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락 팽현숙의 바통을 이어받아 1989년 결혼한 개그맨 2호 부부 김학래 임미숙 커플도 ‘1호가 될 순 없어’에 출연하고 있다. 첫 출연에서 임미숙은 최양락의 말에 속아 김학래와 결혼했다며 최양락의 멱살을 잡았다. 사진=JTBC ‘1호가 될 순 없어’ 방송 화면 캡처
#철없는 남편 vs 독설 아내
개그맨 부부를 예능 대세로 자리 잡게 만든 최양락 팽현숙 부부는 여느 연예인 커플은 시도할 수 없는 캐릭터를 구축했다. 최양락은 ‘구박’을 부르는 철부지 남편, 팽현숙은 그런 남편으로 인해 속을 끓이면서도 기어코 할 말은 쏟아내는 독설가 아내 역할이다. 이들은 연예인 부부의 일상을 보여주는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2’의 동반 해설자로 나서 경험자로서 따끔한 충고와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팽현숙의 전매특허 ‘사이다’ 해설은 이들 부부가 시청자에 호감을 쌓는 결정적인 힘이다.
최근에는 인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CF모델로도 나란히 발탁돼 ‘부부 전성기’를 맞고 있다. 흐뭇해 할 만한 상황인데도 팽현숙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광고주에게 사정사정해서 남편까지 끼워 넣어, 원 플러스 원을 이뤄냈다”고 폭로했다. 배우나 가수 등 스타 부부들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일종의 ‘깎아내리기’이지만 독설에 유머를 담아내 시청자에게 웃음을 안긴다.
최양락 팽현숙 부부 외에도 티격태격하면서도 이혼만큼은 하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가정을 지키고 살아가는 커플은 많다. 여러 번의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겪은 사실을 공개했음에도 여전히 남다른 금슬을 자랑하는 이봉원 박미선 부부, 무심한 남편 탓에 마음 고생하면서도 헤어지지 않은 김학래 임미숙 부부가 그렇다. 해마다 이혼율이 증가하지만 그 수치가 유독 개그맨 부부에겐 예외인 셈이다.
종합편성채널 JTBC ‘1호가 될 순 없어’는 개그맨 부부가 이혼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한 프로그램이다. 제작 관계자는 “이혼율이 증가하는 우리나라에서 이혼하지 않고 장수하는 개그맨 커플만의 비결이나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희로애락을 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사진=‘1호가 될 순 없어’ 포스터
‘1호가 될 순 없어’에는 최양락 팽현숙의 바통을 이어받아 1989년 결혼한 개그맨 2호 부부 김학래 임미숙 커플도 출연하고 있다. 결혼 31년 차 부부답게 ‘도박’ ‘외도’ 등 민감한 이야기도 가감 없이 풀어낸다. 임미숙은 “김학래가 해외를 갔는지 다른 걸(도박을) 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손을 검사해보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열흘씩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는 폭로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듯 보이지만 30여 년 동안 희로애락을 겪은 부부만이 풀어낼 수 있는 ‘진짜 인생사’라는 점에서 오히려 시청자의 공감을 얻고 있다.
개그맨 1, 2호 부부의 동반 출격 덕분에 ‘1호가 될 순 없어’는 올해 5월 방송을 처음 시작할 당시 2~3%를 오가던 시청률이 반등을 거듭해 최근 5.5%(닐슨코리아 기준)까지 상승했다.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고, 왠지 콧등이 찡한 이들의 인생사에 공감하는 시청자가 그만큼 늘고 있다는 의미다.
#박준형 김지혜, 강재준 이은형 ‘주목’
중년 개그맨 부부들의 활약은 후배들에게도 바통이 이어진다. 일단 ‘1호가 될 순 없어’에 동반 출연하고 있는 박준형 김지혜, 강재준 이은형 부부가 있다. 각각 2005년, 2016년 결혼한 이들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는 직업정신으로 똘똘 뭉친 부부이자 동료로서 ‘찐’ 케미스트리를 과시한다. 부부 사이의 에피소드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솔직함이 최대 무기로 꼽힌다.
예능 동반 출연은 아니지만 SNS를 통해 각별한 금슬을 자랑하는 개그맨 커플들은 더 있다. 2011년 결혼한 김원효 심진화 부부, 진행하는 라디오를 통해 배우자를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과시하는 윤형빈 정경미 커플은 각자 맡은 일에 열정적인 동시에 가정에도 충실한 모습으로 팬들의 신뢰를 얻는다. 특히 윤형빈 정경미 부부는 최근 6년 만에 둘째 아이 임신 소식까지 알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윤형빈 정경미 커플은 각자 맡은 일에 열정적인 동시에 가정에도 충실한 모습으로 팬들의 신뢰를 얻는다. 게다가 최근 정경미는 6년 만에 둘째 아이 임신을 알리기도 했다. 사진=정경미 인스타그램
연예인 커플을 일컫는 부정적인 수식어 ‘쇼윈도 부부’라는 말도 이들에게는 예외다. 남들 눈을 의식해 행복한 척 연기하다 파경을 맞은 숱한 스타 커플들 틈에서 개그맨 부부들은 티격태격 솔직한 일상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건강한 삶을 꾸린다. 팽현숙이 최양락을 향해 비수에 꽂힐 법한 독설을 날리고, 임미숙이 김학래의 치부를 들춰도 대중이 비난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오랜 시간 몸소 보여준 인내와 희생의 부부 생활이 있어 가능하다는 평가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 결혼한 홍가람 여윤정 커플까지 개그맨 부부가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이혼하지 않는 ‘이유’를 이들의 직업과 활동 무대에서 찾는 의견도 있다. 최양락 팽현숙 부부의 오작교가 된 1980년대 인기 코미디 ‘유머 1번지’는 물론 박준형 김지혜가 만난 ‘개그콘서트’, 강재준 이은형이 인연을 맺은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혹독한 연습을 거쳐야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이다.
한 예능프로그램 제작 관계자는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개그 프로그램은 준비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함께 지내면서 연습하고 호흡하는 기간이 길 수밖에 없다”며 “특히 개그맨이라는 동료의식과 대중에 웃음을 줘야 한다는 직업의식으로 똘똘 뭉쳐 공감대를 쌓은 사이이기에 여느 연예인 부부들과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