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고다 언덕 입구. |
“아닙니다. 로마에 가도 이스라엘법을 따라야 합니다.”
관광객이 한 말에 현지 가이드가 되받아 한 말이다. 로마에서도 이스라엘법을 따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놓고 팔레스타인 자치구로 되어 있는 베들레헴을 돌아보고 나오려면 옛 베를린 장벽 같은 장벽 검문소를 들어가고 다른 장벽 검문소로 나와야 한다. 관광버스가 이스라엘군이 통제하고 있는 출입검문초소를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기관단총을 든 군인들이 버스 안을 뒤지고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줄서 있는 관광버스들이 이 검문초소를 나올 때는 무려 한 시간이 걸린다.
안내를 하는 ‘가이드’ 목사님에 따르면 개인 여행객의 경우는 훨씬 검사가 엄격하다. 짐 수색, 몸 수색, 심지어 의심스러운 물건 뺏기 등 혹독한 고통이 따른다.
기자는 지난 4월 10일부터 18일까지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한 ‘크루즈’ 여행 그룹에 끼어 ‘예루살렘’을 순방했다.
처음 이스라엘 땅 ‘아쉬도드’ 항에 배가 기항했을 때도 상륙하기 전에 배안에서 별도 ‘페이퍼비자’를 이스라엘 출입국관리국으로부터 받아야 했다.
이스라엘의 엄격한 ‘시큐리티’ 때문이라고 할까. 유태인들은 안식일엔 통행금지의 ‘바리케이드’를 이곳저곳에 설치하고 심지어 호텔 안에서도 엘리베이터의 중간층 ‘고’ ‘온’ 사인을 정지시키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이런 고통스런 규제가 한몫을 하지만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을 적대와 불만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고 이 때문에 로마를 가도 이스라엘법을 따라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온다는 가이드 목사의 설명이다.
기자는 예루살렘을 관광한다면 반드시 베들레헴을 둘러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최근 예루살렘 시내에서 벌어졌던 이스라엘 측과 아랍인간의 충돌, 유혈사태 때문에 이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다행히도 통제가 풀려있어 관광이 가능했다.
베들레헴은 작은 골짜기였다. 예수가 탄생한 동굴자리에는 아름다운 교회가 딸린 수도원이 있다. 지하에 있는 동굴로 내려가면 작은 소와 양과 양치기들에게 둘러싸인 아기예수와 성모마리아, 성요셉, 가까이 다가오는 세 사람의 동방박사와 세 마리의 낙타를 나타낸 인형들이 배치되어 순례자들을 숙연케 만든다. 사실 기자는 바쁜 일정으로 1000명 이상이나 줄 서 있는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동굴로 들어가는 맨 앞줄로 가 양해를 구하고 일행 중 유일하게 아기예수님을 참배했다.
베들레헴을 시작으로 골고다 언덕, 성묘교회, 눈물교회, 겟세마네 동산, 통곡의 벽, 주기도문교회 등을 둘러보았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걸으셨던 ‘골고다 언덕’은 관광객들을 비집고 지나다녀야 할 골목 언덕길이 되어있고 길 양편으로는 온갖 기념품, 음식점, 보석류, 서적, 옷가지 등 만물잡화상들로 발 들여놓을 틈이 없다.
예수님이 피땀을 흘리며 걸으셨던 그 언덕, 여인들이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던 그 언덕, 성모마리아가 십자가를 지고 병사들의 매질을 당하면서 걸어가는 예수를 보고 비탄에 잠겼다는 그곳. 그곳에는 “소매치기를 조심하세요. 소매치기를 조심하세요”라는 가이드의 주의 환기가 되풀이됐다.
왜 이렇게 변화됐을까. 더 거룩한 언덕길로 바뀔 수는 없을까. 기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옛날 중세 때는 예루살렘을 둘러보는데 20일이 걸렸다는데 기자는 하루일정으로 주마간산격 순례를 했으니 600년 차이의 시차 여행 때문이라고 할는지….
일본인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어보면 1480년 이탈리아 미라노 공국의 관리 ‘산토 브라스카’의 성지순례가 소개되어 있다.
길게 쓸 수는 없지만 ‘베네치아’와 ‘마르세유’를 통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의 성직자, 귀족, 기독교인들이 배로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생생한 모습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배로 가는 여행기간은 대충 2개월, 교황의 허가, 지중해 크레타 등 여러 섬에서의 하선과 승선, 배 타고 오고갈 때의 돌고래떼 구경, 나귀 타고 걸어가기, 순례자들에 대한 완전면죄 부여 등 지금과는 전혀 다른 순례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당시에도 베네치아 공화국은 ‘순례사업법’까지 만들어 승선인원수. 배안에서의 음식물 취급, 사망자 처우 등을 규정해놓고 관광사업으로 돈을 벌여들였다고 하니 ‘베니스의 상인’이란 말을 들을 법하다.
기자는 서울에서는 들어만보았던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도 바쁜 걸음으로 오르내렸다.
