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버스는 도쿄의 관광명소를 도는 투어버스로 유명하다. 그런데 얼마 전, 하토버스를 더 유명하게 만든 히트기획상품이 등장했다. 이벤트성으로 기획됐던 투어상품의 이름은 ‘이 노래 저 노래 부르며 도쿄 드라이브’다. 버스 안에서 노래방 기계로 추억의 노래를 부르며 긴자와 아사쿠사 등의 명소를 돌아보는 투어로 가격은 한 명당 2500엔(약 3만 2000원)으로 비싸지 않은 편이다. 지난 3월 19일 시범적으로 운행하려던 것이 발매 시작 30분 만에 전석이 매진되자 즉시 추가 투어를 기획했고, 1600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결국 이 추억의 투어는 정기상품으로 변경됐다.
하토버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지방에서 올라오는 관광객부터 도쿄에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고객들이 있다. 노래를 부르며 쇼와시대(쇼와 국왕의 재위기간인 1926~1989년을 뜻하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에서 도쿄 올림픽 개최까지 일본에 급격한 변화가 밀려왔던 시기를 말하기도 한다)의 분위기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들인 것 같다”고 한다.
사실 최근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쇼와레트로’라고 해서 사회전체가 쇼와시대를 향수하는 것이 일종의 붐이 되었다. 2005년 개봉한 <올웨이즈 3초메의 석양>은 쇼와 33년의 도쿄 하층민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복고의 바람을 일으킨 시발점이 된 작품이다. 영화는 현재 3편까지 제작돼 모두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 영향으로 ‘쇼와레트로’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히트 아이템 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치단체에서는 예전 거리를 재현하거나 쇼와시대를 기념하는 박물관을 짓고 있으며 기업에서는 옛 상품들을 다시 출시해 인기를 얻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산토리에서 발매한 긴무기 맥주다. CF 역시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로 편집돼 아름다운 여성이 두 손을 모으고 “긴무기랑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소리친다. 다소 촌스러운 듯하지만 이 CF 시리즈는 화제를 일으키며 20편까지 제작됐다. 긴무기 맥주는 발매(2007년 6월) 2년 3개월 만에 10억 개가 팔려나갔다. 업계 관계자들은 “쇼와시대를 이미지로 한 CF가 맥주 주요 구매층인 40~50대의 남성들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평가한다.
긴무기 맥주의 성공으로 기린에서는 훗코쿠(復刻)라거 메이지와 훗코쿠(復刻)라거 다이쇼로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의 맛을 재현했다. 아사히맥주는 쇼와 33년에 발매됐던 일본 최초의 캔 맥주 아사히골드를 재등장시켰다. 삿포로맥주에서도 S자 캔이라는 애칭으로 인기를 얻었던 쇼와 34년의 캔 맥주를 훗코쿠(復刻)삿포로 캔 맥주라는 이름으로 한정판매 중이다. 긴무기 이외의 복고맥주 판매량은 44만 박스(633㎖ 20개입)를 넘어서며 순항 중이다.
복고맥주 인기의 숨겨진 비결은 쓴맛에 있다고 한다. 영양학과 미각생리학 박사인 후시키 도루 교수는 “지금 새로 발매되는 맥주들은 목 넘김이 쉽도록 쓴맛을 줄였다. 이것이 복고맥주와 가장 큰 차이다”라며 “예전에 맥주를 마시며 느꼈던 쓴맛이 당시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추억의 비즈니스’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의외로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일본 대중지인 <주간포스트>는 사람들이 회상을 하면 뇌의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직접 실험했다. 한 실험 대상자가 어린 시절 자주 듣던 미국 드라마의 OST를 듣자 스스로는 아무런 감동이나 흥분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뇌에서는 확연한 변화가 일어났다. 실험을 진행한 뇌과학자 시노하라 교수는 “전두엽의 오른쪽 밑이 빨갛게 변했다. 이곳은 마음의 변화가 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다. 이 부위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걸로 봐선 옛날의 기억이 점점 되살아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미 ‘뉴로(neuro:신경계)마케팅’이라 불리는 연구분야가 있다. 뇌의 반응을 측정해 소비자행동을 분석하려는 것으로, 유명한 사례가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실험자에게 한쪽은 브랜드 이름을 숨긴 채 마시게 하고, 한쪽은 브랜드 이름을 숨기지 않고 마시게 하자 숨기지 않고 마신 쪽이 전두엽 쪽이 활발히 움직였다고 한다. 동시에 펩시콜라를 좋아하는 실험자에게 똑같은 실험을 하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 실험으로 연구자들은 코카콜라의 광고효과가 더 놓다고 평가했다.
소비자 행동을 분석하는 앙케트에서 응답자들은 속마음과 다른 답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수 있는 반면 뇌는 정직한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뉴로 마케팅’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쇼와 레트로’붐은 28년 주기로 시대의 분위기가 전환된다는 설과도 관련 깊다. 연구에 의하면 28년을 주기로 기술력과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디지털 주기’와 인간성을 추구하는 ‘아날로그 주기’가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아날로그의 정점시기로 자동차도 둥근 형태의 디자인이 선호도가 높다. 이런 인간적이고 정적인 성향이 강한 시기에는 ‘추억의 힘’도 강해진다. 결국 불황을 이겨낼 비즈니스 힌트는 인간의 ‘추억’ 속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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