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발탈 공연에는 유람객 역을 맡은 인형 배우와 어물전(어물도가) 주인 역을 맡은 인간 배우(재담꾼), 그리고 아낙네 역을 맡은 또 다른 인간 배우가 등장한다. 박정임의 발탈 공연. 사진=문화재청 제공
이 특이한 무대예술의 이름은 다름 아닌 ‘발탈’. 발에 탈을 씌우고 조종하는 독특한 연행(연기) 방식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반등신의 인형을 과연 어떻게 발로 움직이는 걸까. 그 궁금증부터 먼저 풀어보자.
발탈은 발탈꾼, 즉 인형 배우뿐만 아니라 인간 배우인 이야기꾼(재담꾼), 그리고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등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함께 펼치는 종합예술이다. 무대 위의 검은색 포장막 뒤에는 상반신 인형을 조종하는 발탈꾼이 자리해 있다. 발탈꾼은 무대 밖으로 내민 한쪽 발바닥에 탈을 씌워 인형의 상반신 위에 올려놓는데, 이 탈이 바로 인형의 얼굴이 된다. 또한 인형의 두 손에 끈이나 대나무를 연결해 두 팔로 이를 움직이며 감정을 표현한다. 발탈꾼은 판소리, 민요 등 노래는 물론 재담에도 능해 다양한 목소리 연기로 인형 배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1900년대 초반 발탈의 인기가 대단했으나 일제가 우리 문화 말살 정책을 펴면서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박정임의 발탈 공연. 사진=문화재청 제공
옛 신문기사를 보면 1900년대 초반 발탈의 인기는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1927년 5월 3일자 ‘동아일보’에는 ‘광무대에서 박춘재의 발탈 노름이 열린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문화 말살 정책을 펴면서 발탈의 자취 역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광복 이후 몇몇 명인들에 의해 명맥을 겨우 유지하던 발탈은 198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인 전승의 길이 열리게 됐다. 이동안(발탈), 박해일(재담)의 뒤를 이어 현재는 박정임(발탈), 조영숙(재담) 예능보유자가 발탈의 맥을 이으며 후진에게 기예를 전수하고 있다.
발탈은 탈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가면극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얼굴이 아닌 발에 탈을 쓴다는 점 등에서 차이가 크다. 또한 인형 배우뿐만 아니라 인간 배우가 함께 등장해 극을 펼쳐간다는 점에서 단순히 꼭두각시놀음이나 인형극으로 보기도 어렵다. 발탈은 탈을 이용하면서도 가면극과 다르고, 인형극의 연행 방식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인형극과는 변별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 대 사람’의 대결이 아니라 인형 배우와 인간 배우가 서로 다투며 재담 대결을 벌이는 방식으로 극이 펼쳐진다는 점도 특이하다.
발탈꾼은 무대 위의 검은색 포장막 뒤에 자리해 상반신 인형을 조종한다. 사진=문화재청 제공
일반적으로 발탈 공연에는 유람객 역을 맡은 인형 배우와 어물전(어물도가) 주인 역을 맡은 인간 배우(재담꾼), 그리고 아낙네 역을 맡은 또 다른 인간 배우가 등장한다. 그런데 극중에서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는 이 유람객은 보통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아니다. 반면 유람객을 상대하는 어물전 주인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극은 일탈적이고 축제적인 인물인 유람객이 세속적인 어물전 주인과 인사법, 용모, 조기 세는 흉내, 약 등으로 서로 다투며 재담 대결을 펼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인물을 통해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서민의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셈이다.
스스로는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반등신의 인형 배우가 언행이 거침없는 자유인 역할을 소화하는 반면, 스스로 말하며 움직일 수 있는 온전한 인간 배우는 한 가게에 머물며 일상의 규칙에 얽매여 있는 상황. 이처럼 묘한 모순과 역설을 연기하는 무대 예술이 바로 발탈이다. 하긴, 세상 요지경을 풍자하는 데 발로 얼굴을 표현하는 것만큼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방식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 점에서 발탈을 가장 창의적이고 해학적인 종합예술 중 하나라 평하여도 크게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자료 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