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만 가구의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아파트에서 상가분양사기가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본 가계약서는 가락시영아파트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으로부터 상가 매매 사업권을 부여받은 갑(S 사)이 을(A)에게 다음의 내용으로 상가매수권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18년 10월, A 씨가 받아든 가계약서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A 씨가 S 사에 건넨 계약금은 2억 원으로 환갑이 넘은 A 씨의 노후자금이었다.
S 사는 자신들을 송파 헬리오시티의 상가분양 대행사라고 소개했다. 피해자들에게는 ‘상가분양사업권을 S 사에 부여한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보여줬다. 약정서에는 재건축조합장의 직인이 날인되어 있었다. 계약을 고민하면 “GS마트 등 대형 업체들도 이미 입점 의사를 밝혔다”며 입점의향서 등의 서류뭉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수법에 누군가는 5억, 누군가는 9억 6000만 원, 또 누군가는 31억 1000만 원을 투자했다.
피해자들이 의아함을 느낀 건 2019년 6월 ‘헬리오시티의 정식 상가분양대행업체가 선정되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부터다. 언론에 소개된 회사는 S 사가 아니었다. 보도를 접한 피해자들이 전후 사정을 묻자 S 사 측은 “상가분양대행권을 받기로 한 것은 우리 회사다. 현재 조합이 해당 업체를 상대로 분양금지 가처분소송을 벌이고 있다”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이 또한 거짓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인근 부동산중개인은 “가처분 소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조합 내부의 문제 때문이었다. 조합과 대행사, 그리고 입찰에 참여한 대행사들 사이의 법적다툼이었다. S 사는 대행사 선정 입찰에 참여도 하지 않았다. 회사 규모가 작아 자격조건에 미달됐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낸 계약금은 상가 분양 업무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쓰였던 것으로 수사결과 확인됐다. S 사 관계자들은 검찰 조사에서 “피해자들의 계약금을 개인채무 변제, 병원비 등 개인 업무에 사용하였다”고 진술했다. 즉, 상가매매 명목으로 돈을 받은 뒤 실제로는 전혀 다른 용도로 돈을 사용한 것이다. 계약 당시 피해자들에게 보여줬던 재건축조합의 직인이 찍힌 약정서와 대형 업체들의 입점의향서 역시 진위 확인이 불가능한 허위문서였다.
서울 송파 헬리오시티 아파트 건설 당시 인근 부동산중개업체에 입주권, 분양권 거래 안내 팻말이 세워져 있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명백한 사기 행위였음에도 사기에 연루된 인물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S 사의 실질 대표인 B 씨가 조사 과정에서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공소권이 사라져 버린 까닭이다. B 씨의 사망으로 사건 연루자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더이상 수사가 진행되지 못했다. 불기소 사유서도 ‘공소권 없음’으로 간단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사기 행위를 주도한 인물이 사망하였으므로 수사 대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진한 수사는 피해자들에게 상처만 남겼다. 피해자들은 피해액 가운데 일부 금액의 행방이 묘연하다며 사건 관계자 사이의 커미션 지급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그대로 인용해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그 사이 담당검사가 3차례나 바뀌었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이후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사실 관계를 확인해본 결과, 피해액 가운데 약 4억 원이 S 사의 하청업체로 송금되었으나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하청업체에서 재무이사로 일했던 관계자는 “근무 당시 ‘4억 원이 송금되는 즉시 다른 계좌로 이체해 달라’는 통화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며 사실확인서를 써주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추가 피해내역과 증거자료를 모아 대검찰에 재항고를 진행 중이다.
피해자 A 씨는 10일 “우리 모두 평범한 서민이다. 한 피해자는 딸에게 가게 하나 차려주려다 피해를 입었고, 노후자금을 모두 날리고 대출까지 받아 매달 이자를 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많은 돈이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만 수사해 달라고 해도 검찰은 실질 대표가 죽었다고 수사를 멈췄다. 피해자가 있고 피해금액이 있는데 어디서 변상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사법기관이 사기꾼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호소했다. 또한 피해자들 가운데에는 1980년대 가수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연예인도 포함돼 있다.
한편 대전지법은 지난 2월 스타벅스 커피숍을 입점시켜주겠다며 신축 상가 분양 계약금을 받아 개인 채무 변제 등에 사용한 시행사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피해자에게 편취한 5억 7000여 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