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시즌 KBO 올스타전은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24인의 올스타 선발은 진행됐다. 사진은 KBO리그 경기에 앞서 열린 올스타 베스트12 시상식. 왼쪽부터 맷 윌리엄스 감독, 터커, 박준표, 김선빈, 페르난데스, 김재환, 김태형 감독. 사진=연합뉴스
올스타전 개최 무산도 가장 아쉬운 변화 중 하나였다. KBO 올스타전은 출범 원년인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개최됐다. 매년 7월이면 투표로 뽑힌 그해 리그 최고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팬과 함께하는 축제를 즐겼다.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올스타전 개최 예정일이던 7월 25일이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갔다. 선수도, 팬도 안타깝고 허전할 수밖에 없었다.
매년 선정되는 24명의 올스타 베스트 멤버는 현역 선수들에게 최고의 영예이자 KBO리그의 값진 역사였다. 올스타전 출전 명단은 단순히 그 시즌 가장 성적이 좋은 선수의 이름만 담고 있는 게 아니다. 리그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흐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사료로 남는다. 따라서 KBO는 고심 끝에 묘수를 생각해냈다. ‘언택트’(비대면) 사회의 흐름에 발맞춰 ‘올스타전 없는’ 올스타 베스트12를 선정하기로 했다.
#마침내 결정된 24인의 올스타
8월 10일부터 9월 24일까지 26일간 팬 투표가 진행됐다. 야구장 관객 현장 투표와 선수단 투표는 불가능한 상황. 오직 KBO 홈페이지와 KBO 공식 애플리케이션(앱), 신한은행 SOL(쏠) 앱 등 3개 플랫폼에서만 ‘언택트’로 표를 던져야 했다. 그런데도 무려 137만 1993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지난해 최종 투표수(121만 5445표)보다 약 13% 증가한 수치다. 야구장을 직접 찾을 수 없는 ‘방구석 1열’ 팬들의 응원 열기가 올스타 투표로 몰렸다. 관중석 대신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서 클릭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게 끝난 2020 KBO리그 올스타 ‘베스트12’ 팬 투표 결과는 9월 7일 공개됐다. 드림 올스타(두산 베어스, SK 와이번스, KT 위즈,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12명과 나눔 올스타(키움 히어로즈, LG 트윈스, NC 다이노스,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12인을 합해 프로야구 최초의 ‘언택트 올스타’ 24인이 베일을 벗었다.
가장 빛난 별은 올해 KBO리그에 데뷔한 드림 올스타 유격수 딕슨 마차도(롯데)였다. 100%에 육박하는 수비율을 자랑하는 마차도는 중전 안타가 될 타구까지 낚아채는 ‘예술 수비’로 연일 화제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총 84만 9441표를 얻어 키움 외야수 이정후와의 치열한 최다 득표 경쟁에서 승리했다.
잠시 위기도 겪었다. 투표 기간 내내 1위를 지키던 마차도는 투표 마감 일주일 전 3차 집계에서 이정후에 1만 9765표 차로 추격당했다. 위기감을 느낀 롯데 팬이 일주일간 열정적으로 표를 모아줬다. 결국 최다 득표 1위 자리를 지켰다.
올스타 팬 투표에서 외국인 선수가 최다 득표한 건 2008년 롯데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 이후 12년 만이다. 둘 다 롯데 소속으로 뛰었는데,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르다. 가르시아가 홈런으로 부산을 열광하게 했다면, 마차도는 천재적인 수비와 센스 있는 타격으로 야구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정후는 마차도를 끝까지 추격했지만, 추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총 83만 1755표를 얻어 1만 7686표 뒤진 전체 2위에 올랐다. 대신 나눔 올스타에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양 리그 최다 득표자인 마차도와 이정후에게는 다른 선수들보다 두 배 많은 상금 100만 원이 주어졌다.
롯데 팬들의 열정적 지지를 받은 유격수 딕슨 마차도는 84만 9441표를 얻어 최다 득표 선수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언택트 올스타 24인의 면면은?
두산 김재환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해 가장 극적으로 올스타에 승선했다. 그는 드림 올스타 외야수 부문에서 3차 집계까지 삼성 라이온즈 구자욱에 1191표 차로 뒤졌다. 근소한 차이지만, 구자욱 역시 팬덤이 만만치 않은 선수라 역전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김재환은 남은 투표 기간 일주일 동안 홈런을 펑펑 때려내며 표심을 사로잡았다. 결국 구자욱보다 4만 8221표를 더 얻어 외야수 세 자리 중 마지막 하나를 꿰찼다. 2016년에 이어 5년 만이자 개인 두 번째 올스타 베스트12 선정이다.
터줏대감의 기세도 여전했다. 드림 올스타 포수 강민호(삼성)는 2007~2013년, 2015년, 2019년에 이어 개인 통산 10번째 올스타 베스트 멤버가 됐다. 올해 올스타 24명 가운데 최다 경험자다. 나눔 올스타 외야수 김현수(LG)도 2013년부터 올해(미국에서 뛴 2016~2017년 제외)까지 6년 연속 베스트 멤버로 뽑혔다. 역시 올해 올스타들 중 최다 연속 기록이다. 반대로 ‘올스타’라는 타이틀을 처음 얻은 선수들도 있다. 롯데 투수 구승민과 김원중이 각각 드림 올스타 중간 투수와 마무리 투수로 확정됐다. 나눔 올스타에선 NC 구창모(선발 투수)와 강진성(1루수), KIA 박준표(중간 투수), 키움 조상우(마무리 투수)가 데뷔 후 처음 베스트12에 포함됐다.
