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회장은 취임 후 금호타이어, 성동조선해양, 동부제철(현 KG동부제철) 등의 매각을 완료하는 등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과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 매각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고, 정책형 뉴딜펀드 등 당면한 과제도 적지 않아 향후 그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매각 무산’ 아시아나 플랜B 가동할 듯
산은은 아시아나 주채권은행으로써 HDC현대산업개발(현산)과 아시아나 매각 계약을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항공업계가 어려워지자 현산은 지난 7월부터 재실사와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고,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지난 8월 이동걸 회장이 정몽규 현산 회장을 만나는 등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의 의견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KDB산업은행은 10일 “이동걸 산은 회장은 11일부터 제39대 산업은행 회장으로 연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9년 1월, 대우조선해양 매각 관련 기자회견을 할 당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이종현 기자
사실상 아시아나 매각이 불발되면서 이 회장은 당분간 아시아나 살리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지난 7월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매각을 시도할 때부터 여러 플랜B를 준비해왔다”며 “아시아나 영업이 정상적으로 될 수 있도록 유동성 지원, 영구채 주식전환을 통한 채권단 주도의 경영관리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605명을 정리해고한 이스타항공의 사례처럼 아시아나도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아직까지 산은이 아시아나 인력 구조조정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사태라는 악재 속에서 아시아나 경영을 쉽게 정상화시키기도 어렵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적 악화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정부 지원 기대감으로 유보해왔던 구조조정도 다시 확대되고 있다”며 “국내의 경우 이스타항공에 이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도 사실상 무산된 상태로 다운사이징이 불가피해졌다”고 전했다.
인력 구조조정이나 무급휴직 등을 진행할 경우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최근에도 STX조선해양 무급휴직을 놓고 진통이 있었다. 2018년, 산은은 STX조선 노동조합과 2년간 무급 순환에 합의했다. 하지만 STX조선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지난 6월 무급휴직 기간은 연장했고, 이에 STX조선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 7월 말 경상남도와 창원시가 생계지원 대책 등을 마련해주는 등의 조건으로 겨우 파업이 마무리됐다.
#늦어지는 대우조선 매각에 이동걸 회장 비판 목소리
이 회장이 추진 중인 대우조선 매각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산은은 2019년 3월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지만 기업결합 심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결합 심사는 두 회사가 일정 이상의 매출을 내는 한국, EU, 일본, 중국,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6개국에서 이뤄지며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인수는 무산된다. 현재까지 기업결합 승인을 내준 국가는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두 곳이다.
나머지 국가들이 인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낸 건 아니지만 승인을 낸 것도 아니어서 매각 작업은 하염없이 늦어지고 있다. 다만 정부는 올해 안에 대우조선 매각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중공업-대우조선 등 주요 기업결합을 연내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 사진=임준선 기자
그러나 기업결합 작업이 늦어지면서 대우조선 내에서는 이 회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해양지회(대우조선 노조) 측은 “2년 가까이 기업결합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며 결과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라며 “지난 2년 동안 대우조선은 매각 사업장으로 심각한 수주 부진과 과도한 경영간섭으로 노동자들은 온갖 희생을 감내했고, 그 결과 정상화 궤도에 올라있던 경영 상황이 코로나19와 겹쳐 위기로 전환됐다”고 비판했다.
대우조선 노조는 이어 “공적자금이 회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약 2조 원에 불과한 가치로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넘기려 하는 것은 재벌에 대한 명백한 특혜”라며 “산은은 처음부터 대우조선의 미래에는 관심 없이 오로지 책임 떠넘기기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성욱 위원장이 말한 올해 안에 매각을 완료하지 못하면 대우조선 내 이동걸 회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숙제 ‘정책형 뉴딜펀드’
최근 정부는 5년간 매년 4조 원씩 총 20조 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발표한 160조 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다. 산은이 정책형 뉴딜펀드 사업을 주관하게 되면서 이 회장이 뉴딜 정책에 핵심 역할을 하게 됐다.
산은 내부에서는 뉴딜펀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업은행지부(산은 노조)는 성명을 통해 “정책형 뉴딜펀드에서 산은의 과도한 후순위 참여와 손실이 예상되고, 뉴딜분야 자금공급 확대를 위한 경쟁의 심화 및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며 “인력 확충을 포함한 충분한 지원, 손실에 대한 평가 제외, 적극행정에 따른 직원들의 면책 등을 반드시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아직 노조 의견에 대한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 회장이 추진한 아시아나와 대우조선 매각 작업은 남은 과제가 산적해있고,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뉴딜 정책에서도 이 회장이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회장으로 선임하면 매각 작업에 혼란이 생길 수 있고, 임무를 수행할 인재도 마땅치 않은 것이 이 회장의 연임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의 인재풀이 넓지 않아 인사를 돌려막는 현상이 수차례 보였다”며 “정부 입장에서 남은 임기 동안 지금까지 진행해온 산업정책을 이어가려면 이 회장이 연임하는 게 굳이 다른 인사를 데려오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