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무산되면서 채권단이 ‘플랜B’를 마련 중이다. 다만 항공업황이 계속 악화하고 있고, 아시아나의 부채 규모도 크다는 점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11일 산업 경쟁력 강화 장관 회의를 열고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지원 방식을 논의한다. 장관 회의가 끝난 뒤엔 바로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 기금운용심의회 회의를 열어 2조 원 안팎의 지원 방침을 확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회의를 거쳐 HDC현대산업개발(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의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SPA) 해지도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장관 회의는 채권단이 인수 계약 철회를 공식화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경영 회복을 시킨 뒤 적정 시점에서 재매각을 추진하겠다는 현재까지의 플랜B 구상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관측했다.
플랜B는 크게 △기존 주주들의 금호산업 보유 지분 감자 △산업은행(산은)과 수출입은행(수은)을 비롯한 채권단의 출자전환 △기안기금 투입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경영 악화에 대한 대주주의 책임을 묻고 자본잠식률을 줄이기 위해 대주주 금호산업의 아시아나 지분을 감자한다. 이자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는 산은과 수은이 보유한 아시아나 영구채 8000억 원을 출자전환해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기안기금도 2조 원 규모로 투입해 추가적인 유동성 지원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허희영 교수는 “대주주 지분 감자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자본을 줄인 뒤 채권단이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최대주주로 산은이 올라설 것”이라며 “당분간의 관리주체가 정해졌으니 기안기금을 투입해 경영 회복에 나설 것”이라고 봤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감자를 마음먹었다는 건 아시아나항공이 망했다는 걸 전제로 공적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뜻으로 경영 악화를 일으킨 대주주 지분을 없애는 작업”이라며 “일반 투자자들의 불필요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에 차등감자(대주주의 지분을 소액주주 지분보다 많이 감자하는 것) 등 방식을 놓고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수순으로는 자회사 매각과 구조조정이 거론된다. 아시아나와 함께 ‘통매각’하려다 실패한 에어부산,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등 6개 자회사를 매각해 아시아나 경영 정상화에 투입할 현금을 확보한다. 아울러 일부 리스 기재 반납 등 운영 축소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허희영 교수는 “IT 기반의 매력 있는 매물 아시아나IDT는 물론 저비용항공사(LCC)들까지 분리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며 “6개 자회사 가운데 가능한 건 모두 팔아 현금화하고 몸집을 줄여나가는 것이 경영 회복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리스 반납 등 운영하는 기재를 먼저 줄일 것이고 이는 인력 감축의 명분이 될 것”이라며 “한국 정서와 노동법, 정부 기조 상 인적 구조조정은 민감한 부분이지만 항공기 운용 대수가 줄면 정비사와 조종사, 항공사 등 관련 인력을 줄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다양한 정상화 방안이 언급되지만, 경영 악화에 대한 원인 규명이 가장 시급하다는 전문가 제언이 나온다. 허희영 교수는 “채권단은 구조조정이란 칼부터 빼기 전에 정상화 방안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영 악화에 대한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며 “그 과정이 없으면 업황이 좋아질 때까지 부실기업을 떠안고 가야 하고, 재매각을 추진해도 사갈 기업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오랫동안 부침이 있었음에도 왜 쇄신이 없었는지에 대한 자성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산은은 경영 혁신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방만 경영과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찾아내는 등 원점에서부터 원인을 밝혀야 한다”며 “아시아나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부터 파악하지 않으면 아무리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부실 경영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시장 상황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크게 위축됐다는 점에서 자회사들을 매물로 내놔도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우려의 시선도 감지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사태로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면서 아시아나항공도 안 팔리고 있다”며 “항공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아시아나IDT도 항공 관련 시스템 분야라는 점에서 매각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M&A가 무산되면서 아시아나 정상화 작업과 함께 HDC현대산업개발이 미리 납입한 계약금 관련 소송전이 이어질 전망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있는 용산아이파크몰. 사진=이종현 기자
아시아나 정상화 작업과 함께 현산이 미리 납입한 계약금 반환 소송전도 이어질 전망이다. 현산은 작년 12월 아시아나항공 SPA(주식매매계약)를 체결하면서 총 인수가액 2조 5000억 원의 10%인 2500억 원을 이행보증금으로 냈다. 항공과 증권 등 관련 업계에선 현산이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최근까지 재실사를 요구하며 끝까지 인수 의사를 내비친 것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딜 무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고 향후 벌어질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분석이다.
선례가 있다. 과거 2008년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하면서 계약금으로 지급한 3150억 원에 대해 반환 소송을 제기, 1260억 원을 돌려받았다. 다만 당시에는 한화 측 실사 과정이 없었다는 점이 참작된 만큼, 실사까지 마무리한 현산의 경우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도 있다.
황용식 교수는 “아시아나 M&A의 경우 현산 측 실사단이 사옥에 상주까지 하면서 진행했다. 그럼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실사를 다시 요구했다는 건 실사 당시 인수 의지가 없던 것으로, (책임을 피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며 “재실사 요구 시점과 인수 의지 진정성 등이 소송전의 향방을 가를 관건”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IB) 업계 관계자는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현산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미래에셋대우 측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시아나 인수 무산이 현산의 의지인지 미래에셋대우의 제안인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며 “계약금을 둘러싸고 현산과 미래에셋 측 내부 책임 공방도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