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스마트폰 화면.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윤영찬 의원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속 후배이기도 하다. 윤 의원은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을 지낸 뒤 IT 업계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NHN 이사를 거쳐 네이버 부사장까지 지낸 윤 의원은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엔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으로 활동했다. 21대 총선에선 경기 성남 중원 지역구에 출마해 여의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논란의 ‘드루와 게이트’는 2020년 9월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촉발됐다. 윤 의원이 스마트폰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국회 출입 사진기자 카메라 렌즈에 담겼다. 윤 의원은 이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연설 기사가 걸려 있는 포털 메인 화면을 캡처해 누군가에게 보냈다. 그러자 “주호영 연설은 바로 (다음) 메인에 반영되네요”라는 답이 왔다. 이에 윤 의원은 “이거 카카오에 강력 항의해주세요”라고 보냈다. 이어 윤 의원이 타이핑 중인 메시지는 이랬다.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 하세요.”
윤 의원 메신저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국민의힘은 맹공을 퍼부었다. 배현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뉴스 통제가 실화였다”면서 “그동안 포털을 통한 여론통제를 시도한 거냐”고 했다. 9월 15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포털 공정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청와대 공보수석(국민소통수석) 출신인 윤영찬 의원의 갑질 문자로 국민적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 원내대표는 “백번 양보해서 제1야당 원내대표 연설이 조금 빨리 노출됐다 해도 이를 문제삼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하다”면서 “앞에서는 소통·협치·정의·공정을 말하면서 뒤로는 초선 의원을 앞세워 포털 검열을 조종하는 이중성이 문재인 정부의 민낯”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날 국민의힘은 포털공정대책 특별위원회 이른바 ‘드루와 특위’를 구성했다. 국민의힘은 윤 의원이 ‘드루킹 사건’에도 연루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드루킹에 들어와를 합친 ‘드루와’를 특위 별칭으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의원에 대한 공개 경고와 더불어 방어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월 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우리 당 소속 의원이 국회 회의 중에 포털 매체 관련 부적절한 문자를 보낸 것이 포착됐다”면서 “엄중하게 주의를 드린다”고 했다. 이 대표는 “(윤영찬) 의원에게 알아보니 우리 당 대표연설과 야당 대표연설을 불공정하게 다뤘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고 한다”면서 “그럼에도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언동에 대해 새삼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치권에서는 ‘포털 출신’ 윤 의원이 포털사이트 업체 관계자를 호출한 것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야권에선 “포털 사이트 생리를 잘 아는 윤 의원이 여론 통제에 나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여권 내부에선 “윤 의원이 포털 운영 시스템을 잘 아는 만큼, 이번 사안을 더 불공정하게 느꼈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이 사건이 알려진 후 여의도에선 기업 대관 담당자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대관 담당자들을 향한 정치권 갑질이 공공연하게 이뤄져왔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불거졌다. 윤 의원 메시지에서 기업 대관 담당자의 처지는 명확히 드러난다. ‘오라면 가야 하는 입장’이다. 소속 기업과 국회 간 가교 역할을 하는 그들은 5분 대기조 역할을 해야 한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한 대관 담당자는 “윤 의원이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면서 “누구나 반응은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안 가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먼저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관 담당자들은 자신이 소속한 기업 수뇌부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입법부에 어필함과 동시에 입법부(국회의원) 요구 사항을 기업으로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국회에 상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업의 방향성이 정부 정책 기조와 맞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관 담당자들은 정부 정책 기조를 기업에 유리하게 끌어내는 협상가 역할도 해야 한다. 정부 정책 동향을 기업으로 알려야 하는 전령 역할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윤 의원이 보낸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고 하세요”라는 메시지 한마디는 대관 담당자들의 처지를 단편적으로 나타낸 내용이었다. 한 대기업 대관 관계자는 “카카오 대관 담당자가 윤 의원실로 불려가더라도 할 말이 별로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할 말은 정해져 있다”면서 “죄송하다는 말밖에 더 할 이야기가 있겠느냐”며 웃었다. 그는 “결국 이런 일로 대관 담당자가 국회의원에게 소환되면 ‘우리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을 최대한 예쁘게 전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상주 복수 대관 담당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대관 담당자들이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중 한 대관 담당자는 “시스템상 손댈 수 없는 영역, 고의가 아니었던 영역에 대해 국회의원실 민원 혹은 지적이 들어오면 상당히 난처하다”면서 “대관 담당자 입장에선 우선 국회의원의 쓴소리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윤 의원 사례로 예를 들면 쓴소리를 본사에 전달한다고 해도, 본사가 손을 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면서 “결국 애꿎은 대관 담당자만 정치인의 샌드백이 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관 관계자들의 삶은 기업과 정치권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다. 국회 내부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은숙 기자
한 중소기업 대관 관계자는 “이런 경우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진 못해도 이게 왜 안 되는지 정치인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윤 의원 한 명만의 문제는 아니”라면서 “종종 국회의원실이 특정 기업을 소환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그는 “일단 소환에 응하는 것이 우리 일”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에라도 벌어질 나중 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내가 속한 기업이 혹여라도 불리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상황을 뒤집으려면 국회의원과의 좋은 관계가 필요하다. 좋은 관계를 가늠하는 척도는 그간의 태도가 될 수밖에 없다. 특정 기업이 특정 정치인에게 미운털이 박히게 되면 어떠한 악재가 생겼을 때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관 담당자 입장에선 소환 아닌 소환 요구가 자신에게 내려졌을 때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특정 기업의 사업 추진 방향과 정치권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도 대관 담당자들은 고래 사이 새우가 돼야 한다. 전직 국회 대관 관계자는 “기업과 정치권이 힘겨루기를 하는 경우엔 대관 실무자가 기업과 정치권 양쪽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대변인과 중재자 ‘1인 2역’을 해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대관 실무자는 중간에서 ‘기업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게 우선이다. 소속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해 뛰어야 한다. 그러나 대변인 역할을 할 때 대관 실무자 어조는 정치인처럼 강력하고 자극적이어선 안 된다. 그랬다간 중재자 역할을 못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대관 실무자는 부드러운 말투와 빠른 상황 판단 능력을 바탕으로 기업과 정치권 사이의 합의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합의안이 기업에게 유리할수록 대관 담당자는 능력을 인정받기 마련이다.”
대관 담당자 일상은 본사와 정치권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다. ‘드루와 게이트’와 같은 상황은 정치권 물밑에서 꾸준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대관 담당자들의 말이다. 그럴 때마다 대관 담당자들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서의 중소기업 대관 관계자는 “국회의원실에서 호출이 오는 것이 갑질이라고 생각한다면 대관 업무를 할 수 없다”면서 “밖에서 ‘갑질’이라 불리는 사태에 최대한 유연하게 대처해 기업 수익 창출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 존재 이유”라고 전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