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슬란드 해안경비대의 레이더 영상으로 알려진 악마의 얼굴 이미지. |
지난 4월 14일 화산이 폭발한 직후 유럽에서만 약 4000편의 항공기 운항이 중단됐고, 주말에 이르러서는 취소된 항공편이 6000편으로 늘어나자 각국 언론과 정부는 이번 대란을 가리켜 ‘9ㆍ11 테러 이후 최악의 항공대란’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각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일부에서는 ‘너무 지나쳤다’며 비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굳이 항공기 운항까지 무더기로 중단할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이번 결정은 근거 없는 공포심을 바탕으로 한 과잉반응으로 쓸데없이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인 사이몬 젠킨스는 지난해 신종플루로 전 세계가 한바탕 소란을 피울 때와 지금 상황이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과학자들과 제약회사의 호들갑에 넘어가 국민들에게 근거 없는 공포심을 심어줬다”고 말하면서 “이번 화산 폭발로 인한 항공 대란은 새로운 신종플루 패닉과 같다”라고 주장했다.
무더기 결항으로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항공사들도 비행금지 조치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항공회사인 ‘플라잉그룹’사는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발생한 화산재가 항공기 운항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신청하겠다는 뜻을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다음날 ‘에어프랑스-KLM’사는 보잉 737기를 이용해 네덜란드에서 북해까지 시험 비행을 실시했다. 조종사는 “하늘이 새파랗게 맑다. 아무런 이상 징후도 발견할 수 없다”고 보고하면서 화산 폭발로 인한 어떤 위험도 감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비행기가 착륙한 후 엔진검사를 실시한 결과 우려했던 것과 달리 엔진에서는 아무런 화산재도 발견되지 않았다.
독일 항공사들 역시 같은 날 뮌헨-프랑크푸르트 구간을 시험 비행한 결과, 역시 아무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은 “정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며 ‘정부 음모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 블로거는 “독일 항공사의 비행기들이 시험 비행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증명됐는데도 왜 각국 정부는 항공기 운항을 금지하고 있을까. 정말 이상하다. 대서양 어딘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부와 과학자들은 항공기 운항을 금지한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며 이런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다. 화산재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영국 크랜필드 대학의 가이 그래튼 교수는 “항공공학자로서 말하건대 화산이 폭발한 직후 비행기를 운항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공중에 떠있는 극히 미세한 치명적인 화산재들은 일반 여객기 장비로는 탐지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화산재에 함유되어 있는 미세한 암석조각이 비행기 엔진에 유입될 경우 엔진작동을 멈출 위험이 있다는 것이 비행금지 조치를 내린 이유라는 것이다. 또한 화산재가 비행기 동체 표면에 닿을 경우에도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번 조치는 안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 위 사진은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장면. 로이터/뉴시스 아래는 영국이 지난 20일 항공운항을 재개한 후 런던 히드로 공항의 첫 착륙 항공편인 밴쿠버발 브리티시 항공의 탑승자들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가령 영국공항국(BAA)은 히드로, 스탠스테드, 사우스햄튼, 글래스고 등의 공항이 문을 닫으면서 하루 평균 600만 파운드(약 1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또한 영국항공의 경우, 15일부터 20일까지 6일 동안 약 8000만 파운드(약 1370억 원)의 손실을 냈고, 에어프랑스-KLM의 경우에도 매일 3500만 유로(약 530억 원)를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여행사들 역시 손해를 보긴 마찬가지였다. 유럽 최대 여행사인 TUI의 경우, 지난 20일까지 2000만 파운드(약 34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20일 이후 부분적으로나마 항공기 운항이 재개되는 등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고 있긴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언제 또 한차례 폭발이 일어날지, 아니면 다른 화산이 폭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과학자와 전문가들은 아이슬란드의 또 다른 거대 화산들이 폭발할 경우 지금보다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번에 폭발한 화산은 그저 ‘장난 수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에든버러 대학의 화산전문가인 토어발두르 토다르손은 “아이슬란드의 현재 상태로 봐서는 다른 화산도 머지않아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과거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현재 폭발 가능성이 가장 의심되는 화산은 ‘앵그리 시스터’라고 불리는 카틀라 화산과 헤클라 화산이다. 