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국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인람) 상임위원은 조사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잘라 말했다. 군 의문사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출범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9월 14일 2주년을 맞았다. 일요신문은 위원회가 자리한 서울 명동의 포스트타워에서 탁 상임위원을 만났다.
군 의문사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출범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9월 14일 2주년을 맞았다. 일요신문은 위원회가 자리한 서울 명동의 포스트타워에서 탁 상임위원을 만났다. 사진=최준필 기자
탁 상임위원은 “유가족 아픔을 공감하는 입장에서 조사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유가족에 편향된 결과를 내놓는다면 유가족의 아픔을 보듬어 주겠다는 취지엔 맞을 수도 있지만 국민적 공감대까지는 얻기가 힘들다. 그렇게 된다면 국회에서 예산을 주거나 조사 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을 수 있어 장기적으로 득이 없다.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조사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의결권을 가지는 위원장,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5명을 비롯해 조사 활동을 하는 110여 명의 검찰·경찰·국방부 파견직, 별정직 공무원으로 구성돼 있다. 탁 상임위원은 위원장 아래에서 조사를 총괄·감독하며 실질적으로 조사를 이끄는 인물이다. 탁 상임위원은 변호사 출신으로 이명박(MB) 정부 시절 ‘내곡동 사저 특검’의 특별수사관을 맡기도 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18년 9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아래 출범했다. 문 대통령은 ‘군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를 대선 후보 공약으로 내걸었다. 취임 3개월 정도 뒤 2017년 8월 28일에 있었던 국방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군이 발표하는 사망원인을 믿지 못하기에 과거에 별도 독립기구를 둬 진상조사를 했는데 의문사 의혹은 여전하다. 군의 태도를 보면 고유한 뭔가를 지켜야 한다는 데 집착하며 늘 방어적으로 대응한다”고 강도 높게 군을 질책하기도 했다.
과거 군 사망 관련 진상규명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해 군 의문사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2009년 MB 정부 때 활동을 종료했고, 그 뒤로도 군대 간 자식을 다시 품에 안아보지 못하는 부모는 계속해서 생겨났다. 군은 여전히 방어적이었고, 내 자식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지 못하는 유가족은 그 한을 다 삼키지 못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년 동안 총 1800여 건의 사건 접수를 받아 450건의 조사를 끝냈고 이 가운데 223건을 진상규명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동안 활동하면서 접수 받은 사건이 총 600여 건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위원회 활동의 근거가 되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해석을 두고 내부 논쟁도 치열했다. 일요신문은 연재 기획물 ‘군대 간 아들’ 코너를 통해 치열한 논쟁 끝에 나온 결과를 알리는 일을 2019년 10월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다. 다음은 탁 상임위원과 일문일답이다.
탁경국 상임위원. 사진=최준필 기자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한 배경은.
“2009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한 뒤 2014년 발생한 윤 일병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군 사망 사고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입법 운동이 전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특별법 제정이 이뤄졌다.”
윤 일병 사건은 2014년 4월 7일 육군 28사단의 윤승주 일병이 선임병들에게 한 달여 동안 폭행 및 가혹 행위를 당해 사망한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사망하기 전날인 4월 6일까지 윤 일병의 전신을 손과 발, 슬리퍼, 군화 등으로 구타했고 인격 모독, 성추행 등 비인간적인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
―군 관련 ‘화해 기구’라고 하면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군의문사진규명위원회가 대표적이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앞서의 위원회와 어떻게 다른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둘 다 군에서 사망한 사건 가운데 사망 원인 관련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대통령 소속 기구다. 다만 군 사망 가운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자해 사망자 또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으면서 2012년 군인사법 등 관련 법령 개정으로 자해 사망자도 순직 대상이 됐다. 이 점을 반영해 국군조직법이 시행된 1948년 11월 30일부터 2018년 9월 13일까지 발생한 모든 사망사고를 조사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앞서의 위원회가 차이가 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은 어떻게 되나.
“의결권을 가지는 위원은 위원장,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도합 7명으로, 법률가이거나 법의학, 의학, 심리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로 구성돼 있다. 조사 활동을 위해 파견된 검찰 공무원, 경찰 공무원, 별정직 공무원이 도합 50명 정도 되고, 조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국방부 등에서 파견한 행정 인력도 상당수 있다. 현재 도합 11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조사 과정이 어떻게 되나.
“우리 위원회는 직권조사 권한이 없다. 진정이 들어온 사건만 조사할 수 있다. 진정이 들어오면 진정 취지를 가장 먼저 파악한다. 증거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가 하는 등의 사전 조사를 한 뒤 조사 활동에 들어간다. 사실관계 조사를 완료한 뒤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를 두고 조사과장단 회의에서 난상 토론을 벌인다. 비상임위원 5명 가운데 1명이 한 사건의 주심 위원을 맡는데, 주심 위원의 견해를 참고해 위원회(위원장,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5명)에 안건을 상정한다. 위원들 사이에 합의가 될 때까지 추가 조사를 하고 수정 의결도 하는데, 최악의 경우엔 표결한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사건 조사 과정에서 가정 중점을 두는 부분은.
