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선 HDC현산의 기업가치 재평가에 한창이다. 삼성증권과 KTB증권, 케이프투자증권 등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 전후로 회사의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KB증권은 목표 주가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지난해 말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을 체결한 이후부터 최근까지 증권가에서 나오지 않았던 평가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일제히 HDC현산을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재무여력 약화 가능성이 줄었다며 기존 ‘부정적’ 등급 전망을 철회하고 ‘안정적’ 등급을 부여했다. HDC현산을 감싸고 있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것이 증권가와 신평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2019년 11월부터 최근까지 시장에선 HDC현산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만 쏟아졌다. 회사가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부터다. 국내 대부분의 증권사는 아시아나항공이 짊어진 부채와 경영 정상화 숙제가 HDC현산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HDC그룹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설업과 항공업의 시너지가 크지 않고, 건설업과 항공업 둘 다 경기 민감도가 높은 만큼 안전장치로도 볼 수 없다는 분석이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 체결 직후 내놓은 정몽규 회장의 ‘모빌리티 그룹 전환’ 청사진에 대한 시장 반응도 냉랭했다. 앞서 HDC그룹은 2017년 그룹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며 ‘빅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가장 잘하는 사업인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사업자)분야에서 국내 최고를 목표로 1조 원가량의 투자까지 단행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항공사 인수와 회장의 모빌리티 그룹 전환 선언은 오히려 정체성의 의문만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HDC현산의 주가는 곤두박질 쳤다. 2019년 3월 19일 5만 2700원이었던 주가가 정확히 1년 만에 3년 내 최저점인 1만 2000원을 기록했다. 올해 2분기 매출액 9569억 원, 영업이익 1473억 원을 기록하며 시장 예상을 훌쩍 뛰어 넘는 성적표를 받아든 데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뉴딜 정책으로 건설사들이 주가가 올랐지만 HDC그룹 주가는 회복세를 보이지 못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HDC현산이 안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슈였다”며 “지난해 말에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와 향후 막대한 지출 전망 탓에 부정적 평가가 잇따랐고, 올해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면서 시장 평가가 더 냉혹해졌다. 오히려 그간 종종 나왔던 인수 무산 전망에 주가가 올랐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사들은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재무 부담이 커진 점에 주목했다. 앞서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미래에셋대우와 8 대 2 수준으로 인수대금을 내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계약 당시 부담해야 할 금액은 총 2조 5000억 원으로, HDC현산이 2조 100억여 원을 부담해야 했다. 이에 따라 HDC현산은 기존 현금성자산에 유상증자 3200억 원, 사채와 사모사채 각각 3000억 원과 1700억 원, 공사대금 유동화 3700억 원, 은행 대출 5700억 원 등으로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
신평사들은 인수자금 규모와 현금 지출 후 재무완충력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미 HDC현산은 물론 그룹이 나서 자금력을 총동원했고, 그 이상 추가 여력은 빠듯한 것으로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에 들어갈 비용은 HDC현산이 모은 자금만으로는 부족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빠져나갈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난 8월 26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거래를 위한 마지막 회동에서 파격적인 제안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업계의 신용도 하락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큰 폭으로 줄어든 인수 부담을 ‘불확실성’이 전부 상쇄할 정도로 리스크가 컸다는 뜻이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코로나19 확산 전부터 대규모 현금유출에 대한 우려가 컸다”며 “올해 아시아나항공 현금창출력은 더욱 훼손됐고, 이 때문에 지난해 평가 당시보다 더 많은 지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시장에서 말하는 채권단의 ‘파격 제안’을 받고 인수를 했어도 신용도 하락은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최근 금융투자업계의 HDC현산 재평가는 인수 무산으로 인한 앞서의 우려와 리스크 해소에 따른 결과만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향후 회사의 주력 사업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마련한 2조여 원의 향방이 대표적이다. 일단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3200억 원은 HDC현산이 인수 대금에 활용하지 않을 경우 운영자금으로 쓸 수 있다고 밝혔던 만큼 현재 추진 중인 최대 프로젝트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1조 7000억여 원은 모두 대기 자금이다. 추후 금호그룹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낸 2500억 원의 계약금을 두고 법정 다툼이 불가피하지만, 만약 전액을 다 잃게 되더라도 재무 건전성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적지 않은 기업들이 현금 확보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HDC현산은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게 된 것”이라며 “주력 사업에 쓰든, 향후 또 다른 M&A(인수합병)에 나서든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인수 과정에서 드러난 HDC현산의 의외의 모습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HDC현산은 범 현대가 그룹 가운데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안정적인 실적과 보유 현금 수준, 자금 창출력, 대규모 투자 의지와 추진력 등이 시장에 알려지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장기적인 측면에선 여전히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이익은 내고 있지만 HDC현산의 건설 실적은 하향 곡선을 타고 있다. 시장 예상보다 높았던 2분기 실적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34%, 영업이익은 24.8% 줄어든 수준이다. 그 밖에 HDC현산의 올해 상반기 주택공급도 연간 목표(1만 9644세대) 기준 21%(4128세대)에 불과하다. 분양 실적도 이미 경쟁사들에 밀리고 있다.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이 향후 건설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건설업 실적 회복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모빌리티 그룹 전환 작업에 급제동이 걸린 점은 뼈아프다. 대한축구협회 회장 업무 외에는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정몽규 회장이 자처해서 기자회견까지 열고 공개한 청사진이 시장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최종 무산됐다. 건설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작업은 기약 없이 미뤄진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다른 관계자는 “노딜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만 앞으로도 유지될지는 의문”이라며 “HDC현산은 사업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고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