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과 수소를 중심으로 한 한화그룹 신사업이 니콜라 사기 논란으로 급제동이 걸렸다. 서울시 중구 한화빌딩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가 스타트업 니콜라가 자사 기술력을 과장해 투자자들을 오도한 혐의와 관련해 미 증권당국의 조사에 합류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법무부까지 나서며 사태가 커지는 모양새다.
의혹은 공매도 기관 힌덴버그 리서치가 지난 10일 ‘니콜라: 온갖 거짓말로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와 파트너십 맺는 법’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니콜라가 수십 가지 거짓말로 대규모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본격화했다. 보고서엔 “니콜라의 세미트럭 도로주행 영상은 트럭을 언덕 꼭대기로 견인한 뒤 밀어 언덕 아래로 굴러가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라며 니콜라에 수소차 관련 기술이 없다는 주장이 일부 내용으로 담겼다.
니콜라는 지난 14일 “공매도 업체가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리려 허위 주장을 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주행영상 조작 의혹에 대해 “비디오에서 나온 트럭이 자체 추진력을 갖고 운전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당시 투자자들도 기술적 수준을 알고 있었다”며 힌덴버그 주장을 일부 시인했다.
국내 증권가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일부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애초에 니콜라는 생산차량 1대 없이 비전만 제시해 투자받았고, 정상적인 기업공개(IPO·상장) 절차를 밟는 대신 기존 나스닥 상장사(VectorIQ)와 합병하면서 우회 상장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니콜라의 러브콜을 거절한 것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시그널로 작동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니콜라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트레버 밀턴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현대차에 두 번이나 협력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을 충분히 입증 가능한 회사였다면 ‘제2의 테슬라’라 불리는 니콜라 제안을 왜 거절했겠느냐”며 “현대차가 협력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만으로 공매도 신호는 나온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매도 세력은 이윤 추구가 목적으로 그 주장을 다 믿을 순 없다. 진위 여부는 SEC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것”이라면서도 “공매도 세력이 제기한 의혹을 계기로 문제가 밝혀진 사례가 있어 이번에도 간과할 순 없다. 니콜라가 내놓은 해명도 기술이 없다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미국 엔론 회계조작이나 중국 루이싱커피 회계조작 모두 공매도 세력을 통해 드러났다.
니콜라 투자를 토대로 수소사업에 박차를 가하던 한화그룹은 난감해졌다. 최근 (주)한화를 필두로 몸집을 줄이는 동시에 태양광과 수소를 신사업으로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화는 지난 9월 1일 무역사업을 없애고 여기 속한 유화와 기계 사업을 각각 화약·방산, 기계 부문에 편입하며 무역 내 철강과 식품 사업은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엔 방산부문의 분산탄 사업을 물적 분할해 신설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또 2분기 실적발표에서 (주)한화 기계부문은 스마트팩토리와 태양광, 한화솔루션은 태양광과 이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수전해 생산기술 개발, 한화종합화학은 수소충전소 운영 등 계획이 담긴 4차 산업과 그린뉴딜 사업 방향을 공개했다.
사업 개편은 승계 작업과 연관됐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룹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이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주)한화 최대주주로 올라서야 하지만, 현재 보유 지분은 4.44%뿐이다. 따라서 김 부사장(50%)과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25%),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25%)이 지분 전량 보유한 에이치솔루션을 토대로 그 아래 계열사 가치를 높인 뒤 배당 확대 등을 통해 (주)한화 주식을 사들이거나 에이치솔루션과 (주)한화를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돼왔다. 최근 그룹 차원의 행보는 (주)한화 몸집을 줄여 가치를 떨어뜨리고, 에이치솔루션 지분이 담긴 계열사들 사업을 키워 삼형제 지분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란 분석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사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한화 지분관계가 있거나 (주)한화가 직접 투자하는 신사업이 있다면 주주가치 제고가 목적일 수 있다. 그러나 김 부사장 지분과 연관된 태양광과 수소에만 투자를 늘리는 행보는 승계에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봤다.
특히 수소사업은 에이치솔루션 지배구조에 속한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을 중심으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승계 주요 자금줄로 언급돼왔다. 에이치솔루션 자회사와 손자회사인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은 2018년 니콜라에 총 1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6.13%를 확보했다. 니콜라가 6월 나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이들 지분가치는 한때 7배 이상 뛰기도 했다.
한화는 지분투자를 넘어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미 수소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한화에너지는 니콜라 수소충전소에 한화그룹이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우선 공급할 권한을, 한화종합화학은 충전소 운영권을 확보했다.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은 수소충전소에 태양광 모듈을, 첨단소재부문은 수소충전소용 탱크나 트럭용 수소탱크를 공급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니콜라 사기 의혹은 이 같은 청사진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후계자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올랐다. 니콜라 투자는 김동관 부사장이 니콜라 CEO 트레버 밀턴을 직접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의 주도 아래 이뤄졌고, 니콜라 상장 대박 이후 김 부사장은 경영능력 입증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기 논란이 사실로 밝혀지면, 김 부사장 입장에선 투자 안목과 신뢰도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IB 업계 다른 관계자는 “수소사업에 당장 돈을 투자해 벌여놓은 사업은 없다는 점에서 재무적 타격은 없겠지만 신사업으로 키우려던 계획에는 제동이 걸렸다”며 “김 부사장의 공적으로 니콜라 투자 건을 홍보해온 이상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의 이미지와 평판도 니콜라만큼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화 관계자는 니콜라와 관련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개편에 대해서는 “경영환경 급변과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내부사업간 시너지와 관리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이라며 승계와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