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조세재정 브리프 표지
[일요신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조세재정 브리프가 이재명 경기지사의 심기를 건드렸다. 조세재정연구원 송경호, 이환웅 부연구위원이 작성한 이 보고서를 요약하면 ‘지역화폐는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나 반대로 이를 저해하거나 상쇄하는 역효과, 대체효과도 발생한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보고서는 지역화폐의 도입 목적과 현황을 설명한 후 경제적 효과에 대해 논한다. 먼저 지역화폐가 대형마트에서 소상공인으로 매출 이전 효과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결제수단(현금, 온누리상품권) 간의 대체효과로 매출 이전을 제약하는 요인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즉 정부가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과 사용 가맹점이 중복되기 때문에 지역화폐가 온누리상품권을 단순 대체하는 경우 추가적인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고 매출액 증가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예컨대 동네마트에서 월평균 10만 원을 지출하는 가계에 3만 원의 지역화폐를 준다면 13만 원을 사용하기보다 지역화폐 3만 원과 현금 7만 원을 사용해 현금을 3만 원 덜 쓰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고서는 지역 내 소비자들의 지출이 외부로 유출하는 것을 막아 지역 내 소상공인의 매출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동시에 인접 지역(지역화폐를 발행하지 않은 다른 지자체)의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봤다. 그렇기에 지역화폐 도입 효과로 홍보하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인접 지역의 경제적 피해를 대가로 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이외에도 지역화폐는 액면가보다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하고 차액을 정부가 보조하고 있어 사중손실(경제학 용어:경제적 효용의 순손실)이 발생하며 올해 정부 계획대로 9000억 원의 지역화폐를 발행한다면 460억 원 규모의 사중손실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부대비용(운영비, 금융 수수료 등)을 더하면 경제적 순손실은 2260억 원 규모라고 보고서는 썼다.
특히 2010~2018년 전국사업체 전수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역화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관측되지 않았으며 지역화폐 대부분이 대형마트와 경쟁 관계에 있는 동네마트, 식료품점에만 국한돼 사용됐다고 밝혔다. 기타 업종에서는 동일한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한 매출 증가 효과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종합적으로 지역화폐는 대형마트 매출이 소상공인에게 이전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이는 유사한 성격으로 운영하는 온누리상품권으로도 달성 가능하며, 지역 제한이 있는 지역화폐와 달리 전국적으로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은 추가적 소비자 후생 손실, 지자체 규모에 의한 지자체 간 손익 왜곡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보고서는 정책 제언으로 특정 시점, 특정 지역에 한정해 지역화폐 발행을 중앙정부가 보조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지만, 시장 기능의 왜곡을 발생시킨다는 측면에서 지역화폐를 통한 간접지원이 아닌 지역 내 사업체에 대한 ‘직접 지원 방식’이 더 바람직 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지역화폐의 효용성을 대단히 낮게 평가한 셈이다.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이재명 경기지사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근거 없이 정부정책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라는 글을 올리며 “지역화폐는 골목상권을 살리고 국민연대감을 제고하는 최고의 국민 체감 경제정책입니다.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방적 주장을 연구결과라고 발표하며 정부 정책을 폄훼하는 정부연구기관이 아까운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현실이 실망스럽습니다. 정부 정책을 훼손하는 국책연구기관에 대해 엄중 문책이 있어야 마땅합니다”라고 썼다.
이 지사는 같은 날 저녁 11시 30분에도 ‘지역화폐 폄훼한 조세재정연구원 발표가 얼빠진 이유 다섯가지’라는 글을 올려 보고서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이자 주요 정책인 지역화폐 정책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연구 내용이 2010년부터 2018년 사이 지역화폐에 대한 것으로 현재의 지역화폐 시행 시기와 동떨어지며, 2년 전까지의 연구 결과를 지금 시점에 뜬금없이 내놓는 것이 이상하고, 보고서의 내용 중 대형마트 대신 골목상권 소형매장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소비자의 후생 효용을 떨어뜨렸다는 대목이 골목상권, 영세자영업자 진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목표를 부인하고, 행안부 산하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등 다른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와 상반된다며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경기연구원은 “지역화폐의 취지 및 상식을 왜곡한 부실하고 잘못된 연구 보고서를 비판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하며 이재명 지사를 거들었다. 경기연구원 유영성 기본소득연구단장은 이재명 지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과 비슷한 이유로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를 반박했다. 골자는 보고서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정책 기조와 반대되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고 지역화폐 정책이 본격 도입된 2019년 이후 자료가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신중한 면모를 보이던 이 지사였지만 이번 보고서 건은 이 지사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연구자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보고서 반박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보고서가 정부 정책 기조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연구자 문책을 주장하는 게 바람직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연구도 정치권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하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물론 이재명 지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주요 정책의 한 축인 지역화폐를 정면에서 부정당했다는 점과, 보고서의 끝부분에 언급된 ‘사업체에 대한 직접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차기 대권 경쟁자 이낙연 대표가 최근 채택한 정책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이라는 점에서 자신을 향한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다고 추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추정이 단순히 연구자 문책의 근거로 이어지는 것은 다른 얘기다.
국책기관이건 민간연구소건 연구자는 데이터를 토대로 연구를 하고 다양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같은 데이터로도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능한 세계다. 그리고 그 리포트는 받아들이는 수용자가 판단할 몫이다. 만약 결론에 근거가 되는 데이터에 의도적인 왜곡이나 오류가 발생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결론이 정부 기조에 반한다는 이유로 연구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건 연구자 탄압으로 비칠 수도 있는 위험한 태도다.
그래서 이번 이슈를 언론이 놓은 덫에 이 지사가 걸려들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언론은 이 지사가 자신의 가장 큰 성과를 부정당했을때 드러나는 과민하고 격정적인 성격이 표출되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한편 보고서도 간과하고 있는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지역화폐의 가장 좋은 예로 꼽히는 올해 1차 재난지원금의 기능과 영향을 모두 담지 못했다. 전 국민에게 지급된 올해 1차 재난지원금은 가장 낮은 곳의 서민, 저소득층의 숨통을 트게 했다. 이들이 지역에서 사용한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거쳐 결국 건물주에게도 이득을 줬고 결국 경제적으로 넉넉한 계층까지 혜택이 고루 퍼지는 효과를 냈다. 이 흐름은 결국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임대소득세 등으로 국고로 환원되며 선순환을 이뤘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서 2019년 이후 대규모로 발행된 지역화폐에 대한 내용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게 이번 보고서가 지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이미 지역화폐의 효용성은 코로나 국면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국민보다 먼저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해달라는 청원에 나선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이번 보고서 이슈는 내용적 측면보다 대응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재명 지사가 연구자 문책보다 이들이 지적한 지역화폐의 특정 업종(동네마트, 식료품점)에 편중된 소비, 바가지, 부정거래(상품권 깡) 등을 개선하는 방향의 대응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