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은행 창구 모습. 사진=연합뉴스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주담대 부족분을 신용대출로 메우는 성향이 강하다. 2019년 기준 통계청 소득분위별 신용대출 용도를 보면 거주주택 마련에 사용하는 비중이 신용등급 1~2등급에 해당하는 소득 5분위는 9.8%였으나 소득 3분위는 4.6%, 2분위와 1분위가 각각 5%, 0.6%였다. 내집 마련에 신용대출을 그만큼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관건은 정부의 방침에 은행들이 과연 어느 등급까지 손을 댈 것인지다. 1등급에 해당하는 연이자율 2% 미만의 가계대출 잔액은 11.5%에 불과하다. 1등급만 고삐를 조여서는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 그런데 2등급에 해당하는 연이자율 2.5% 미만으로 확대하면 잔액비중이 59.8%로 높아진다. 2등급까지 규제 대상을 확대한다면 신용대출자 3분의 2가 영향을 받는 셈이다.
통상 1등급은 고소득전문직과 공무원 등이 해당된다, 2등급은 대기업 직장인들이다. 금리를 0.5%p 올려도 늘어나는 이자부담액은 4만 원가량이다. 이자부담으로 대출을 줄일 가능성은 낮다. 신용대출 규모를 줄이려면 결국 한도를 낮추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도를 낮추면 자칫 그동안 신용대출을 이용하지 않았던 이들까지 미리 한도를 확보하려 나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 정책 의도와 달리 신용대출 총액이 단기간 급증하게 된다. 은행들로서도 총량 축소는 곧 수익 감소를 의미하는 만큼 대출받는 대상을 넓힐 유인이 존재한다. 또 한도를 급격히 줄이면 자금부족에 직면한 이들이 은행 외 2금융권을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신용대출의 용도를 제한하는 방법도 가능하지만, 실효성이 의문이다. 사용처를 확인하기도 어렵고, 확인한다고 한들 이미 나간 대출을 회수할 법적 근거도 없다. 특정 계층의 대출 수요를 강제로 누르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칫 위험과 반비례해 가격이 매겨지는 시장경제 금리시장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도 제기된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초저금리에서 ‘돈의 값’ 즉 이자율이 싸지면 대출수요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출 자체를 강제로 줄이기보다 건전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신용대출 급증은 주담대의 낮은 LTV와 주식 등 자산가격 상승 기대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지난 10년간 부동산 거래분석 자료를 보면 규제로 LTV가 낮아지면서 서울과 수도권에서 무주택자들의 주택 매입도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주택매입과 신용대출에 가장 적극적인 계층도 3040세대다. 기대 잔존 근로소득 기간이 긴 3040세대에 대해서는 주담대 LTV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작동, 주담대는 늘겠지만 신용대출 증가세는 진정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당국은 DSR을 낮추거나, 조정대상지역을 확대해 대출 총량을 줄여 신용대출을 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은 더욱 어렵게 된다.
공모주 청약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다. 최근 신용대출이 급증한 이유로는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즈 등 기업공개(IPO·상장) 종목의 공모주 청약 증거금 마련이 꼽힌다. 경쟁률이 워낙 높아 빌린 돈 대부분은 돌려받지만 결국 주식투자 등에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약금을 많이 낼수록 공모주 배정을 받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제도를 개선한다면 관련 대출 수요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