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가 무관중 경마마저 중단함에 따라 말 산업 전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전북 장수군 한국마사회 장수목장 실내 언덕주로. 사진=연합뉴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와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마사회는 올 들어 8월 말까지 1조 원에 못 미치는 9756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9년 8월 말까지 올린 매출이 5조 875억 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전년 동기 대비 4조 1119억 원(80.8%) 급감한 실적이다. 사상 최대 매출 하락이다. 최악의 영업손실도 우려된다. 1949년 설립된 마사회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한국전쟁 때를 제외하곤 올해가 처음이다.
매출 급감으로 마사회가 정부에 납부하는 세금도 1조 원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마사회 매출 중 16%가 레저세, 지방교육세, 농어촌특별세로 납부된다. 마사회가 2019년 세금으로 납부한 금액은 모두 1조 1771억 원이지만, 올해 낼 수 있는 세금은 1561억 원에 그친다. 게다가 마사회가 작년 938억 원을 납입했던 축산발전기금도 올해는 낼 수 없다. 1974년 축산발전기금이 설치된 이래 2019년까지 마사회가 낸 기금의 누적 총액은 3조 103억 원으로, 전체의 30.6%를 차지한다.
마사회가 일주일 동안 경마를 진행할 경우 벌어들이는 매출은 약 1500억 원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마사회는 지난 2월 23일부터 6월 18일까지 경마를 전면 중단했고, 6월 19일부터 8월 30일까지 10주 동안 ‘무관중 경마’를 실시했다. 마사회는 무관중 경마를 진행하면 매주 약 70억 원의 상금 지출이 발생하고 매출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지난 10주 동안 700억 원가량 손실을 떠안았다.
장기휴장으로 국내 말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경우, 코로나19 이후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당장 경마 중단으로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의 생계가 절벽으로 몰렸다. 박대흥 서울경마장 조교사협회 협회장은 “전체 수입의 70%에 이르는 경마 상금이 사라져 빚을 내서 마필관리사들의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마장 조교사협회가 마주들에게 위탁받은 말은 모두 1420마리 정도이고 500여 명의 마필관리사가 고용돼 있다.
말 생산 농가의 타격도 만만찮다.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는 올해 다섯 차례에 걸쳐 경매시장을 열 계획이었지만 3월과 5월 예정됐던 2차례 경매는 취소됐다. 가까스로 7월에 경매가 열렸지만, 낙찰률은 24.6%에 그쳤다. 1년 전인 2019년 7월 낙찰률(30.6%)에 비해 6% 떨어졌다. 한 관계자는 “말은 적절한 시기에 경마에 투입되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사실상 쓸 곳이 없어져 말 생산 농가가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고 설명했다.
유일한 탈출구인 언택트 경마 시행도 요원하다. 온라인마권 판매를 허용하는 일본은 올 상반기 코로나 확산에도 매출 약 16조 3932억 원을 기록,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다. 문제는 국내에선 온라인마권 발권이 불법이란 점이다. 국제경마연맹 60여 회원국 중 온라인마권 발매가 불법인 곳은 한국과 말레이시아뿐이다.
경마 중단으로 불법 경마 시장이 커지는 풍선효과도 발생했다. 지난 7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발표한 불법 경마 추정액은 연간 약 6조 9000억 원 규모로 마사회 경마가 중단된 이후 규모가 더 확대됐다. 실제 합법 경마가 중단된 지난 3~8월 불법 경마로 사법 처리된 인원은 127명이며, 폐쇄된 불법 사이트만 1858개에 달한다. 이에 경마 유관산업 관계자들은 정부와 국회에 언택트 경마 시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온라인마권 발매 근거를 담은 마사회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통과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사행성 논란 탓에 법안이 폐기됐다. 김승남 의원실 측은 “이번 법률 개정안에는 매출 총량을 초과할 우려가 있을 때 온라인마권 발매 일시중단, 기존 장외발매소 규모 축소 등 내용도 함께 담아 부작용을 막을 장치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병주 경마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