. 불법적 행위로 법적 처벌할 사안은 아니기 때문에 이 이상 그에게 어떤 벌을 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민국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작가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로 인해 배출된 콘텐츠가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순 없다.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논쟁적 작품을 만든 작가들이 기안84와 같은 활동 중단 및 하차를 종용받지는 않는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기안84를 향한 하차 요구와 질타는 그가 이미 대중적 연예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유명인이기 때문에 짊어지게 된 짐일 수 있다”며 “‘나 혼자 산다’를 이끄는 제작진은 이번 사건에 직면한 당사자로서 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이미 공식 사과한 기안84의 하차까지 고려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