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감독이 시즌이 한창 치러지는 가운데 자진 사퇴로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하나금융그룹이 대전시티즌을 인수하게 된 배경에는 김정태 회장의 축구 사랑이 한몫했다. 하나금융은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의 메인스폰서로 참여하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 축구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이로 인해 김정태 회장은 2017년 대한민국 축구 공헌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하나금융그룹이 대전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을 창단하게 됐으니 대한축구협회(KFA)도, 프로축구연맹도 기대를 부풀릴 수밖에 없었다.
초대 이사장은 허정무 전 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초대 사령탑으로는 황선홍 감독을 선임했다. K리그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명문 구단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김정태 회장의 굳은 의지가 축구계 거물급 이사장과 감독 영입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금융그룹은 선수 영입에도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축구대표팀 출신의 골키퍼 김동준이 대전 유니폼을 입었다. 이규로, 윤승원, 박용지, 이웅희 등 K리그1에서 기량을 검증받은 선수도 대전에 합류했다. 브라질 세리에 A(1부 리그) 명문 코린치안스 공격수 안드레 루이스와 지난해 여름 전남 드래곤즈에 합류해 10골(16경기)을 몰아친 스트라이커 브루노 바이오, 인천 유나이티드와 포항 스틸러스에서 활약했던 코너 채프만도 대전 유니폼을 입었다.
대전이 기업 구단으로 재창단하면서 선수단 운영에만 20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도 서영재, 에디뉴 등 수준급 선수들의 대전행이 이어졌다. K리그2 구단이 전북 현대, 울산 현대보다 더 많은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FC 서울을 떠난 후 야인으로 맴돌던 황선홍 감독에게 대전은 기회의 땅이었다. 1부리그 승격을 목표로 내건 황 감독은 5월 개막 후 K리그2 5경기서 무패 행진(3승 2무)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러나 8월 들어 대전은 급격히 흔들렸다. 4경기 연속 무승(3무 1패)에 그친 적도 있었다.
현재 팀이 승점 30점으로 K리그2 3위에 오르는 등 표면적인 성적은 나쁘지 않지만 황 감독은 구단과 상의 후 자진 사퇴 형식을 밟았다. 우승은 몰라도 플레이오프를 통해 충분히 1부 리그 승격을 노릴 수 있는 상황에서 황 감독의 자진 사퇴는 여러 가지 면에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황 감독은 사퇴에 앞서 구단 모든 권한을 위임 받은 허정무 이사장과 갈등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축구계에서는 황 감독의 사퇴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허정무 이사장과 황 감독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황 감독이 7월 초 수원 FC전 패배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면서부터였다.
“좋은 팀이 되기 위해선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 승리를 위해 구단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하겠다.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좋은 팀이 될 수 없다.”
패장의 인터뷰 내용으로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구단이 승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는 등의 표현은 황 감독이 구단을 향해, 그리고 허정무 이사장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그 즈음 축구계에는 대전 고위 구단 관계자가 선수들 드레싱룸에 들어가거나 감독의 전술, 전략에 개입하는 등 여러 간섭들로 황 감독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구단은 경기 후 감독과의 미팅에서 공격과 수비에 대한 의견만 전달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전 구단 사정을 잘 아는 축구인 A 씨는 당시 황 감독의 인터뷰 내용으로 인해 구단은 물론 허정무 이사장도 황 감독에게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허 이사장과 황 감독은 포항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난 이후 2005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감독 허정무, 코치 황선홍으로 재회했다. 대전하나시티즌으로 팀이 재창단됐을 때 초대 감독으로 황 감독을 추천한 이는 허 이사장이었다. 주위에서는 FC 서울에서 실패한 지도자라는 인식 때문에 황 감독의 선임을 반대했지만 허 이사장이 한국 축구를 위해서도 황선홍과 같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지도자가 명예 회복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며 황 감독을 강하게 밀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막상 황 감독이 이끄는 선수단은 특징 없는 축구로 내용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여름까지 대대적인 선수 영입으로 선수단을 전폭 지원했던 허 이사장도 제자이자 후배인 황 감독에게 몇 차례 조언을 해준 것으로 보이는데 황 감독 입장에서는 그걸 구단의 월권이자 간섭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또 다른 축구인 B 씨도 비슷한 의견을 덧붙였다.
“대전하나시티즌의 구단주인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허정무 이사장과는 오래 전부터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20년 넘게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온 김 회장은 허 이사장을 신뢰했기 때문에 창단팀 관련된 모든 권한을 허 이사장에게 부여했을 것이다. 허 이사장은 내년, 내후년이 아니라 당장 올 시즌 K리그1 승격이라는 성적이 필요했다. 대전은 K리그2 3위에 오르긴 했어도 올 시즌 경기 내용을 살펴보면 무색, 무취나 다름없었다. 감독의 색깔이 보이지 않는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선취점을 올리면 남은 시간은 수비로 잠그고 가기 일쑤였다. 그런 점에서 구단주를 비롯해 고위 관계자들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황 감독 체제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정리된 게 아닌가 싶다.”
허 이사장과 황 감독의 불화설을 보면 자연스레 조광래 대구 FC 대표이사가 떠오른다. 조광래 대표는 비인기 지방팀이었던 대구FC를 1부 승격에 이어 인기와 성적을 끌어 올리며 K리그1 신흥 강호로 부상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와 함께했던 안드레 감독이 재계약 불발로 팀을 떠났지만 안드레 감독이 대구를 이끌 때 항간에는 조 대표가 선수단 전술에 관여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브라질 출신의 안드레 감독은 조광래 대표가 사령탑을 맡았던 안양 LG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당시 맺은 사제지간의 연으로 2015년 대구 코치로 부임했고, 2017년에는 감독대행을 맡은 뒤 시즌 직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며 2018년에는 FA컵 우승, 2019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등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난 시즌을 마치고 석연찮은 이유로 안드레 감독과 대구는 재계약을 맺지 않았다. 축구계에서는 오랫동안 반복된 조 대표와 안드레 감독 간의 마찰이 재계약 불발로 이어졌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허정무 이사장과 황선홍 감독은 자신들을 둘러싼 시각에 어떤 입장도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리 포장을 하려 해도 내용이 드러날수록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8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해 친정팀인 포항을 거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던 황 감독은 서울에 이어 대전에서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올 초 중국 연변 푸더 사령탑에 올랐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시즌을 앞두고 구단이 전격 해체되는 황당한 해프닝도 겪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에게 명예 회복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허정무 이사장의 계획은 창단 첫 시즌부터 실패로 끝난 셈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