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라이언은 은퇴 이후에도 종종 시구에 나서며 과거 광속구 투수로서 면모를 자랑한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시속 130km에 육박하는 투구를 선보였다. 사진=연합뉴스
라이언이 100마일의 벽을 넘어선 지 27년이 지난 후, 마침내 이보다 시속 10km나 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탄생했다. 뉴욕 양키스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다. 그는 신시내티 레즈 시절이던 2010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메이저리그 전광판에 무려 시속 106마일(171km)이라는 구속을 찍었다. 메이저리그 공식 구속 측정시스템에도 시속 105마일(169km)이 나왔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이었다.
채프먼 이전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이던 조엘 주마야가 2007년 시속 104마일(167km)의 강속구를 뿌린 게 최고였다. 그러나 잇단 팔꿈치 수술로 짧게 활약하다 종적을 감춘 주마야와 달리 채프먼은 여전히 100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계속 던진다. 올해 코로나19에 감염돼 치료를 받느라 전열을 이탈했지만, 회복을 마치고 지난달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시속 102마일(163km) 직구를 던졌다.
채프먼은 2014년엔 직구 평균 구속이 시속 100.3마일(161km)로 측정돼 ‘최고’가 아닌 ‘평균’ 구속 100마일을 넘긴 최초의 투수로 기록됐다. 2015년 7월에는 한 경기 투구수 18개 가운데 15개가 시속 100마일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메이저리그 최고 포수들조차 어려움을 호소해야 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스탯 캐스트(타구와 투구 정보 기록 시스템)’ 최고 구속 순위에는 ‘채프먼 필터’가 생겼다. 채프먼의 구속이 상위 50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채프먼을 제외한 다른 투수들의 구속을 찾아보고 싶다면, 이 필터를 사용해 채프먼의 기록을 걸러내야 한다.
시속 100마일 이상의 공을 던지는 투수는 대부분 보직이 채프먼과 같은 소방수다. 100개가 넘는 공을 던져야 하는 선발투수는 체력 안배를 위해 공 하나마다 전력을 다하기 어렵다. 선발투수로 활약하면서도 시속 102마일(164km)의 광속구를 뿌린 랜디 존슨이 ‘괴물’로 불렸던 이유다. 로저 클레멘스, 바톨로 콜론, C.C. 사바시아, 케리 우드 등도 선발로 시속 100마일을 넘긴 투수들이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