이 두 화산은 아이슬란드의 거대 화산들로 폭발할 경우 그 규모는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제 카틀라 화산의 경우 과거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폭발한 후 연이어 폭발한 적이 세 차례(926년, 1621년, 1821년)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보다 5배가량 큰 카틀라 화산은 지난 100년 동안 23차례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으며, 1755년에는 대폭발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거대한 홍수를 일으키기도 했다. 아직도 매일 3000회가량 미진이 일어나고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리히터 규모 3.1의 지진까지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뚜렷한 폭발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화산은 언제 폭발할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서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화산 폭발에 대해 다소 황당한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외계인 관련설이다. 화산 폭발의 배후에 외계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과거에도 몇 차례 화산 분화구에서 UFO가 목격됐다며 이번 폭발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외계인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화산으로는 2000년 12월 18일 폭발한 멕시코의 포포카테페틀 화산이 있다. 당시 알폰소 레예스 기자가 촬영한 사진에는 분화구 근처에서 강한 빛을 띠며 지나가는 미확인 물체가 또렷이 찍혀 있었다. 검은 연기와 대조되어 빛나고 있던 이 물체의 정체에 대해서 사람들은 ‘비행기다’, ‘헬리콥터다’, ‘유성이다’라는 등 엇갈린 주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빛이 꺾인 각도로 보아서 모두 가능성은 제로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여전히 발광 물체의 정체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사실 이 화산에서 UFO가 목격된 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99년 멕시코재난방지기구가 설치해 놓은 감시카메라에 원반 모양의 희미한 검은 물체가 찍혔던 것이다. 분화구에서 아주 근접한 거리에 있었던 이 물체는 검은 연기 사이를 날고 있었으며, 당시 사람들은 원반 형태로 보아 UFO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화산 폭발이 악마의 소행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9ㆍ11 테러 당시 쌍둥이 빌딩 폭파 사진에 나타났던 악마의 얼굴이 이번 화산에도 발견됐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아이슬란드 해안경비대가 ELTA 레이더로 촬영한 화산 사진에 악마의 형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유럽이 위기에 빠졌다”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밖에도 이번 화산 폭발이 앞으로 일어날 2012년 지구 종말을 알리는 서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얼마 안 가 카틀라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빙하가 녹아내려 대홍수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어떤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것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근래 들어 세계 곳곳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대지진, 홍수, 폭풍 등 기후변화를 보면서 적지 않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화산 관광상품 인기
잿더미 위에서 낭만을…
지난 3월 20일부터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하면서 폭발 징후를 보였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지대는 4월 14일 폭발이 일어날 때까지 약 한 달 동안 화산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소위 ‘볼케이노 핫라인’으로 연락을 받은 세계 곳곳의 화산광들은 화산이 폭발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여행사의 전화 연락을 받고 하나둘 화산으로 모여들었다. 첫 번째 관광객이 도착한 것은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한 지 불과 48시간이 지나서였다. 그 후 약 2만 5000명의 아이슬란드 자국민들과 해외 관광객들이 화산을 구경하기 위해서 화산 일대를 찾았으며, 지난 한 달 동안 화산 인근 마을은 마치 축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들뜬 분위기였다. 지역 호텔들은 화산 관광을 온 사람들로 붐볐고, 마을에서는 모두들 화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들이었다.
화산 관광은 지프차나 스노모빌,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헬리콥터를 타고 분화구 위를 비행하면서 구경하는 관광상품은 45분에 282파운드(약 48만 원)며, 스노모빌을 타고 둘러보는 상품은 3~4시간에 190파운드(약 32만 원), 그리고 지프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10시간에 109파운드(약 18만 원)가 소요된다. 이밖에도 지역의 한 호텔에서는 ‘화산 레스토랑’ 야외 서비스까지 제공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도가 넘는 용암의 열을 이용해서 요리하는 ‘볼케이노 바비큐’ 메뉴의 가격은 2인당 650파운드(약 110만 원)였으며, 손님들은 화산을 배경으로 차려진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즐기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