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은 구속영장 기각 이후 이뤄진 이례적인 수사심의위원회 요청, 그리고 불구속 기소까지 극적인 흐름이 이어졌다. 이 부회장 측은 ‘불기소’를 희망했지만 그래도 구속은 막아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이 나온다. 사진=임준선 기자
법조계는 이 부회장의 변호를 맡았던 ‘칼잡이’들과 이번 수사를 맡았던 검찰 내 ‘칼잡이’들의 인연도 화제다. 대부분 검찰에서 잘나가던 특수통들이다. 하지만 다소 다른 점이라면 이재용 변호인단에 있던 변호사들은 박근혜 정권 시절 잘나갔던 ‘검찰 특수통’들이라면 이번 수사를 담당·지휘했던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특검 등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했던 ‘검찰 특수통’들이라는 것이다.
#이재용 변호인단 ‘다시 모일 수 없는 어벤져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 검찰 수사 단계에서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개개인마다,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10억 원이 넘는 변호사 보수를 받았다는 게 공공연한 후문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최재경 전 검사장이 있다. 박근혜 정권 마지막 민정수석이기도 했던 그는 검찰 내에서 특별 수사의 최고 실력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대검 중수1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3차장, 대검 수사기획관·중수부장 등 엘리트 코스만 밟았다. 현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수’이기도 한 그는 홍만표 전 대검 기획조정부장, 김경수 부산고검장과 함께 검찰 내 연수원 17기 특수통 트로이카로 불렸다.
‘다시 모일 수 없는 어벤져스’라 불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 검찰 수사 단계 변호인단의 정점에는 최재경 전 검사장이 있다. 박근혜 정권 마지막 민정수석이기도 했던 그는 검찰 내에서 특별 수사의 최고 실력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사진은 중수부장 시절 최재경 전 검사장. 사진=임준선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사법연수원 21기),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사법연수원 22기)과 최윤수 전 부산고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2기) 등으로 모두 박근혜 정권 시절 잘나가던 특수통 검사들이라는 게 특징이다.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특수1부 부장검사를 거친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대검찰청 부패범죄수사단특별단장을 맡는 등 특수통으로 승승장구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절친’으로도 유명한 최윤수 전 부산고검 차장검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검찰청 반부패부 기획연구관·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거치고 검사장으로 승진했다가 국정원 제2차장까지 임명됐던 인물이다.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기소되기도 했다.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 역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를 거쳐 박근혜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임명됐고,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을 초창기에 수사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 특수통에게는 핵심 족보인 과거 대검 중수부 시절을 거쳤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최재경 등으로 이어지는 대검 중수부 시절 특수통 라인 때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기수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평을 받는 특수통들이었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은 중용되지 못했고 옷을 벗었다.
#맞상대들도 특수통…박영수 특검 파견도 관심
주요 맞상대였던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전 경제범죄수사부장(사법연수원 32기·현 대전지검 형사 3부장)은 1998년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경험 때문에 대기업 수사에 빠지지 않고 투입됐다. 최재경 전 검사장이 주도한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수사 때 ‘평검사’로 참여한 바 있다. 이복현 부장검사는 수사심의위의 이재용 부회장 불기소 의견에도 끝까지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이복현 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장검사. 이 부장검사는 1998년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경험 때문에 대기업 수사에 빠지지 않고 투입됐다. 사진=연합뉴스
1년 8개월 동안 이어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검찰 수사를 진두지휘한 인물은 그 외에도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검찰총장)과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사법연수원 27기, 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검 중수부를 경험한 세대라는 것과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맡은 박영수 특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는 점이다.
박영수 특검은 당시 윤석열 검사에게 ‘수사단 팀장’을 맡기며 팀원 구성을 논의했는데, 윤 검사는 한동훈 당시 부패범죄특별수사단 팀장과 이복현 춘천지검 검사 등을 합류시켰다. 당시 국정농단 관련 수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시켰던 이들은 보란 듯 삼성물산-삼성바이로직스 분식회계까지 수사를 확대했다.
당시 특검에서는 이 부회장이 ‘승계’를 목적으로 최순실-정유라에게 ‘승마’ 관련 수십억 원 상당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었기 때문에, 승계에 대해 수사를 더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당연한 기류였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한동훈 검사장이 3차장검사 등으로 있으면서 이재용 사건을 기소하기 위해 열심히 수사를 했었다”며 “정권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한 기수가 넘어가는 옛 특수통 대 현 특수통의 대결이 됐는데 다른 때와의 차이점이라면 ‘전 대통령 수사’가 얽히면서 더 이야깃거리가 많아진 정도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10월 재판 준비하는 이재용 부회장
“보수 정권이었다면 대법관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원 내 에이스였던 한승 전 전주지법원장(사법연수원 17기)까지 구속영장 실질심사 대응을 위해 이름을 올리며 완성됐던 ‘어벤져스’급 변호인단이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검찰이 불구속 기소를 결정하면서 최윤수 전 차장검사 등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검찰 특수통 출신 변호사들이 사임했다.
검찰이 불구속 기소를 결정하자 최윤수 전 차장검사 등 몇 명을 제외한 특수통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사임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김앤장과 태평양 등 대형로펌들이다. 법조계에선 대형 로펌 소속의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중심으로 법정 싸움 대비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사진은 김&장 법률사무소 입구. 사진=일요신문 DB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대형로펌들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에서는 송우철 변호사(사법연수원 16기), 권순익 변호사(사법연수원 21기) 등이,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는 하상혁 변호사(사법연수원 26기)와 최영락 변호사(사법연수원 27기), 이중표 변호사(사법연수원 33기) 등이 새로 선임됐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 모두 판사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10월 22일 오후 2시 열리는 자본시장법 위반 및 배임 등 혐의 1회 공판준비기일을 앞두고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중심으로 법정 싸움 대비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사건은 부장판사 3명이 재판장을 교대로 맡는 대등재판부인 형사합의25부에 배당된 상황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최근 삼성에서 대형 로펌들을 중심으로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있는데 소속 판사들의 성향과 인연이 있는 변호사들을 수소문 한다더라”며 “규모는 더 늘어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실제 법무법인 세종도 9월 8일 추가 담당변호사 지정서를 제출해 현재 11명인 변호인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검찰은 이복현 부장검사 등 ‘수사’를 담당했던 이들이 그대로 재판에 투입된다. 경제범죄형사부에 남아 있던 검사 8명이 모두 삼성 사건을 담당하는 특별공판 2팀으로 이동했는데 문제는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이 부장검사가 좌천성 인사를 받아 지방행이 결정되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인사로 특수통의 주요직 배제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옷을 벗고 나온 한 검사장은 “1~2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 수사를 지휘하고 이끌었던 특수통들이 검찰과 법조계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모양새였다면 지금은 윤 총장도 매번 정치권의 공세를 받는 데다 특수통들이 대거 밀려나는 흐름이니 오히려 옷을 벗은 옛 특수통들이 더 ‘편하게 잘 산다’는 생각까지 들더라”며 “검찰이 인사로 모든 게 좌지우지되는 곳이다 보니 그런 것 아니겠냐”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