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공채 7기 개그맨 김형인은 최근 동료 개그맨 최재욱과 함께 불법 도박장 운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도박 혐의는 일부 인정했지만 운영에는 가담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SBS ‘본격 연예 한밤’ 캡처
가장 최근 불거진 개그맨들의 불법 사설 도박장 운영 사건 당사자로 SBS 공채 7기 개그맨 김형인과 최재욱이 지목됐다. 김형인은 2003년 데뷔 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에서 동료 개그맨 윤택, 정만호(만사마), 김기욱(화상고) 등과 함께 인기몰이를 하며 웃찾사의 간판 개그맨으로 자리 잡았던 인물이다. “그런 거야” “택아” 등 그의 유행어는 2000년대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 만큼 최근 논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사건에서 쟁점은 김형인이 실제로 불법 도박장을 운영했거나 운영에 관여를 했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형인은 이에 대해 “3년 전 최재욱이 보드게임방 개업을 명목으로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빌려준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곳이 불법도박을 하는 시설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형인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2017년 초 최재욱에게 보드게임방 개설 자금으로 1500만 원을 빌려줬다. 그러다 같은 해 말 결혼을 앞두고 자금이 필요해 빌려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새로운 투자자 A 씨가 등장한다. A 씨 역시 최재욱의 보드게임방 운영 자금을 대줬는데 자금 융통이 어려웠던 최재욱이 A 씨의 투자금 가운데 일부를 김형인의 돈을 갚는 데 사용한 것이다.
이후 보드게임방이 불법 사설 도박장으로 변질됐고, 손해를 본 A 씨가 김형인도 개설 자금을 댔다는 것을 빌미로 협박해 금전까지 요구했다는 것이 김형인의 주장이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약 2년 동안 협박을 당했다며 김형인 역시 A 씨를 공갈협박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욱도 경찰 조사에서 불법 도박장의 운영에 김형인이 관여한 바 없다고 진술한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김형인의 도박 여부다. 김형인은 도박장의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한두 차례 도박에 참여한 사실은 있다고 밝혔다. 결국 범법 행위 자체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한때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대표 유행어도 있을 정도로 유명했던 개그맨의 추락에 씁쓸한 시선이 모이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최근 들어 연이어 전해지는 개그맨들의 일탈 소식에 대중 사이에서 부정적인 기류도 생겨나고 있다. 올해 큰 충격을 줬던 KBS 연구동 여자 화장실 불법 촬영기기 설치 사건의 범인도 KBS 공채 32기 출신 개그맨 박 아무개 씨(30)였다.
박 씨는 2018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총 32차례에 걸쳐 KBS 신관과 연구동 건물 여자 화장실이나 탈의실, 대기실 등에서 피해자들의 모습을 몰래 촬영하거나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11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3단독 심리로 열린 그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하는 동시에 5년간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복지기관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요청했다.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는 이유에서다.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상파 공채 개그맨의 성범죄는 올 상반기 연예계 뉴스 가운데 손꼽히는 충격 소식이었다. 이후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가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 끝에 입건된 개그맨 노우진이나 2007년에 이어 두 번째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개그맨 김정렬 등의 소식이 보도되면서 개그맨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기도 했다.
국내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폐지는 개그맨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사진=KBS 제공
올해는 지상파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이던 KBS2 ‘개그콘서트’가 21년 만에 폐지되는 등 코미디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겐 유독 싸늘한 한 해였다. 이런 가운데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업계 전체에 부정적인 시선이 더해지고 있다는 하소연도 나오고 있다. “불러주는 곳은 줄어드는데, 편견은 계속 쌓이고 있어 정상적인 방송에선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코미디 프로그램과 대학로 소극장을 거쳐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로 무대를 옮긴 한 중견 개그맨은 “코로나19 시국 이전에도 한국 코미디계는 악화일로였다. 다른 예능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벌이가 마땅치 않은 이들은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인터넷 방송 플랫폼으로 무대를 옮겨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런데 먹방도 아니고, 반려동물 방송도 아닌 채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방송으로 향한 개그맨들 가운데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나 행동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또 그런 모습이 ‘개그맨들은 원래 다 양XX야’라는 편견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범죄에 개그맨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면 편견은 더욱 강화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료들이 입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의 일탈이 동종업계 전체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다소 부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 관계자는 “배우가 음주운전을 하면 개인의 문제고, 아이돌 가수가 물의를 일으키면 그를 감독하지 못한 소속사 탓이다. 그런데 개그맨이 논란에 휩싸이면 ‘개그맨들이 다 그렇지 뭐’라는 말이 나온다. 개그맨을 다소 낮춰 보는 사회적인 시선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처럼 대중이 애초에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송사는 최대한 검증된 개그맨들을 방송에 올리고 싶어 하고, 신인이나 비인기 개그맨들은 설 자리를 계속 잃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며 “KBS 개그맨 불법촬영 사건 때처럼 동기들이 나서서 성명서를 내고 가해자와 선을 그은 것도 혹시라도 대중이나 방송 관계자들이 가질 편견을 미연에 방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