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차·르노삼성·한국지엠·쌍용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완성차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KAMA “규제 탓 국산 중고차 경쟁력 떨어져”
9월 9일 KAMA(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중고차 거래시장에 국내 완성차 대기업의 진입이 규제되면서 수입차보다 국산 중고차 경쟁력이 떨어지고 소비자 불신도 개선이 안 되고 있다”며 “중고차 경쟁력이 신차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국내 완성차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KAMA는 현대차·기아차·르노삼성·한국GM·쌍용차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KAMA는 국내외 중고차 시장에서 나타난 국산 브랜드 차량과 외국 브랜드 차량 간의 감가율 차이를 근거로 제시했다. KAMA에 따르면 올해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2017년식 제네시스 G80 감가율은 30.7%로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25.5%), GLC(20.6%)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17년식 현대차 쏘나타도 45.7%로 BMW3 시리즈(40.9%)와 비교해 더 높았다. 인증 중고차란 완성차 기업이 연식, 주행거리 등의 기준에 적합한 자사 중고차를 매입한 뒤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차량이다.
반면 완성차 기업의 중고차 매매를 허용한 해외에선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KAMA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2017년식 아반떼의 평균 감가율은 34.8%로 폭스바겐 제타와 같았다. 2017년식 쏘나타의 평균 감가율은 폭스바겐 파사트의 평균 감가율보다 0.6% 낮은 43.3%로 비슷했다. 또한 2017년식 현대 투싼의 평균 감가율은 37.7%로 GM 트랙스(38.1%), 폭스바겐 티구안(47.5%)과 비교해 유사하거나 더 낮았다.
하지만 KAMA 자료의 적절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우선 한국과 미국 시장의 중고차 비교 차종이 다르다. 국내에선 쏘나타, BMW 3시리즈, 벤츠 E클래스, 제네시스 G80을 비교했고 미국에서는 아반떼, 제타, 쏘나타, 피셋을 비교했다. SUV도 마찬가지다. 국내는 싼타페, BMW X3, 벤츠 GLC를, 미국에서는 투싼, GM 트랙스, 폭스바겐 티구안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실제 조사에서 겹친 대상은 쏘나타뿐이다. 쏘나타는 국내와 미국에서 감가율이 각각 45.7%, 43.3%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즉 비교 대상을 감가율의 차이가 극적으로 나타나는 차량으로 의도적으로 선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차량별 감가상각률은 중고차 가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면서 “외국과 한국에서 국산 및 외제차의 중고차 선호도와 가격이 다를 수 있으므로 같은 상각률로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 진출에 드라이브 거는 배경
완성차 업계의 시장 진출을 가를 최대 변수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다. 정부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중고차 매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의 진출을 제도적으로 막았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2018년 말 시행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정되는데, 과거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대체하는 개념이지만 법적인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 다르다.
중기부 등은 지금까지도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안으로 중고차 매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해 관계자 간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과거와 달리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생협력안을 마련해 대기업의 진출을 허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선정이 ‘부적합’하다고 중기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완성차 업계는 KAMA를 앞세워 중고차 매매업 진출 의향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지난 7월 2일 중기부가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관련해 개최한 간담회에서 완성차 대기업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 의사를 전달했다. 완성차 업계는 오래전부터 중고차 사업 진출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이익은 물론 품질 관리 등을 통해 브랜드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중고차 판매업의 매출액 규모는 2016년 7조 9669억 원에서 2018년 12조 4217억 원으로 늘었다. 2년 만에 55.9%나 증가할 정도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증 중고차 사업을 각각 2005년, 2011년부터 시작한 BMW와 벤츠는 매년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사업성을 증명했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정부에서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허용할 때의 시나리오 등을 생각해왔다”며 “올해 정부에서 결론이 나온다면 중고차 사업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중고차 매매 영세업체들은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저지하고자 시위·집회에 나서고 있다. 사진=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제공
#영세업체들 대기업의 중고차 진출 반대 시위
이런 흐름에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연합회)는 지난 9월 1일부터 서울 양재동에 있는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앞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대하는 1인 시위와 9인 집회를 열고 있다. 이는 지난 8월 3일부터 정부대전청사 앞에서 진행해온 집회와 시위의 연장선상이다. 시위에 나선 곽태훈 연합회 회장은 “대기업이 중고자동차 매매업에 진출하면 소상공인들은 어려움에 부닥치고, 대기업의 독점으로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들도 결국엔 피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의 문제로 지적되는 허위매물도 근절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회는 허위매물 근절을 위해 클린 중고차 플랫폼 ‘코리아카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코리아카마켓은 중고차 딜러들이 거래한 중고차의 정보와 가격이 공개된다. 거래가 완료되면 매물이 자동으로 삭제된다. 또 국토교통부에 ‘중고차 허위 매물 및 사기 행위 감시를 위한 기구’를 만들어 제재와 처벌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기구 설립에 필요한 자금도 내놓겠다고 밝혔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