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미착용 상태로 강의를 진행 중인 이종구 위원장.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연수기념 자료 발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8월 24일부터 8월 28일까지 5일간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에 위치한 오크밸리 리조트에서 개발도상국 보건의료 관련 공무원 및 전문가 등 약 30명을 대상으로 하는 제17차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을 진행했다.
이 행사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높이는 등 코로나 방역으로 비상이 걸려있던 시기에 열렸다. 8월 15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긴급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모두발언에서 “수도권 중심의 코로나19 확산세가 매우 심각하다”며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나섰다. 그는 “서울과 경기 주민께서는 앞으로 2주간 수도권 외 지역으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가급적 다른 시도로 이동하지 말아달라”라고 했다. 정부의 거리두기 격상에 따라 8월 16일부터 8월 30일까지 2주간 방역수칙을 의무적으로 적용하는 대상 시설이 확대됐다. 모임과 행사는 취소하거나 자제하라는 강력한 권고까지 함께했다.
이런 정부의 방침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행사를 강행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행사에서 마스크 준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이번 연수 기념자료에 따르면 이종구 위원장은 8월 25일 오후 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진행된 ‘만성 질환 및 건강 증진의 관리(Management of Chronic Diseases and Health Promotion)’ 강의를 진행하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종구 위원장은 최근 정부의 코로나 방역 관리의 최일선에 배치된 인사다. 올 3월 청와대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 보건의료혁신 TF를 만들고 감염병 대응 체계를 포함한 한국의 보건의료체계 개혁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종구 위원장은 이에 따라 TF 위원장이 됐다. TF가 코로나 방역의 선봉에 선 질병관리본부를 질병청으로 격상하는 문제도 지휘했다고 알려졌다. 그런 그가 정부의 거리두기 권고에도 열린 단체 행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강의를 한 셈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국제연수 주제는 ‘코로나 이후 전국민건강보험 전략’이었다.
이종구 위원장은 평소 마스크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역학적 연관성을 확인하지 못한 감염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감염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신종 코로나는 접촉에 의해 코와 입으로 들어가 감염된다. 손 잘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위생 수칙만 지키면 막을 수 있다. 열나고 기침하면 스스로 외출을 자제하고 보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행사 나흘 전인 8월 21일에는 “앞으로 1주일간 방역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하루에 1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앞으로 1주일간 사회적 거리두기, 감염 의심 증상 발생 시 외출 자제 등 정부의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면 전국 일일확진자 수가 7일 뒤 400명 내외에 머물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1000명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스크 미착용에 대해 이종구 위원장은 “처음엔 잘 안 들릴 것 같아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다만 충분한 거리를 두고 진행했다. 중간부터는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해명했다.
연수생조차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관광을 다녔다.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연수기념 자료 발췌
이종구 위원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연수에 참여한 국외 고위 공무원과 보건의료 전문가 여럿이 연수 장소 인근에 위치한 전시장 뮤지엄 산을 방문하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모습이 목격돼 지역 주민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 시기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어 강원도 원주시가 원주시 거주자 및 방문자를 대상으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지자체 행정명령을 내린 때였다. 원주시는 8월 24일 원주시에서 누구든 실내는 물론 실외에서도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정부의 지침이 무조건 행사를 하지 말란 게 아니었다. 행사에 따른 지침에 맞춰서 했다”며 “우리는 마스크 착용 및 거리두기를 하면서 행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