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가 높지 않았던 스가 요시히데는 지난해 4월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면서 대중적 호감도가 상당히 상승했다. 10대들에게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EPA/연합뉴스
영국 공영방송 BBC는 ‘딸기농가 아들 스가 요시히데가 일본 최고직 총리에 올랐다’는 제목으로 그의 경력을 상세히 소개했다. 스가는 1948년 아키타현에서 태어났다. 고교졸업 후 단신으로 도쿄로 상경해 “막노동을 하며 모은 돈으로 뒤늦게 호세이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11년간 활동했다. 그리고 1987년 요코하마 시의원에 당선, 1996년에는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 중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아베 총리와의 인연은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 때 총무성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쌓았다. 이어 2012년 2차 아베 내각에서도 관방장관을 맡아 최근까지 호흡을 맞춰왔다. 아베 전 총리가 역대 최장기 집권 기록을 쓴 것처럼, 스가 또한 역대 최장기 관방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사실 “스가는 일본 내 대중적 인기가 높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BBC는 “발표 덕분에 정치에 무관심했던 10대들에게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는 등 스가의 대중적 호감도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CNN 방송은 스가를 두고 ‘아베의 오른팔’이라는 수식어를 썼다. “스가가 그동안 아베 총리의 비서실장 겸 정부 대변인 역할을 겸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스가 내각이 아베와 마찬가지로,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외교정책과 재정을 확대하는 ‘아베노믹스’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스가의 개인적 성향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특히 스가가 정계에 첫 입문한, 1987년 요코하마 시의원 선거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전했다. CNN에 따르면 “당시 스가는 연줄도, 정치적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끈기와 노력으로 보완했다”고 한다. “하루 300여 가구씩 총 3만 가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유권자와 만났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선거가 끝날 무렵, 스가의 구두 6켤레가 닳아 없어졌다”고 CNN은 덧붙였다.
로이터통신은 스가와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동창생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스가는 야구, 가라테 등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반면 “연극 발표회에서는 표정이 딱딱하고 연기가 능숙하지 않았다”는 등의 일화가 공개됐다. 또한 “말수는 적지만 똑 부러지는 타입으로, 농사를 물려받기 싫어 도쿄로 상경해 경비원, 츠키지어시장 짐꾼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마쳤다”고 적었다.
일본 정치인들은 대부분 부모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세습 정치인이거나 아베 전 총리처럼 ‘명문가 자제’라는 후광으로 정계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로이터통신은 “이들과 달리 스가는 ‘자수성가형’이자, 자민당 내에서도 드물게 ‘무파벌’로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자국의 새로운 총리, 스가에 대한 일본인들의 평가는 어떨까.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 “판을 잘 읽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출마 의사를 표명했을 때부터 스가는 “다방면에서 아베 총리의 정책을 계승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아베 정권 지지율은 하락세였으나 국민이 뽑는 직접 선거가 아니라 중의원을 중심으로 한 사실상 ‘집안 선거’라서 가능했다. 게다가 일찌감치 당내 7개 파벌 중 주요 5개 파벌이 그를 지지하기로 결정하면서 부쩍 ‘여유’가 생겼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앞쪽 가운데)가 1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다른 각료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8명의 각료가 유임돼 ‘아베 내각 시즌 2’라는 말이 나온다. 사진=신화/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마치다 테츠 경제평론가는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는 이미 파탄을 맞고 있다”며 “새 총리에게 요구하고 싶은 건 조속히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과 결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 타이밍이 늦어지면 자칫 일본 경제는 장기간 마이너스 성장 혹은 제로 성장에 허덕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30년 만의 ‘무파벌’ ‘비세습’ 총리가 탄생했다”며 긍정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많아 아베 총리와 완전히 동일하게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념지향적인 아베와 달리, 스가의 경우 실용주의적이라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스가와 친한 어느 저명인사는 “스가는 아주 냉철한 사람이다. 술도 마시지 않아 절대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면서 “친근한 내각보다 결과를 내는 내각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과연 당선에 힘을 실어준 파벌들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지는 의문이다. 일본 매체 지지통신은 “향후 스가가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측했다. 총재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긴 했으나 독자적인 지지기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베 총리 파벌을 등에 업고 총리가 됐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베의 기존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스가 총리의 임기는 아베 총리의 잔여임기인 내년 9월 말까지. 현 상황을 보면 “스가가 실권을 휘두르기보다는 아베의 남은 임기 1년을 채우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9월 15일 단행된 자민당 지도부 인사를 봐도 ‘연속성’에 초점을 맞췄다. NHK에 따르면 “스가 총리는 자민당 파벌 중 가장 먼저 자신을 지지하고 나선,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연임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아울러 자신을 지지해 준 파벌을 고루 배분해 당 4역 인사를 진행했다.
내각 또한 아베 내각의 주요 인사들이 그대로 자리를 이어간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장관 등 8명의 유임이 확정됐다. 사실상 ‘아베 내각 시즌2’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와 관련 마이니치신문은 “각 파벌을 배려한 균형 인사로 볼 수 있지만, 새로운 맛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평가했다.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정치저널리스트 아즈미 아키코는 “71세의 스가 총리를 지지하는 자민당 내 파벌 수장들은 81세의 니카이 간사장, 곧 80세가 되는 아소 다로 부총리, 76세인 호소다 히로유키 전 관방장관, 73세인 다케시타 와타루 전 총무회장이다. 어쩐지 일본의 가까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며 의미심장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