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지만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선고를 받은 터라 대한변호사협회는 8월 25일 안 전 국장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 출석 당시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국내 미투 시발점 안태근 전 국장, 대법원에서 무죄
국내 미투의 시작점인 서지현 검사 사건에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안 전 국장은 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옆자리에 앉은 서 검사를 성추행했으며 이를 문제 삼으려는 서 검사에게 2014년 4월 정기사무감사와 2015년 8월 정기인사에서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렇지만 올해 1월 대법원은 안 전 국장의 행위가 인사권자로서 정당한 재량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 2심과 달리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것.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내졌고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2부(부장판사 반정모·차은경·김양섭)에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선고를 받은 터라 대한변호사협회는 8월 25일 안 전 국장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
정봉주 전 의원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 전 의원 미투 사건은 2018년 3월 프레시안이 ‘정 전 의원이 2011년 12월 기자 지망생을 호텔에서 만나 강제로 키스하려 하는 등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면서 시작됐다. 정 전 의원이 이를 강하게 부인하자 검찰은 정 전 의원이 이를 보도한 기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서울시장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며 무고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2019년 10월 이뤄진 1심 선고 공판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김미리)는 “성추행 사실이 명백하게 존재한다고 볼 수 없어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피해자는 수사기관을 거쳐 법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진술을 했는데 상반되거나 모순된 점이 많아 추행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현재 2심 진행 중으로 정 전 의원은 9월 16일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 2회 공판에 직접 출석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2018년 3월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피해사실을 폭로한 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복역 중이다.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돼 호송차로 이동할 당시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언론계를 뒤흔들었던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도 올해 3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전 부장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피소됐지만 서울중앙지검은 “고소인의 피해 진술이 시간에 따라 추가, 변경, 번복되고 있어 고소인 진술만으로 피의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그 외의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8년 미투로 정·관계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정도가 있다. 수행 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2018년 3월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피해사실을 폭로한 뒤 1년 6개월여의 시간이 걸려 안 전 지사의 유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안 전 지사는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복역 중이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2019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이 확정됐다.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징역 7년형으로 되레 형량이 늘었고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경찰 소환조사에 출석 당시 모습. 사진=일요신문DB
문화 연예계에서는 유죄 판결과 은퇴가 줄을 이었고 심지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례까지 나왔다. 우선 극단원들에게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은 2019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이 확정됐다.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징역 7년형으로 되레 형량이 늘었고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경남 김해 극단 ‘번작이’ 조증윤 대표는 2018년 3월 1일 구속됐다. 미투 가해자 가운데 첫 구속 사례였다. 조 대표는 2019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이 확정됐다.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6년형으로 형량이 늘었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영화 ‘연애담’을 연출한 이현주 감독 사건은 국내 미투가 시작되기 전인 2017년 12월에 대법원에서 이미 준유사강간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성폭력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됐다.
그런데 이 사건이 미투 운동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대법원 판결 이후인 2018년 2월 1일 피해자가 미투 운동에 동참해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 종용 등 2차 가해를 했으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실명이 공개된 이 감독은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제명됐고 여성영화인모임으로부터 여성영화인 수상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후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다.
시인 고은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시인 최영미와 시인 박진성, 언론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사진=서울시 제공
미투로 지목당한 당사자가 피해자 등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시인 고은이다. 시인 최영미는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 호에 시 ‘괴물’을 게재해 고은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시기적으로는 서지현 검사의 미투보다 빨랐지만 시에서 시인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En’이라고 표현했다. 그렇지만 2018년 2월 미투 운동과 함께 시인 고은에게 화제가 집중됐다. 이에 고은은 2018년 3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부끄러운 일 안 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고은은 이어 2018년 7월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시인 최영미와 시인 박진성, 언론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9년 2월 패소했다. 재판부는 “최영미 시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다”며 폭로 내용을 사실로 판단했다. 반면 박진성 시인의 ‘2008년 한 술자리에서 고은이 20대 여성을 성추행을 했다’는 주장은 해당 여성을 특정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허위라고 봐 1000만 원 배상을 판결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최영미의 주장을 사실로 판단하며 고은은 또 패소했고 상고 포기로 판결이 확정됐다.
