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토야마 일본 총리 |
지난 10일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신당 ‘일어서라닛폰’의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타도민주당, 일본부활, 정계재편’을 내건 보수신당 일어서라닛폰의 공동 당수는 히라누마 다케오 중의원과 요사노 가오루 전 재무성 장관이다. 히라누마 다케오는 “일본이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마지막 정치 생명을 걸고 나섰다”며 “지금 일본에 닥친 경제 불황이나 외교문제 등이 민주당 정권이 엉망진창인 탓”이라고 비판했다. 요사노 가오루 공동 당수 역시 “일관성 없이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현 정권이 격동하는 세계정세에 적절하게 대응할 가능성은 제로”라며 창당 이유를 설명했다.
여당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은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국민들 역시 하토야마 내각에 등을 돌리고 있다. 출범 이후 70% 이상의 지지를 받았던 하토야마 내각이 잇따른 악재 탓에 지지율이 30%대로 급락한 것이다. 지지율 급락의 계기는 총리 측에서 매월 모친에게서 받은 1500만 엔(약 1억 8000만 원)을 시민에게 받은 기부라고 발뺌하면서부터다. 또 ‘후텐마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시키겠다던 공약은 미국의 반발로 5월까지 결정을 미룬 상태며 소득제한 없이 자녀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정책 역시 야당의 반발로 예산안에서 제외되자 일본 국민들의 ‘총리 불신’은 더욱 심화됐다.
총리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주요 사안들이 출범 반년 동안 제대로 시행된 것이 없자 일부 언론에서는 “어차피 미국이나 야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할 것을 알고, 우선 시민들이 좋아할 만한 안을 내놓고 보는 것 아니냐”며 비꼬기 시작했다.
일본 대중지 <주간문춘> 4월 8일자에서는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은 몰랐다’는 자극적인 문구로 총리를 비판했다. 3월 27일부터 치바로 휴가를 떠난 총리가 상점에서 만난 시민들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고 악수에 응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스스로 인기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며 “기지 이전 문제도 말로는 오키나와 현민의 심정을 이해한다면서 정작 출범 이후 오키나와에 방문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한번은 여당이 지지율 저하로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지나가던 술 취한 남성이 창 밖에서 회의하는 모습을 보고 “하토야마 총리다”라고 외치자 하토야마가 회의 중간에 손을 흔들며 응답했던 일화가 있었다. <주간문춘>은 이에 대해 “정말 가벼운 사람”이라는 동석자의 말을 빌리며 “총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가볍게 대응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점은 총리의 ‘리더십 부재’다. 2월 7일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과의 회담 직후 총리는 기자단에게 “대기업 사내유보에 대해 증세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공산당이 주장하는 사실상의 법인세 증세와 관여된 문제였다. 하지만 재계가 맹렬히 반발하자 같은 날 총리는 다시 “시이 위원장이 제안했으니 검토하겠다는 말이지, 긍정적으로 보고 있진 않다”고 말을 바꿨다.
▲ 미유키 영부인 |
가메이 장관이 대표로 있는 국민신당담당 기자는 “가메이 씨는 발표하기 전날 밤, 총리에게 전화로 보고했고, 총리가 대충 잘했다는 식으로 넘어간 것이 사건의 진상”이라며 “그는 예전부터 ‘총리는 항상 말이 바뀌어서 거기에 모두 휘둘리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 일이 이렇게 흘러갈지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총리를 불신하는 것은 기자나 야당 의원들만이 아니다. 여당 초선 의원들 역시 “하토야마 총리가 하는 말은 신용할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주일미군 관계자의 평가는 더욱 심각하다.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 미 해군 고문관인 기타무라는 “총리의 후텐마기지 관련 발언을 들은 미국인들은 그가 기지문제에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오키나와현 밖으로 이설했을 때 전략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미국인들의 생각을 전했다. 미군 관계자 사이에서는 총리에 대해 “정말 스탠퍼드에서 박사까지 수료한 것이 맞는가”라든가 “머리가 나쁜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에서 애간장이 타는 이유는 정작 총리 본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무신경해 보이기 때문이다. 현 관료 중 한 명은 “오카다 외상과 히라노 관방장관이 눈 밑에 다크서클을 달고 핼쑥해진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총리는 둔감한 건지 신경을 안 쓰는 건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하토야마 총리가 “큰일났다”며 난감해 한 적이 있었다. 미유키 영부인이 “영화배우 이병헌의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을 꺼냈을 때다. 미유키는 영부인이 되기 전에도 “톰 크루즈와 영화를 찍기 위해 할리우드에 플롯을 팔려고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무신경한 총리도 ‘4차원’이라 불리는 부인 챙기기에는 열성인 듯하다.
하토야마 부부와 가깝게 지내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총리가 “정계에서 이만 물러나고 싶다”, “타이밍은 참의원 선거 때 책임을 지고 떠나는 것이다. 어떨까”라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가까운 저널리스트와 의원들에게는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 “4년은 해야지”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쪽이 총리의 진심인지 모를 일이지만 총리가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사이 일본은 경제에서 한국에 뒤지고, 조만간 중국에게는 GDP순위에서 밀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기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가 지금 같이 말 바꾸기에 바쁜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가경영은커녕 제 살길 찾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