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교수
그렇기 때문에 ‘행정부의 비대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할 당시,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상당수 국가에서 행정부 수반에 대한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을 봐도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회의 존재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회의 존재감 상실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한 이유는, 여당이 국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다수제적 방식보다는 합의제적 방식으로 운영돼야 정상이다. 의회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은 다수제적 방식으로 선출되지만, 국회 운영은 다수제적 방식으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수단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즉, 국회에서 어떤 사안을 가결할 때는 다수결 방식에 의존하지만, 다수결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의 실현 수단일 뿐, 민주주의의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합의제적 국회 운영을 통해, 소수 의견이 결과에 반영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소수라고 하더라도 의회의 결과물에는 이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민주주의의 가치가 실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21대 국회는 출범부터 민주주의 수단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대체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쉽게 말하자면, 여당이 숫자로 밀어붙이기만 했다는 말이다. 여당이 이런 모습을 보여준 데에는, 여당이 의회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집권 세력’의 일부로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만일 여당이 의회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우선적으로 가졌더라면, 당연히 행정부 견제를 먼저 생각했어야 했고, 그렇다면 야당과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면서 법안을 처리했을 텐데, ‘집권 세력’의 일부라는 생각이 앞섰기에 야당을 배제한 상태에서 국회를 운영했던 것이다.
부동산 3법 처리가 그 대표적인 예다. 여당의 태도가 이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은, 21대 국회 원구성 때부터 예측이 가능했다. 국회 상임위 중에 자신들이 가지고 싶은 7개를 먼저 차지하고 나머지를 야당과 협상하겠다는 식으로 나올 때부터, 그리고 17대 국회 이후부터 관행적으로 야당 몫이었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을 때부터, 여당의 독주는 예견됐다.
문제는 이런 식의 국회운영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 같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 처리 문제를 봐도 그렇다. 현재 여당은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즉각 추천하고 공수처의 정상적인 출범을 약속한다면 특별감찰관 후보자와 북한인권재단 이사의 국회 추천을 진행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여당의 이런 태도는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왜냐하면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2014년 여야 합의로 통과된 특별감찰관법에 의해 당연히 임명됐어야 함에도 3년이 훨씬 넘도록 계속 공석이었고,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도 당연히 국회가 했어야 할 일임에도 방치됐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당연함’이 ‘야당의 요구’가 됐고, 여당의 협상 카드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앞으로 21대 국회가 결코 과거 100일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국회가 한심하면 나라가 엉망이 된다는 점을 이제 자각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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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