“‘따뜻한 조사’와 ‘공정한 조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아무래도 유가족의 입법 운동 결과로 태동한 위원회이기 때문에 유가족의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보려고 하고 있다. 진정인이 만족할 수 있도록 절차적으로 모든 호의를 베푸는 따뜻한 조사를 모토로 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 결과가 유가족에게 편파적이라는 평가를 들으면 안 된다. 과거 군 수사 결과를 비판적으로 보되, 무조건 불신하는 건 지양한다. 이해 상충 당사자들인 진정인과 국방부가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결론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시민운동단체가 아니라 공공기관이고, 법령준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순직 처분을 권고했는데, 국방부가 이를 기각하면 유가족에겐 오히려 희망 고문일 수도 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주로 자해 사망 군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을 한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진상규명한 223건 가운데 137건(61%)이 자해 사망 건이다. 일반사망으로 처리됐던 사건을 진상규명해 망인을 순직 처리하도록 국방부에 권고한다. 국방부 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이를 검토한 뒤 권고를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2년 동안 진상규명한 223건 가운데 국방부가 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은 단 1건에 불과하다.
탁경국 상임위원. 사진=최준필 기자
“법 해석을 두고 논쟁이 치열했다. 위원회 조사 활동의 근거가 되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우리 위원회는 군인의 사망 원인에 관해서만 조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복무 중 사망한 현역 군인에 국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가족에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느슨하게 해석하면 전역을 하여 군인 신분을 상실한 뒤 사망한 사건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조사할 권한, 또 사망에 따른 피해 회복 방안에 대해서도 조사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우리 위원회는 치열한 논의를 거쳐 후자의 입장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상처가 큰 유가족을 제도 개선될 때까지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특별법의 취지에도 더욱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제도가 개선된 뒤 위원회의 기록이 유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국방부가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2년 동안 치열한 논쟁 끝에 방향성이 명확해졌고 앞으론 조사 활동에 더욱 탄력이 붙을 거라 기대한다.”
―‘자살’이 아닌 ‘자해 사망’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살이라는 단어는 범죄적 행위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과거 서양에선 자살자를 처벌할 정도였고, 여전히 우리는 자살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그런데 자살의 원인이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라면 이를 윤리적 또는 법적 비난의 대상으로 평가할 수 없다. 폐쇄적이고 위계사회인 군대 내에서 일어난 자살은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사고사, 병사 등의 다른 사망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에서 가치중립적 말로 자해 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강제 수사권이 없어 국방부의 협조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니다. 무척 잘되고 있다. 국방부가 관계 부처 가운데 가장 협조적이다. 우리 위원회에 파견 온 국방협력관(현직 대령)이 위원회와 국방부 사이를 원활히 이어준다. 국방부 전공사상심사위원회 담당자들도 우리 위원회의 결정 또는 제안을 전향적으로 검토, 처리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아쉽거나 논쟁이 된 사건은 아직 조사 기간이 남아 있고 우리 조사관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힘을 뺄 수 있어 말을 아끼려고 한다. 유 병장 사건이 기억 남는다. 세 살배기 딸과 한 살배기 아들을 둔 유 병장이 포상 휴가 30일을 다녀온 뒤 3일 만에 부대에서 죽었다. 사망 동기도 없었다. 아내가 위원회에 진정을 했는데, 1963년도 사건이라 기록이라곤 망인이 사망했다는 매화장보고서 딱 한 장 있었다. 우리 조사관이 결국 망인이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발품 팔아 진실을 밝힌 사건이라 기억에 남는다.”
―위원회 기한은 2021년 9월까지다. 순직 처리되지 못한 사건 3만 7000여 건 가운데, 현재 위원회가 진정 받은 사건은 1800여 건이다. 1800여 건 가운데 조사가 끝난 사건은 450건밖에 안 된다. 나머지 1350여 건을 2년 안에 끝내는 게 어려워 보인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국회 국방위원장과도 소통을 한 상태다. 조사 기간은 연장되리라 기대한다. 현재 그 기간을 두고 협의 중이고, 국가인권위 내에 나머지 사건 조사를 담당할 부서를 신설하는 방향으로도 검토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여전히 군에 대한 불신이 크다.
“입대를 시키면 안 되는 사람을 입대시켜서 불상사가 발생했다고 판단되는 사건이 가장 아쉽다. 군 복무 적합 여부 심사 단계에서 정확한 판정을 해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까지 설계되고 있는 지금, 군 복무 부적합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대체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문제가 정리되고 나면, 지금 군은 많이 변화한 상태이기에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도 아들만 둘인 아버지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덧붙일 말이 있다면.
“과거사를 다루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몇 개 있는데 우리 위원회 구성원 임명권은 정당별 할당이 없이 행정부가 단독으로 행사한다. 그만큼 정파적 관점이 끼어들 여지가 적은 위원회라는 의미다. 따라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다툼이 없어, 진상규명을 목표로 하는 어느 위원회보다도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