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약품 밀반입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걸그룹 ‘2NE1’의 멤버 박봄. 박봄은 국제 특송우편으로 암페타민 82정을 미국에서 들여오다 인천국제공항 세관에 적발됐다. 사진은 2019년 3월 솔로 싱글앨범 ‘Spring(봄)’ 발매기념 미디어 쇼케이스 당시로 박봄의 소속사 대표가 2010년 암페타민 사건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암페타민은 우울증, 비만, 기관지 천식, 간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의 치료에도 활용된다. 당시 박봄 측은 미국에서 치료 목적으로 암페타민을 처방받아 복용했으며 국내에서는 금지된 약물임을 몰랐다고 해명했고 결국 검찰은 입건유예를 해준다. 입건유예 자체가 워낙 흔치 않은 조치인 데다 마약 관련 사건인 까닭에 봐주기 수사 논란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 특히 본인 집 주소가 아닌 할머니 주소로 암페타민을 보낸 점, 소포 상자에 내용물을 젤리류라고 쓴 점 등이 의혹을 부채질했었다.
연예계에서 마약류 해외 직구가 본격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2014년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연예계뿐 아니라 일부 20~30대 사이에 미국에서 파는 가죽 세척제 직구가 유행했다. ‘러쉬(Rush)’라고 알려진 이 약물은 미국에서 실제 가죽 세척제로 판매되고 있어 구입이 쉽고 국내 반입도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구입 이후 가죽 세척 용도가 아닌 환각을 위한 신종 마약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2013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러쉬를 임시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하면서 그제야 국내 반입이 금지됐다. 본격적인 단속이 이뤄진 2014년 관세청이 적발한 러쉬 불법 반입량은 그해 적발한 신종 마약류 전체의 38%나 차지했다. 러쉬는 결국 2016년 마약류로 정식 지정됐다.
한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는 “러쉬에 대해서는 2013년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해외에서 살다 들어와 연예인으로 데뷔한 이들에게 미국에서 가죽 세척제로 쓰이는 약물이 있는데 그게 최음제로 최고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며 “그땐 정말 가죽 세척제를 먹어도 되나 싶었고 최음제가 마약이라는 생각도 안해 크게 신경 안 썼다. 그럼에도 혹시나 싶어 해외로 러쉬를 주문하는 연예인들이 주위에 있었다. 나중에야 그게 정말 신종마약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요즘은 연예인들이 신종 마약류로 분류되는 약물을 해외에서 직구하는 사례가 크게 줄어들었다. 우선 이런 방식으로 마약류를 구하는 게 어려워진 데다 워낙 인천국제공항 세관의 단속도 강화됐다. 게다가 최근 들어 워낙 국내 반입 금지 약품이 늘어 약품 해외직구 자체가 크게 줄었다.
그렇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크웹이나 SNS 등을 통해 해외 판매자에게 가상화폐로 결제를 하고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로 국내에 반입하는 사례는 늘고 있다. 앞서의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는 “걸리면 은퇴를 각오해야 하는 연예인이 세관 단속이라는 관문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러쉬는 가죽 세척제인 줄 알았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마약류는 너무 무모하다”고 설명한다. 이런 까닭에 마약을 찾는 연예인들은 던지기 수법 등으로 국내에서 마약을 불법 유통하는 업자들을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적발되곤 한다.
2014년 인천공항세관이 적발한 신종 마약류 러쉬. 가죽 세척제로 속여 해외직구로 들여오던 러쉬는 2013년 식약처가 임시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한 뒤 2014년부터 본격적인 공항세관의 적발이 이뤄졌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에토미데이트를 해외직구로 찾는 연예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나 오·남용우려의약품이 아닌 전문의약품이라 세관에 적발돼도 괜찮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러쉬가 그랬듯이. 다만 올해 6월 식약처가 에토미데이트를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사실 연예인들이 해외 직구를 통해 몰래 구하려 하는 약물은 에토미데이트 말고도 몇몇 더 있다. 미소프로스톨이나 미페프리스톤 같은 임신중절을 위한 약물은 물론이고 근육발달과 근력강화를 돕는 스타노졸롤도 있다. 이들 약품은 모두 국내에서 구입이 불가능한 무허가 의약품이다. 이런 약물을 찾는 이들은 신인 내지는 연습생들이 많다고 한다. 데뷔를 앞둔 연습생이나 막 데뷔한 신인 여자 연예인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을 때 몰래 해결하기 위해 미소프로스톨이나 미페프리스톤을 구하곤 한다는 것. 또한 빠르게 몸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부 남자 연습생이나 신인들은 스타노졸롤을 찾기도 한다.
심지어 펜토바르비탈을 직구로 구하려 했던 연예인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넴뷰탈’이라는 상품명으로도 유명한 펜토바르비탈은 안락사에 쓰이는 강력한 독성 진정제로 미국 등에선 사형 집행 과정에서 이 약물이 쓰이기도 한다. 이런 약물을 직구로 구하려는 연예인은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서다.
한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에 따르면 함께 일했던 신인 여자 연예인이 온라인을 통해 펜토바르비탈을 직구로 구하려다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데다 데뷔 이후 일이 잘 안 풀려서 힘겨워 하던 신인 연예인이 답답한 마음에 펜토바르비탈을 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펜토바르비탈를 직구로 구입해준다는 이와 SNS로 연결이 돼 150만 원을 송금했지만 펜토바르비탈을 받지는 못했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이에 격분해 전후 사정을 소속사 대표에게 얘기했지만 끝내 사기범을 잡지는 못했다. 연예인이 펜토바르비탈을 사려다 사기당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소속사는 해줄 게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크게 분노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신인 연예인이 삶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후 연예계 생활을 정리한 그는 지금 새로운 영역에서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