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1년도 예산으로 455조 2000억 원을 책정했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예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1회계연도 세입 및 세출에 대한 예정계획서다. 정부는 회계연도 개시일 120일 전까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가이드라인 삼아 최종 예산안을 의결한다. 최종 예산안 의결 시한은 12월 2일이다. 9월 1일 정기국회가 막을 올렸다. 이틀 뒤인 정부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코로나19와의 전쟁, 그린뉴딜 등 여러 이슈가 혼재한 가운데 정부 예산안 규모에 눈길이 쏠렸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규모는 455조 2000억 원 규모다. 2020년 본예산 427조 1000억 원 대비 6.6%가 상승한 수치다. 3차 추경 금액까지 포함한 2020년도 예산 453조 1000억 원보다도 0.5% 증가한 ‘슈퍼 예산’이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예산으로 나뉜다. 일반회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고유 기능을 수행하는 예산회계다. 특별회계는 사업적 성격이 농후하면서 일반회계와 분리하는 것이 예산 운영에 있어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되는 분야에 대한 예산회계다.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2021년도 일반회계 규모는 376조 8000억 원이다. 2020년 일반회계 예산은 356조 6000억 원이었다. 전년도 대비 5.7% 증가했다. 특별회계 예산은 11.1% 증가했다. 정부가 책정한 특별회계 예산은 78조 4000억 원으로 전년도 특별회계 예산보다 7조 9000억 원 늘어났다.
일반회계 예산의 메인 키워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 안전망 확충과 그린뉴딜이었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 및 그린뉴딜 관련 고용·사회안전망 투자 금액으로 9조 6017억 원을 책정했다.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차원에서 기초연금 및 장애인연금 인상엔 31조 1021억 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일자리 관련 예산에도 힘을 줬다. 2021년 정부 예산안은 취업지원서비스 등 일자리 제공 강화에 4조 322억 원 투입을 예정해 놨다. 고용안전망 확충 일환이다. 대외경제협력기금 및 남북협력기금으론 20조 1000억 원이 책정됐다.
특별회계 예산에선 문재인 정부 임기 후반 드라이브의 콘셉트를 느낄 수 있었다. 에너지와 환경 관련 예산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일반회계에서도 적용된 그린뉴딜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룬 셈이다. 정부는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 예산으로 5조 5516억 원을 배정했다. 취약계층 에너지복지와 전기자동차 보급 및 충전 인프라 구축 등에 사용되는 예산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금은 재정이 국가 경제와 민생의 버팀목이 돼야 하는 준전시상황”이라면서 “위기대응 정책이 중단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환경개선 특별회계 예산은 7조 3637억 원이다. 이 가운데 1조 3552억 원은 미세먼지 저감조치 관련 예산이며 1조 8679억 원은 하수도 등 수질개선시설 설치 비용이다. 정부는 자연·생태 보호에 8033억 원, 환경산업 육성에 8834억 원 예산을 책정해 관련 사업 투자를 확충할 계획을 분명히 했다.
비수도권 지방 도시개발 관련 특별회계 예산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큰그림이 엿보인다. 2021년도 특별회계 예산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회계 비용 4153억 원과 혁신도시 건설 특별회계 3674억 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특별회계 1401억 원이 포함돼 있다. 총 9228억 원 규모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세종특별자치시 내에 조성된 행정특별구역을 일컫는다. 혁신도시는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청사 이전 대상인 112개 지역을 말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광주광역시다. 2007년 발효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예산을 꾸준히 획득하고 있다. 그 가운데 2021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특별회계예산은 2020년 대비 24%(271억 2100만 원) 증액돼 예산안 항목을 차지했다.
여기에 국가균형발전 특별회계 비용으로 10조 3651억 원이 더 있다. 국가균형발전 특별회계 비용은 지역별 특화산업 육성과 지역발전투자협약 등 지원에 잡힌 비용 7조 4880억 원과 지역개발 인프라 사업 지원 비용 2조 5738억 원으로 구성됐다.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 인프라를 전국으로 확산하겠다는 정부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부 예산안 개요에 따르면 2021년 신설된 예산 항목은 크게 두 가지다. 이 두 가지 예산 항목 모두 대통령 직속 위원회 관련 예산이다. 먼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일반회계 예산이 365억 4200만 원을 순증(순전한 증가)됐다. 다음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예산이다. 2021년 정부가 잡아놓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일반회계 예산은 101억 8700만 원이다. 2020년 반영되지 않았던 예산이다. 두 위원회에 순증 예산은 총 467억 2900만 원이다.
9월 1일 정부 예산안을 의결하는 국무회의를 마친 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금은 재정이 국가 경제와 민생의 버팀목이 돼야 하는 준전시상황”이라면서 “위기대응 정책이 중단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한다”고 했다. 이어 정 총리는 2021년도 예산안과 관련한 정부의 목적을 설명했다. 정 총리는 “이번 예산안은 조속한 위기 극복과 선도국가 도약 의지를 담고 있다”면서 “코로나19에 맞서 일자리와 기업을 지키고 소비와 투자를 촉진해 빠르고 강한 경제회복을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당정청은 사상 유례없는 초슈퍼예산안 통과 필요성에 대해 큰 이견이 없다는 후문이다.
야권은 초슈퍼예산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역대 최대 수준의 빚폭탄 예산안이자 차기 정부와 미래세대에 상환부담과 재정건전성의 책임을 떠넘긴 몰염치 예산안’이라고 비판했다. 9월 2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간사인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 대책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정과제 이행과 뉴딜정책을 위해 재정을 대폭 확대했다고 뻔뻔하게 말하고 있다”고 정부 예산안을 비판했다. 추 의원은 “(2021년도 정부 예산안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보여주기식 예산”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초슈퍼예산 카드를 꺼내든 가운데, 예산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은 10월 국정감사가 끝난 뒤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여당의 강력 드라이브에 맞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에서도 적지 않은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연말 예산 정국’을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에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시각차가 적지 않은 가운데 올해에도 예산안 처리가 ‘지각’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예결위원장이 여당 몫인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야권과 어떤 협상전략을 가지고 예산안 처리에 임할지가 연말 예산 정국의 키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