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자살 6세…5년 동안 자해 및 자살시도로 응급실 내원 173회
아동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는 부모의 관심 부족이나 지나친 애착, 부부간 갈등이 꼽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동 자살 문제는 이미 2019년 미국에서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미국 UPI통신은 2019년 “2015년 5~18세 미국 어린이 가운데 자살에 대한 생각이나 시도로 응급실을 찾은 어린이가 110만 명이며 이는 2007년에 비해 두 배 증가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43%는 5~10세의 어린이들이었다.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드물지만 아동 자살은 발생하고 있다. 2013년 한국자살예방센터의 아동·청소년 자살 연구 자료에 의하면 국내 최연소 자살 아동의 나이는 6세였다. 놀랍게도 5~9세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거의 매년 일어나고 있었다. 9월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8년까지 고의적 자해(자살)를 한 5~9세는 총 26명이다. 특히 2000년에는 7명, 2001년에는 4명의 아동이 자살했으며 이후로도 거의 매년 1명씩 사망자가 발생했다.
자살을 시도하는 아동은 더 많다. 9세 이하 아동이 자해 및 자살 시도로 전국 응급실을 찾은 횟수는 지난 5년 동안(2014년~2018년) 173회에 달했다.
10~14세 연령대의 아동까지 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죽음을 생각하는 아이들은 급격히 늘어난다.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0~14세 아동 자살자 수는 누적 784명이다. 매년 20여 명에서 70여 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있다.
10세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지만 많은 경우 외부 요인으로 만들어진다. 부모의 갈등, 양육 방식, 또래 관계, 낮은 사회적 지지 등이 아동의 심리적 불안을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 우울의 싹을 틔운다. 아동은 부모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청소년보다 훨씬 큰 만큼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까닭이다. 주로 부모의 관심 부족이나 지나친 애착, 부부 갈등 등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정택수 자살예방센터장은 “아동 자살의 상당수는 정말 죽으려는 의도보다는 현재의 힘든 상황, 괴로운 상황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회피성 목적이 강하다. 5~9세 아동 자살 사례를 살펴보면 부모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것을 보면 아이는 큰 충격을 받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오고가는 말을 왜곡해서 듣게 되는 일이 많다. 부부 싸움에서 ‘아이 때문에’라는 말이 나오면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나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싸운다’ ‘나는 나빠’ ‘내가 없어지면 싸우지 않을 거야’ 등의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돼 급성 우울증으로 심화될 경우 충동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는 아이가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우울증 앓아도 부모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해 그냥 넘기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아동 우울증은 적절한 치료 없이 사라지는 일은 드물며 이후로도 갈등이 반복되면 청소년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A 양은 이미 1학년 때부터 이미 반복적으로 죽음을 생각해왔다. 가족 불화로 처음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A 양은 고학년이 되어서는 교우 관계로 그 원인이 확장됐다. 현재는 ‘그냥’ ‘모든 것’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제는 친구들도 있고 성적도 좋아 학교에서 칭찬을 받는 학생이지만 자신을 보는 부모의 눈빛에서 절망을 느낀다고 했다.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로 도움 받을 기회를 차단당해 우울증을 키워온 사례다.
#청소년에게 안 통한 예방정책, 오히려 아동에겐 통할수도
상담 위주의 청소년 자살예방대책은 현장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서울 마포대교 자살예방문구는 효과미비로 2019년 모두 제거됐다. 사진=연합뉴스
역대 정부는 8년째 청소년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각종 대책을 수립해왔다. 현 정부가 제시한 해결책은 ‘상담의 활성화’다. 매년 ‘학생자살예방대책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상담 과정에서 자살 및 자해를 감지하면 유관기관에 연계하는 24시간 청소년 위기문자 상담망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중·고등학교에선 Wee(위)센터를 통해 전문상담을 하고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데 있다. 자살 위험군에 있는 청소년들이 제 발로 학교 상담센터를 찾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 현장에 있는 상담교사들의 공통 의견이다. 2012년부터 청소년 상담사 일을 해온 김 아무개 씨(43)는 “‘힘들다’며 찾아오는 학생은 소수다. 상담실이 학교에 있다 보니 개인사가 학교에 알려질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학생들이 많다. 무엇보다 사춘기 학생들은 자신의 속내를 잘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SNS 등을 통한 비대면 온라인 상담이 더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동 자살예방책은 한정적이다. 아동 자살에 대한 대책으로 선별검사를 통한 고위험군 추적과 상담 등이 진행되고 있으나, 지원대상은 과거 자살 시도를 했던 일부 아동 등에 한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 충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전문상담의 문턱을 청소년에서 아동으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담사 김 씨는 “청소년에게선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자살예방정책이 오히려 아동에게는 효과적일 수 있다. 특히 아동의 경우 상담사의 적절한 질문과 징후식별만으로도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비교적 쉽게 털어놓는 편이다. 청소년에 비해 상담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정택수 센터장 역시 “아동 자살은 평소 우울 증상이 없거나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아이들에게서도 발생한다. 중·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도 전문 상담사가 필요한 이유”라면서도 “다만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살’이라는 단어보다는 ‘오늘 슬프니?’ ‘평소보다 기분이 이상하니?’ 등의 표현을 이용해 아동의 심리 상태를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