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놨지만 임기 반환점을 돈 현재까지도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사진=청와대
서울 소재 4년제 사립대학교 문과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윤 아무개 씨(23)는 8월 말 졸업 전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냈다. 2017년 대학에 입학한 뒤 정확히 4년 만에 이른바 ‘칼졸업’을 하는 셈이다. 윤 씨는 “대학 등록금이 1학년 1학기 때부터 4학년 2학기까지 모두 정확히 똑같다”고 했다. 윤 씨는 8학기 동안 학기마다 정확히 342만 원씩을 냈다. 연 평균 684만 원을 학교에 지불했다.
윤 씨는 “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등록금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았다”면서 “정부가 반값등록금 공약을 낸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만약 반값등록금이 정부 공약이라는 걸 알았다면 대학을 다니는 내내 도대체 언제 등록금이 내리는 것인지 걱정했을 것 같다”고 했다. 윤 씨가 체감한 등록금 부담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비슷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대학생들에게도 악재다. 윤 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업이 대부분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학생들이 느끼는 대학 교육의 질은 상당히 낮아졌다”면서 “그럼에도 등록금은 그대로다. 자발적으로 등록금을 환불해주는 학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또 다른 서울 4년제 사립대학교 공과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이 아무개 씨(22)는 과 학생회장 직을 맡고 있다. 이 씨는 2020학년도 2학기 등록금으로 484만 원을 냈다. 통상적으로 이과계열 등록금이 문과계열 등록금보다 비싸다. 의대를 비롯해 학교마다 특성화된 전공의 경우엔 학기당 1000만 원 가까운 등록금을 내는 경우도 있다.
이 씨는 “최근 학생 사회에서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면서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서비스 질 약화에 대해 등록금 환불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거세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학교 측에선 등록금 환불은 못해준다면서 다른 식으로 학생들을 지원해 주겠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식으로 학생을 지원하는 게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할 만큼 미미한 수준일 것은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 5월 대선 TV 토론에서 반값등록금 공약을 둘러싼 논쟁을 벌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의원. 사진=국회 사진 취재단
학생들이 체감하고 있는 등록금의 무게감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큰 변화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반값등록금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반값등록금 공약에 대한 문 대통령 의지는 상당히 강해 보였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2일 상암 MBC 사옥에서 열린 대선TV토론 과정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와 반값등록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홍 후보는 “노무현, 김대중 정부에서 대학 등록금을 자율화해서 (등록금이) 113%나 올랐다. 본인이 집권하면 옛날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되지 왜 반값으로 한다고 선심성 공약을 내놓느냐”고 문 대통령을 몰아붙였다. 문 대통령은 “왜 옛날 얘기를 하느냐”면서 “다음 정부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다음 정부에서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하는 것에 반대하느냐”고 반문했다. 여기에 홍 후보는 “문 후보가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할 때 (등록금을) 두 배 이상 늘려놓고 다시 집권하면 원래대로 하겠다고 해야지 선심성 공약을 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도 반값등록금을 공약했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토론에서 “박 후보(박근혜 전 대통령)가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반값등록금을 공약했지만 태도가 왔다갔다 했다”면서 “18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반값등록금 법안 통과를 4년 내내 요구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시종일관 거부했다”고 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모든 학생들 등록금을 반으로 하자는 문 후보(문재인 대통령) 주장은 포퓰리즘”이라고 맞받아쳤다.
박 전 대통령 역시 당시 대선 토론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대학 등록금 폭등을 주도했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문 후보가 주역이었던 참여정부에서 대학 등록금을 역대 최고로 올려놨다”고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때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등록금이 많이 올랐다”면서 “이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공약이 반값등록금”이라고 답변했다.
6월 20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전국 대학 학생회 네트워크가 주최한 ‘상반기 등록금 즉각 반환 전국 대학생 분노’ 집회 장면. 사진=임준선 기자
문 대통령은 두 차례 대선에서 반값등록금 정책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역설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돈 현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 그래프엔 큰 변화가 없다. 대학 관련 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7년부터 4년제 대학 등록금은 평균 2만 원씩 오르고 있었다. 4년제 대학교 연평균 등록금 규모는 2017년 665만 원, 2018년 667만 원, 2019년 669만 원, 2020년 671만 원이었다.
사립대학교 연평균 등록금은 700만 원 수준이며, 지역에 기반을 둔 국공립대학교 연평균 등록금은 400만 원을 상회하고 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주도로 ‘반값등록금’을 실현한 서울시립대학교의 경우엔 연평균 등록금이 239만 원으로 국립대학교 절반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학 등록금 정책 기조는 박근혜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등록금을 직접적으로 낮추기보다는 한국장학재단 국가장학금 지급으로 등록금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등록금 인하 정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는 학생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2020년 1월 교육부가 발표한 국가장학금 기본 지원 계획에 따르면 2020년 등록금 절반 이상을 보조받는 대학생 규모는 68만 4000명 수준으로 예정돼 있었다. 전국 대학생 전체 31.5% 정도 규모다. 현실적으로 ‘반값등록금’ 혜택을 받는 대학생은 3명 중 1명도 안되는 셈이다.
다자녀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등록금 혜택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유 아무개 씨는 부모가 모두 공무원인 집에서 태어났다. 현재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 씨는 4남매 중 셋째다. 다자녀 가구의 일원인 셈이다. 유 씨는 “부모님이 모두 공무원이고, 다자녀 가구에 해당하지만 등록금을 낼 때 국가로부터 나오는 혜택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했다. 유 씨는 “다자녀에 대한 혜택이 없는 것을 피부로 느끼다보니, 나중에 아이를 많이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서 “저출산 대책으로 다자녀 가구를 지원한다는 뉴스를 적잖이 봤지만 실제로 느끼는 부분은 크지 않다”고 했다.
유 씨는 “다자녀 가구에 대한 지원을 차치하고서라도 코로나19 상황에서 대학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대학의 주머니 사정은 코로나19라는 악재와 무관하게 잘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하소연하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축소하고 긴축 재정에 돌입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등록금 규모를 현행 유지 혹은 소폭 상승시키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악재가 가득하다. 비싼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내고, 취업은 취업대로 되지 않으니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도 ‘힘들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학생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반값등록금 공약은 지켜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논외로 치부되고 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움을 넘어서 괴롭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