전통의 인기 구단 롯데는 투표 기간인 8월에 유독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 덕에 가장 많은 5명의 올스타를 배출했다. 외야수 손아섭을 제외하면 네 명 모두 새 얼굴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마침내 원활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신호다. 늘 마운드가 약한 팀으로 꼽혔는데, 올해는 선발 투수 댄 스트레일리를 포함해 투수 부문 세 자리를 모두 롯데 선수가 채웠다.
비인기 구단으로 분류되던 NC도 올해 올스타 4명을 내놓는 기세를 뽐냈다. 롯데에 이어 최다 배출 2위. 나눔 올스타 베스트12 가운데 3분의 1이 NC 선수다. 구창모, 양의지(포수), 나성범(지명타자)까지 세 명이 70만 득표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이 외에도 키움과 KIA는 3명씩, LG·두산·삼성·KT는 2명씩, SK는 1명을 각각 배출했다. 한화는 올 시즌 유일하게 ‘올스타 없는 구단’으로 남게 됐다.
#언택트 레이스의 특별한 방식
이렇게 선정된 올스타들은 9월 8일부터 27일까지 ‘언택트 올스타 레이스’를 펼친다. 한 자리에 모여서 겨룰 수 없으니, 각 소속팀에서 ‘따로 또 같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기간 올스타들이 기록한 WPA(Win Probability Added·승리 확률 기여도)를 매일 집계한 뒤 더 높은 평균 점수를 기록한 팀이 하루에 1점을 얻는다. 그렇게 3주간 더 많은 점수를 쌓은 팀이 승리하게 된다. 레이스 종료 후에는 우승팀 선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한 선수를 ‘미스터 올스타’로 선정한다.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출입기자단이 투표로 뽑는다. 올스타로 뽑힌 선수들은 KBO가 특별 제작한 올스타 패치를 유니폼에 부착하고 경기에 나선다.
올스타전의 백미인 ‘홈런 레이스’도 빼놓을 수 없다. ‘언택트 레이스’ 기간에 선수들이 친 홈런을 기준으로 성적을 낸다. 그렇다고 단순 홈런 수로 우승자를 가리는 건 아니다. 팀이 그 선수의 홈런으로 올린 득점을 합산해 가장 큰 기여를 한 선수가 우승한다. 솔로 홈런 3개를 치는 것보다 만루 홈런 하나를 치는 게 더 큰 점수를 얻는다는 얘기다. 각 팀의 누적 점수와 각 선수의 WPA, 홈런 포인트는 KBO 홈페이지와 신한은행 앱에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KBO 관계자는 “올스타전 무산 이후 많은 팬이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대안을 찾아 달라’는 요청을 했다. 결국 세계 최초로 이런 아이디어를 실현하게 됐다. 모든 ‘언택트’ 이벤트는 결국 올스타의 역사를 어떻게든 이어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시대’를 헤쳐 가는 새로운 돌파구다.
#올해 올스타는 어떻게 다른가
올스타는 드림 올스타와 나눔 올스타로 양분된다. 전년도 성적과 무관하게 늘 같은 팀으로 나눠져 있으니, 때로는 전력이 확연하게 한쪽으로 기우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역대 상대 전적은 과거 ‘동군’으로 분류됐던 드림 올스타가 월등하게 앞서 있다. 8개 구단 체제였던 2009년엔 이스턴리그(SK·두산·롯데·삼성)와 웨스턴리그(한화·KIA·넥센·LG)로 나뉘어 올스타전을 치렀는데, 전년도 1~4위 팀과 5~8위 팀이 대결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도 드림과 나눔 올스타는 똑같이 나뉘어 있지만, ‘언택트 올스타 레이스’에선 또 다른 진풍경이 벌어질 수 있다. 나눔 올스타 투수와 타자가 각 소속팀 경기에서 적으로 맞대결한 뒤, 그 결과가 다시 나눔 올스타 성적으로 함께 반영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선수단 투표가 일시적으로 사라진 것도 큰 변화다. 2014년까지는 팬 투표 결과를 100% 반영해 베스트 멤버를 뽑곤 했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투표가 도입되면서 인기 구단 선수들이 라인업 대부분을 점유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결국 2015년부터 선수단 투표 결과를 30% 반영해 ‘올스타’의 공정성을 높였다. 이 때문에 팬 투표에서 2위로 밀리고도 선수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올스타로 뽑힌 선수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2018년에는 LG의 오지환과 이형종이 팬 투표와 선수단 투표에서 모두 2위를 하고도 총점에서 다른 선수들을 앞서 베스트 멤버로 뽑히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 역시 팬 투표에선 LG 김현수가 전체 1위를 차지했지만, 선수단 투표에선 SK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이 앞섰다. 그 결과 팬 투표 2위에 오른 로맥이 총점 49.63점으로 김현수(49.61점)를 근소하게 앞서 최고 득점 올스타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여러 제약으로 선수단 표심을 올스타 선정에 반영할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올스타 한 팀에는 베스트 멤버 12명 외에 감독 추천 선수 12명이 포함됐다. 올해는 감독 추천 선수가 따로 없다. 올스타전이 열리지 않으니, 경기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백업 인원을 따로 뽑을 필요도 없어서다. ‘올스타’ 훈장을 얻는 선수도 절반으로 줄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