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대통령이 2년 전 대선 출마를 앞두고 일었던 베라 베이커와의 섹스스캔들이 다시 불거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49)이 또 다시 불거진 ‘베라 베이커 스캔들’ 때문에 난처하게 됐다. 베라 베이커(35)는 지난 2004년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오바마 캠프에서 정치자금 모금 및 재무를 담당했던 미모의 여성이다. 스캔들의 골자는 선거 기간 동안 오바마와 베이커가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심지어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이런 소문이 언론을 통해 처음 보도된 것은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 2008년 10월이었다. 당시 미 연예주간 <내셔널 인콰이어러>, 보수 월간지 <뉴스맥스>, ABC 및 NBC 방송 등이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했지만 명백한 증거도 없는 데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때라 별다른 후속 보도 없이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베이커 스캔들’이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는 최근 “오바마의 혼외정사와 관련된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했다”는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후속 보도 때문이었다. 과연 사실일까. 아니면 2년 전처럼 다시 근거 없는 악소문으로 치부된 채 묻히고 말까.
<내셔널 인콰이어러>에서 주장한 결정적인 증거란 다름아닌 워싱턴 D.C 소재의 ‘조지 호텔’에서 찍힌 오바마와 베이커의 CCTV 녹화 테이프였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당시 오바마와 베이커를 호텔에 내려줬다는 운전기사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사에서 “둘이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을 수도 있다”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물적 증거로써 CCTV 테이프를 확보했으며, 조만간 공개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 일간신문 <르 마탱>도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보도에 가세하면서 “CCTV 화면에는 오바마와 베이커의 낯 뜨거운 자세가 찍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발 더 나가서 익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팀이 둘 사이에 오간 이메일을 증거로 발견했다고도 주장했다.
이 일련의 보도를 통해 워싱턴 정가는 물론 온 미국이 들썩였던 것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와 함께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편이자 아버지의 모습만 보여줬던 오바마가 과연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지 도통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이 충격적인 보도 내용을 일부 수정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CCTV 테이프를 아직 확보하지는 못했고, 테이프가 존재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현재 조사 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테이프를 아직 손에 넣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기사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과거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나 타이거 우즈의 불륜 사실을 터뜨리는 등 행운이 따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어째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며 비난하는 반응 일색이었다. 주요 언론사들 역시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가급적 신중해야 한다며 보도를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반대로 신이 난 것은 오바마의 정책과 개혁을 반대해온 ‘반 오바마파’와 야당인 공화당이다. 알려지지 않은 한 ‘반 오바마 단체’는 CCTV 테이프나 그밖에 오바마의 불륜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보하는 사람에게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 정도로 열의를 보이고 있다.
▲ 베이커는 오바마 대통령이 2004년 상원의원 출마 당시 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여성이다. |
만일 CCTV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남은 증거는 운전기사의 증언 하나뿐이다. 즉 “둘을 함께 호텔에 내려줬다”는 증언이 전부인 것이다. 사실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선거 참모와 선거 후보가 함께 호텔을 찾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불륜을 단정지을 수는 없다. 정작 이상한 점은 다른 데 있었다. 선거가 끝나기 직전 혹은 직후에 갑자기 사라진 베이커의 행방이었다.
우선 ‘호텔에서의 하룻밤’ 소문이 시작된 2004년 5월 18일 밤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오바마는 선거자금 모금 행사차 워싱턴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오바마가 도착하기 전 베이커는 운전기사에게 연락해서 자신을 조지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잠시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면서 위층으로 올라갔고, 운전기사는 로비에서 베이커를 기다렸다. 당시 운전기사는 베이커가 옷가방을 들고 있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미 그녀가 호텔에 방을 잡아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온 베이커는 레이건 공항으로 오바마를 마중 나갔으며, 오바마를 만난 후에는 함께 거물급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서 조지타운으로 향했다. 운전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오바마와 베이커는 다음 일정으로 DC 아모리에서 열리는 AIPAC 회의에 참석했으며, 모든 일정을 마친 후에는 다시 조지 호텔로 향했다. 운전기사는 둘이 같이 호텔로 들어갔으며, 자신은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운전기사의 증언은 2008년 10월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소문을 퍼뜨린 것이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 내부의 오바마 반대파였다는 데 있었다. 처음으로 베이커와 관련된 소문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던 것은 이보다 앞선 8월 무렵이었다. 당시 오바마와 불꽃 튀는 후보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힐러리 클린턴 진영의 일부 지지자들이 흘린 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클린턴을 제치고 민주당 후보가 된 후에도 이런 소문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옥토버 서프라이즈’라고 불릴 만큼 가장 많은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10월, 다시 한 차례 소문이 퍼졌다. 대선을 불과 한 달 반 정도 남겨둔 상태였기에 자칫하다간 오바마의 당락을 결정할 변수로 여겨지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내셔널 인콰이어러>와 <뉴스맥스> ABC, NBC 방송들은 당시 오바마 후보의 혼외정사가 의심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간략하게 보도했다. 그렇지만 집중적으로 스캔들을 추적하거나 혹은 열성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사들은 없었다.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있던 데다 오바마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선뜻 나서려고 하는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경우에는 오히려 당선 전에 스캔들을 폭로할 경우 대통령이 된 후 터뜨렸을 때보다 그 파장이 적을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클린턴처럼 오히려 백악관에 있을 때 폭로해야 더 세간의 관심을 끄는 특종이 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는 것이다.
▲ 대학 시절 만나 결혼에 골인한 오바마와 미셸. 둘은 잉꼬부부로 소문 나 있다. |
그랬던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분명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2006년 회사 문까지 닫았던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카리브해에 위치한 마르티니크섬에서였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섬에서 지내고 있던 베이커는 섬에서 만난 <데일리 메일> 기자에게 “나는 오바마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라며 스캔들에 대해서 강력히 부인했다. 선거가 끝난 후 시카고에 있는 ‘알타 캐피탈 그룹’으로 옮겨 잠시 일했으며, 그 후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져 섬으로 이주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미셸 오바마의 압력에 못 이겨 베이커가 섬으로 떠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요컨대 오바마와 베이커의 사이를 눈치 챘던 미셸이 일부러 선거자금 모금 업무에서 그녀를 제외시킨 후 ‘추방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당시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선거에서 승리했는데도 불구하고 미셸은 무언가에 대단히 화가 나 있었으며, 늘 안색이 불편해 보였다고 한다.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는 명확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아직까지는 심증만 갈 뿐 물증이 없는 상태기 때문에 주요 언론사를 비롯한 미국인들 역시 스캔들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길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과연 건강보험 및 이민법, 금융 등 여러 분야에서 박차를 가하고 있는 오바마의 개혁 정책이 이번 스캔들로 인해 발목을 잡힐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껏 행복한 미국 가정의 본보기로 여겨졌던 오바마 부부가 혹시 성추문으로 망신을 당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의 전철을 밟게 되진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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