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당당히 ‘19금’ 딱지를 붙이고 나온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사뭇 달라졌다. 다소 자극적이더라도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오히려 차별화된 것으로 간주하며 환영하는 모양새다.
예능 역시 19금 시장에 뛰어들었다. ‘예능판 부부의 세계’라 불리는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가 대표적이다. 사진=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 방송 화면 캡처
#‘부부의 세계’가 일군 세계
올해 상반기 방송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애들 재우고 보는 드라마’로 통했다. 불륜을 전면에 내세우고 상간녀의 당당함과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인기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적반하장 캐릭터를 곳곳에 배치해 시청자들의 오감을 자극했다. 마지막 회가 기록한 최고 시청률은 28.4%. 수치로 말할 수 없는 화제성은 이를 웃돈다.
이후 JTBC는 또 다른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을 아예 ‘19금’으로 만들었다. ‘부부의 세계’는 부분적으로 15세 관람이 가능했던 반면 ‘우아한 친구들’은 전편이 19세 이상 관람가였다. ‘부부의 세계’의 성공이 없었더라면 시도조차 어려웠을 법한 과감한 편성이었다.
예능 역시 19금 시장에 뛰어들었다. ‘예능판 부부의 세계’라 불리는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애로부부)가 대표적이다. 7월 말 2.2%로 출발선을 끊은 뒤 시청률 곡선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9월 7일 3.6%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출연진의 자극적인 고백과 폭로에 이를 다룬 기사가 쏟아져 포털사이트 연예기사 코너를 메우고, 출연진들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상단을 차지했다.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에 자주 출연했던 배우 최영완은 자신의 남편을 소개하며 “성(性)에 눈뜨게 해 준 남자다.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줬다”라고 고백했고, 남편 손남목은 “내가 남다르게 잘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이렇듯 왕성한 부부 생활을 하던 이들이 벌써 4∼5년 동안 부부 관계가 없다는 고민은 대중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들보다 먼저 출연했던 배우 조지환 부부 역시 이에 못지않았다. 앞선 최영완 부부가 ‘섹스리스’가 문제였다면, 조지환 부부는 그의 강한 성욕으로 인한 고민을 토로했다. 조지환은 “32시간마다 부부관계를 요구한다”고 털어놓았고 아내 박혜민은 “남편이 장소 불문하고 관계를 요구한다. 형님(조혜련)의 집, 병원 앞 숙소, 주차장에서도 해 봤다”고 말해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를 기획한 노윤 작가는 “‘애로부부’가 ‘부부의 세계’ 때문에 나온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아니다. 2019년 가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기획인데, 한창 준비 중에 ‘부부의 세계’가 방송됐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의 성공은 우리 프로그램에도 좋은 운이 된 것 같다”며 “시청률이 좀 낮게 나와도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부부 문제를 다룬다고 해 놓고 정작 수위 때문에 리얼함이 떨어져선 안 된다고 봤다”며 19세 이상 관람가를 고수한 이유를 밝혔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파생된 프로그램인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는 ‘19금을 넘어서는 29금 토크와 아찔한 감성으로 색다른 재미를 전한다’는 유튜브 콘텐츠다. 사진=‘여자들의 은밀한 파티’ 유튜브 영상 캡처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파생된 프로그램인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는 ‘19금을 넘어서는 29금 토크와 아찔한 감성으로 색다른 재미를 전한다’는 유튜브 콘텐츠다. ‘순한 맛’과 ‘매운 맛’으로 콘텐츠를 분류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매운 맛’을 붙인 콘텐츠에서는 끈적끈적한 감성이 물씬 풍긴다. ‘나 혼자 산다’의 주역인 박나래, 한혜진, 걸그룹 마마무의 멤버 화사는 각각 조지나, 사만다, 마리아라는 서브 캐릭터로 분해 한층 수위 높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한 방송 관계자는 “방송은 트렌드다. 요즘은 ‘부부의 세계’ 이후 19금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며 “기성 채널의 경우 수위 조절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런 도전적인 콘텐츠를 내놓는 것 자체를 대중이 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왜 이 시점에 19금 콘텐츠인가
과거에도 19금 콘텐츠가 없던 것은 아니다.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를 비롯해 OCN ‘보이스’, ‘나쁜녀석들’과 지상파 드라마인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과 ‘혼’, KBS 2TV ‘제빵왕 김탁구’와 ‘영광의 재인’, SBS ‘야왕’의 일부가 19금으로 분류됐다. 비교적 최근에는 JTBC 드라마 ‘미스티’와 MBC ‘나쁜 형사’의 일부 회차가 청소년 관람불가였다. 예능 역시 JTBC ‘마녀사냥’이 대표적 19금 콘텐츠였고, tvN ‘인생술집’과 ‘SNL코리아’ 역시 상황에 따라 19금딱지를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이런 흐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유는 넷플릭스와 같은 신규 플랫폼의 영향이 크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콕’ 생활이 늘면서 올해 가장 각광받은 콘텐츠는 ‘킹덤 시즌2’와 ‘인간수업’이다. 그리고 두 콘텐츠 모두 19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당연히 표현 수위가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콘텐츠에 익숙해진 대중이 지상파나 케이블채널 드라마를 다소 밋밋하게 느끼게 됐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단순히 등급의 문제라기보다는 ‘재미’와 ‘완성도’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아무리 야하고 폭력적이어도 콘텐츠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재미없다’는 입소문이 나며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무조건 19금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에 걸맞은 콘텐츠를 배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안방극장에 19금 콘텐츠가 범람해도 마땅한 제어 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TV 콘텐츠는 영화처럼 사전 심의가 없이 방송사에서 자체적으로 시청 등급을 매긴다. 이후 논란이 생기거나 민원이 접수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는다. 이런 콘텐츠의 경우 방송 전 시청 등급을 고지하고 방송 도중 화면 상단에 ‘19’라는 표시를 통해 이를 알리지만, 미성년자들이 집에서 부적절한 콘텐츠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근본적인 방법은 없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