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시흥유통상가에서 집합건물법상 관리인 자리를 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집합건물 관리인 자리에는 큰 이권이 걸려 있다. 각 구분소유자에게 걷은 관리비와 주차장 등 공용부지에서 나오는 수익 등을 관리·집행하고 각종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실상 건물 대표 자리이기 때문이다. 실제 집합건물 관리인 역할을 하는 A 사는 2000년부터 꾸준히 60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해왔다. 2019년 매출액도 57억 2234만 원이다. 주차장 운영으로만 12억 4655만 원을 벌었다. 임직원 급여와 상여금, 제수당(시간 외 수당 등)으로 나간 돈은 13억 8556만 원에 달했다.
3700개 점포에, 구분소유자만 1470명인 시흥유통상가는 1987년 6월 문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한나라개발 주식회사라는 업체가 상가 관리를 맡았다. 이 업체는 분양과 입점이 끝날 때까지만 상가를 관리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한나라개발은 구분소유자 절반 이상이 상가로 등기를 끝냈을 시점인 1990년 6월 설립된 A 사에 상가 관리권을 넘겼고, A 사가 지금까지 상가 관리를 하고 있다.
집합건물법에 따르면 분양자는 구분소유자 절반 이상이 등기를 마치면 3개월 안에 관리단집회를 소집해 상가 관리인 선출을 도와야 한다. 당시 분양자였던 시흥유통산업 주식회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관리단집회를 소집하지 않았다. 관리인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건물과 대지, 부속시설 등을 관리할 의무가 있던 시흥유통산업은 상가 관리권이 한나라개발 주식회사에서 A 사로 넘어가는 걸 눈 감아 준 셈이다.
A 사가 상가 관리를 담당한 이후 30년 동안 관리단집회가 소집되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상가 관리단이 구성되고 관리인이 선출되는 일도 없었다. 관리단집회는 A 사 주주총회로 대체됐다. A 사는 주주총회를 거쳐 상가 관리에 관한 의사 결정을 해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분소유자의 요구가 관철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상가 구분소유자 이 아무개 씨는 “관리비가 다른 상가보다 비싸 항의를 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다. 구분소유자 5분의 1의 요구가 있으면 임시 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데, 임시 회의를 개최할 관리단 자체가 없다”며 “관리비를 내지 않고 버티니 전기를 끊어서 3년 동안 자체 발전기를 돌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A 주식회사는 30년 동안 시흥유통상가의 관리인 역할을 해왔다. 구분소유자 1470명의 동의는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시흥유통상가 구분소유자이기도 한 박완근 시행유통상가 관리단 운영위원장은 “집합건물법을 몰랐다. 처음부터 A 사를 관리를 맡아왔으니 그런 줄 알았다. 관리단집회 통지 또한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구분소유자 몫으로 돌아가야 할 주차장 등 공용부지 수입이나 매월 내는 관리비가 A 사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 A 사 임직원은 상당한 급여를 받아 가고 있다. 구분소유자가 A 사 임직원 배를 채워주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A 사는 구분소유자 모두가 A 사 주주로 등재돼 있어 실질적으로 관리인 지위를 유지하는 데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A 사는 설립 당시 상가 구분소유자 전원을 A 사 주주로 등재했다. A 사 대표는 10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상가 구분소유자 모두가 A 사 주주다. 실질적으로나 합법적으로 관리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나머지 질문에 대해선 소송이 진행 중이니 답변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에 박 위원장은 A 사 설립 당시 구분소유자 명부를 갖고 있던 발기인 12명이 임의로 구분소유자들을 A 사 주주로 등재했다고 주장한다. 실제 30년 전 분양계약서와 분양 안내 책자엔 A 사의 주식을 취득한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박 위원장은 “만약 임의로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투표 없이 주식회사가 30년 동안 관리인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나병용 변호사는 “절차상 투표를 거치지 않고 주식회사가 관리단과 관리인이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주식회사가 관리인 역할을 하다보면 집합건물법과 상법이 충돌하는 지점이 생기기도 한다. 한 예로 관리단은 정관을 바꾸기 위해선 구분소유자의 5분의 4 동의가 필요하다. 회사는 주주총회에서 주주 3분의 2 동의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주식회사가 관리인이 된다는 건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