김기덕 감독 사건 역시 미투가 불거지기 전인 2017년에 먼저 화제가 됐다. 여배우 A 씨가 김 감독이 영화 촬영 중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남성배우의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도록 했다며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로 고소한 것. 그렇지만 검찰은 2017년 12월 김 감독의 성폭력 혐의는 모두 무혐의로 판단하고 A 씨의 뺨을 때린 혐의만 약식기소했다.
김기덕 감독이 2018년 미투의 한가운데 서게 된 것은 2018년 3월 MBC PD수첩이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이란 제목의 방송을 방영하면서다. 이에 김 감독은 MBC ‘PD수첩’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방송에서 증언한 배우 A 씨에 대해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인 자격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을 만난 그는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며 “방송에 나온 그런 행동을 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방송 내용을 허위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김 감독은 다시 2019년 2월 여성단체 한국여성민우회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3월에는 MBC ‘PD수첩’과 여배우 A를 상대로는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두고 영화감독김기덕공동대책위원회가 ‘고소 남발 김기덕 감독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김 감독이 역고소 대신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역고소를 둘러싼 비난의 목소리도 컸다. 현재 이 두 개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1심이 진행 중이다.
#조민기 사망 조재현 은퇴…연예계에선 치명타
미투에 지목된 연예인들의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우선 배우 조민기는 2018년 3월 9일 자신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옆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해 2월 재직 중인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여대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추가 피해자들의 폭로가 계속됐다. 이를 인정하고 사과한 조민기는 강제 추행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그리고 충북경찰청 소환 조사를 며칠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우 조민기는 2018년 3월 9일 자신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옆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재직 중이던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여대생들을 성추행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추가 피해자들의 폭로가 계속됐다. 광진경찰서 과학수사대가 사망 현장을 감식하고 있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배우 조재현 역시 2018년 2월 여러 명의 피해자로부터 미투 가해자로 지목을 받았고 당시 출연 중이던 tvN 드라마 ‘크로스’에서 하차하는 등 연예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그렇게 연예계를 은퇴했다. 그의 근황은 올해 7월 조재현 측 박헌홍 변호사를 통해 알려졌다. 박 변호사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를 통해 “지방 모처에서 칩거 중이다. 등산을 다니는 것 외엔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며 “가족들과도 왕래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방송인 김생민은 2017년 KBS 2TV ‘김생민의 영수증’으로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2018년 4월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며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한 방송사 스태프가 2008년 프로그램 회식 자리에서 김생민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미투한 것. 김생민은 올해 5월 팟캐스트 ‘김생민의 경고해(경제 고민 해결방송)’ 방송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김생민의 소속사는 “공식 활동 복귀를 위한 타진이 아닌 김생민 개인의 활동일 뿐”이라며 연예계 복귀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18년 2월 미투 열풍이 연예계로 확산될 당시 가장 크게 화제가 됐던 연예인 가운데 한 명인 오달수는 독립 영화 ‘요시찰’을 통해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을 당시 오달수는 사실무근을 주장했지만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활동을 중단했다. 오달수 사건의 내사를 진행한 경찰은 구체적인 혐의점을 찾지 못해 2019년 초 ‘혐의 없음’으로 내사가 종결했다. 경찰 내사를 통해 미투 가해자가 아님을 입증했지만 아직도 미투로 인한 이미지 타격을 극복하지 못한 모양새다.
2018년 2월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최일화는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2019년 5월 KBS 단막극으로 컴백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KBS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가짜 미투에 휘말린 연예인도 있다. 2018년 성폭행 혐의로 피소되며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던 가수 김흥국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결국 2018년 11월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김흥국을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가짜 미투의 악몽을 털어낸 김흥국은 이후 연예계로 복귀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