▲ 1.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만국교회 내부. 2.수령 2000년이 넘었다는 감람산의 감람나무. 3.주기도문교회 벽면에 걸린 한글 주기도문. 4.통곡의 벽에서 유태인들이 울면서 기도하고 있다. |
감람산 기슭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은 뒤편 언덕에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바라보며 예수가 눈물을 흘린 눈물교회가 있으며 그 위쪽으로는 예수승천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예수가 감람산에서 승천했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어느 장소에서 승천했는지는 알 수 없다. 승천했다고 믿어지는 곳에 팔각형의 담이 있고 중앙에 팔각형으로 된 건물이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에 유리를 덮어 보호해 놓은 바위가 있는데 발자국 모양이 찍혀 있다. 그 바위가 예수가 승천하실 때 밟았던 것이라고 전해온다.
감람산에 오르면 우리나라 목회자들이나 신자들이 철야기도와 성찬식을 올리는 일도 많다고 한다.
특히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자주 들르시던 곳으로 밤을 새워 피땀을 흘려 기도하던 곳.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대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이 배신한 제자 ‘가롯 유다’의 지목으로 예수를 체포했다.
감람나무가 많아 감람산이라고 하는데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다. 그런데 이 감람나무 숲에는 수령이 2000년이 넘은 나무도 있다고 한다. 2000년이 넘었다면 예수 당시의 모든 상황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설명을 들으면 올리브 나무는 2000년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
이 근처에 1919년 세계 12개국에서 모금한 돈으로 예수가 피땀 흘려 기도한 큰 바위를 둘러싸고 훌륭한 ‘만국교회’를 세워 순례자들의 발길이 넘쳐난다. 실내에 들어서면 예수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며 애통해 했던 ‘겟세마네 동산의 밤’을 상징하여 만들어놓은 배경이 있고, 제단 위에는 힘들게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과 함께 천사가 위로하는 장면이 있다.
기자는 만국교회를 뒤로하고 계곡을 건너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타 통곡의 벽을 순례했다.
통곡의 벽. 유태인들이 예루살렘에 가면 통곡하며 기도하는 돌벽이다. 유서 깊은 유대교 성전을 로마군이 파괴한 뒤 이 성전의 잔해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 이 성벽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서쪽벽으로 최고 14m의 길이와 높이 16m, 평균 1~3톤의 돌을 쌓아올린 것. 크리스천은 이곳으로부터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모슬렘은 오마르사원을 찾아 반석 위의 돔에 참배한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천마를 타고 이곳에 와 승천, 일곱 하늘을 돌아보고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마다 종이쪽지에 글을 써서 돌벽 틈새에 끼워넣고 울면서 애절하게 기도했다. 그 기도의 대부분은 예루살렘의 회복과 만왕의 왕 초월의 구세주가 오시기를 소원하는 내용의 기도라는 것.
유대인들은 크리스천이 구세주로 믿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약성경도 거부한다. 예수를 성인(saint)으로만 인정한다. 이슬람도 이 부분은 마찬가지. ‘알라’신이 유일신이고 ‘마호메트’가 알라신의 사도라고 어린 아기 때부터 암송시킨다.
예루살렘이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BC 3000년경. 가나안 부족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300년대 말부터 순례자의 발길이 찾아들었고 11세기 이후 기독교 세계의 성지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예루살렘을 찾는 관광객 수는 연간 1000만 명을 넘어서 있고 한국인도 5만 명이 이곳을 순례한다. 호텔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고 관광버스를 잡기도 힘들 정도로 인파로 넘쳐난다.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이 기독교의 성지뿐만이 나니라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한 세계의 성지가 돼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 성지순례는 싼타크루즈 여행사와 사단법인 평화한국이 주관한 행사였으나 허점이 너무 많아 철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미국, 일본, 한국 등 3개국 크리스천 약 500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 겸 여행이었으나 스케줄 불이행, 혼란스런 진행, 준비 부족 등으로 많은 물의를 빚었다.
이스탄불에서는 숙박호텔을 시내에서 130㎞나 떨어진 시골호텔에 투숙시켜 오가는 데 2시간씩 소요됐는가 하면 또 다른 호텔은 더운 물도 안 나오는 방갈로 호텔이었고 선내에서는 1만 2000원 정가서적을 2만 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날씨 탓이라고 하지만 하루 일정이 꽉차있던 에베소교회, 두란노교회, 누가의 묘, 원형극장, 사도요한기념교회 순례가 취소됐고 아테네의 일정인 제우스신전, 아카데미, 대통령궁과 고대올림픽경기장, 산타그마 광장 등의 관광이 생략됐으며, 오가는 도중에는 입원환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안내서에는 투숙호텔이 모두 ‘Superior First급’으로 되어 있었으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2~3류 정도 호텔이 아닌가 싶다.
기자는 7년 전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한 차례 한 일이 있으나 여전히 일부 여행사들의 잘못된 관행은 개선이 안돼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여행자는 피곤하고 ‘왜 왔나’ 후회할 수밖에 없다.
기자는 그래서 (1)40명 이상되는 단체여행은 가급적 참여하지 말라 (2)신뢰할 수 있는 바른 여행사를 선정하라 (3)크루즈여행 때는 10만톤급 이상의 큰 배를 타라고 권고하고 싶다. 작은 배는 속도도 느리고 배멀미를 하는 일이 많다.
정상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