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세력구도에 변화 있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대하는 태도를 두고 국민의힘 투톱의 시각은 엇갈렸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시종일관 “별 볼 일 없다”고 했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계속해서 안 대표 측에 러브콜을 보냈다. 이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주 원내대표는 이를 부인하면서도 김 위원장과 의견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인정했다. 김 위원장은 “안철수를 급하게 받을 필요 없다”는 입장이고, 주 원내대표는 “지금은 부지깽이도 아궁이에 넣어야 할 만큼 세력 충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가 있는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 시기인 점을 감안하면 비대위원장보다는 원내대표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자강론’보다는 주 원내대표의 인재 영입을 통한 세력 ‘강화론’이 일단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장선에서 권성동 의원이 복당 1호 테이프를 끊었다. 권 의원은 지난 4·15 총선 공천에서 컷오프되자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강원 강릉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한 권 의원은 당선 직후 복당을 신청했다.
무소속 4인방 일괄 복당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속도가 빨랐다는 데는 정치권 시각이 일치한다. 당초 김 위원장은 “당 정비가 우선이고, 복당은 그 다음”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권 의원을 받아들인 이상 홍준표 김태호 윤상현 의원을 안 받을 명분이 사실상 사라졌다. 옛 식구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열리면서 김종인 위원장의 위상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구도를 깼다는 공로도 있지만, 김 위원장이 추가로 내놓을 카드가 별로 없다는 분석과도 맞닿아있다.
실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태에 민주당 김홍걸 이상직 의원 도덕적 논란 등 여당에 악재가 쏟아지는데도 국민의힘 지지율은 박스권에 갇혔다. 9월 17일 나온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지지도는 전주보다 2.3%포인트(p) 오른 35.7%를 기록한 반면, 국민의힘은 3.4%p 하락하면서 29.3%로 내려앉았다(리얼미터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당명 개정 전인 8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 잠시 민주당을 앞섰던 기세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국민의힘이 국민들이 원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추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연결된다. 김종인 위원장의 주머니가 이미 비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이 많은 일을 했고 성과가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재주 많은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밑천이 바닥난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난 상처가 아물 때까지 잠시 덮어주는 1회용 반창고로 봐야 한다. 정당이 한 사람에게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뺄셈 말고 덧셈 정치 시동?
김종인 위원장이 강조해온 ‘당의 혁신적 변화’ 카드는 최근 들어 부쩍 힘이 빠지고, 최근 국민의힘 기류는 ‘뭉치는 모습’으로 흐르고 있다. 뺄셈 정치보다 덧셈의 정치를 택하는 모양새다.
뭉치는 모습이 안착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첫 번째 가늠자는 김 위원장이 껄끄러워하는 홍준표 의원의 복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 내부에서 일부 반발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지금은 한 명의 힘이라도 모아야 할 때”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선거를 많이 치러본 다선 의원들은 내년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복당파를 빨리 받아들여 보수 대화합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의 당 운영 방식에 대해 줄곧 비판적 태도를 보여 온 장제원 의원은 권성동 의원이 복당한 9월 17일 자신의 SNS를 통해 “남아있는 무소속 의원들의 복당 또한 이른 시일 안에 정상적으로 진행해 주길 기대한다”고 적었다. 홍준표 의원 등의 복당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껄끄러운 홍 의원에 대해 통 큰 모습을 전격적으로 보여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 의원은 자신이 1990년대 동화은행 사건 때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김 위원장을 구속시킨 검사였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뇌물브로커’ 등의 어휘까지 쓰며 김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자신에 공격의 화살을 날린 홍 의원까지 품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새 장면을 연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홍준표 관문’을 통과한다면 뭉치는 모습의 마지막 관문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의 행보를 보면 이미 국민의힘 쪽으로 마음을 열었다. 안 대표는 9월 11일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는 비대면 간담회에 참석해 주호영 원내대표와 나란히 축사를 했고, 9월 15일에는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의원이 주도하는 미래혁신포럼에 참석해 야권 혁신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동안 안 대표는 언론을 통해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고 일관되게 얘기해왔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를 보면 “고민하겠다”며 전과는 많이 달라진 메시지를 내고 있다.
#눈치 보던 잠룡들 기지개
김종인 위원장은 서울시장 후보든, 대선후보든, 직접 발굴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하지만 달력을 보면 김 위원장의 말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확연히 줄었다. 때문에 대선을 겨냥한 국민의힘 당내 잠룡들은 부쩍 바빠지고 있다. 잠룡이라 불리지만 이들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워낙 낮아 ‘도토리 키재기’라는 비아냥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을 내놓으며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기본소득 연구포럼 창립총회 및 세미나’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왼쪽)를 만나 악수를 나누는 원희룡 제주지사. 사진=연합뉴스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원희룡 제주지사다. 그는 차기 대권주자 1·2위를 다투는 민주당의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를 상대로 연이어 ‘싸움’을 걸며 체급을 키우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원희룡 지사는 9월 11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2차 재난지원금 지급방식을 두고 이재명 지사와 일대일로 설전을 벌였다.
이어 원 지사는 9월 17일 자신의 SNS에서 “이재명 지사님 이번에도 너무 심하셨다. 국책연구기관의 리포트가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겠지만 조사와 문책이라니요”라고 쓰며 이 지사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지사가 지역화폐 정책의 역효과를 지적한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대해 “얼빠졌다”고 비난한 데 대한 공격이었다. 원 지사는 이낙연 대표에게도 SNS에 편지 형식으로 독감 예방 접종의 전 국민 확대를 주장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대위원장의 발걸음 소리도 빨라지고 있다. 그는 교수 출신에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경력을 살려 강연 정치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9월 22일 자신의 출신지역이자 국민의힘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에서 ‘대한민국 미래를 고뇌하는 비전 4.0포럼, 33인이 초청한 김병준과 함께하는 정치담론’이라는 행사에 참여한다. 이날 그는 ‘또다시 불행의 늪에 빠진 권력’이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김 전 위원장은 김종인 위원장이 9월 17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제·개정안에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히자 SNS를 통해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법안에 담긴 다중대표소송 제도 등이 시장의 자율성과 자정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김 위원장에 대해 날을 세웠다.
지난 5월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유승민 전 의원도 현재 집필에 몰두하며 재기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과 맞물려 ‘경제회복’에 대한 선호도가 크고, 보수주의자지만 개혁을 외쳐왔다는 점에서 그의 가치는 당내에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앞서 유승민 전 의원은 “비상대책위원회를 한다고 해서 금방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반대했다. 때문에 김 위원장의 개혁 드라이브가 위세를 떨쳤던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유승민은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킹이 아니라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김무성 전 의원도 주목은 받고 있지만, 세력이 부족하고 제대로 된 후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론의 중심에 서지는 못하고 있다. 황교안 전 대표가 복귀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최근 수감된 전광훈 목사와의 관계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재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선거를 여러 번 경험해본 한 국회 보좌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감사원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공무원 출신이 첫 선거를 서울시장이나 대통령 선거로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다. 어차피 당 내부의 기존 인물들이 어떤 방식이든 체급을 키워 나올 수밖에 없다. 일단 최대한 많은 인원이 모여들게 해서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우여곡절 이벤트를 만든다면 국민의힘 후보가 선택받을 수 있다”고 예견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