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월 1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 사회 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추 장관 아들 논란이 본격적으로 확산됐던 8월 말만 하더라도 여권 기류는 신중해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추 장관 교체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고개를 들었다. 9월 2일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서 씨 병가에 추 장관 전 보좌관이 관여했다는 내용의 전화 녹취록을 공개한 이후 추 장관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정반대다. 더불어민주당은 추 장관 엄호를 위한 총력전 태세를 갖췄다. 이 과정에서 추 장관 아들을 안중근 의사에 빗댄 논평을 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9월 13일 페이스북에 “송구하다”며 자세를 낮췄던 추 장관도 그 이후 이뤄진 대정부질문에선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며 국민의힘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다.
여권의 ‘추미애 구하기’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자신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여러 민주당 의원들은 추 장관 아들 의혹에 대해 “법적으론 문제될 게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9월 11일 “현재까지 나온 거의 모든 의혹은 거의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황희 의원은 아들 문제를 최초 제기한 당직사병에 대해 “산에서 놀던 철부지의 불장난”이라고도 했다(관련기사 [인터뷰] ‘단독범’ 발언 논란 황희 의원 “현 병장 허위사실 유포 수사해야”).
여기엔 국방부 입장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국방부 측은 추 장관 아들 논란에 대해 “규정상 문제가 없다” “행정 절차상 오류”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정경구 국방부 장관은 9월 15일 국회에 출석, “(추 장관 아들) 면담 일지와 부대 운영일지 등에 기록이 돼 있다. 승인권자 허가를 받고 한 것”이라면서 “우리 군은 결코 그런 것들이 통하지 않는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서류 등이 보존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정 장관은 “미흡했던 게 있었던 점은 보완조치해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당 한 친문 의원은 “군 문제에 있어서 국방부보다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느냐”면서 “국방부가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 있는 그대로 진상을 파악해 밝힌 것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폭로는 정쟁을 위한 것으로 대부분 부풀려진 것이다. 우리가 추 장관을 위해 싸워주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추 장관 아들 사건은 현재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덕곤)가 맡고 있다. 수사팀은 추 장관 아들 서 씨를 포함해 부대에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진 보좌관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쳤다. 또 추 장관 부부 중 한 명이 국방부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국방부 메인 서버실에 보관돼있던 통화 녹취 파일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형사 1부엔 이외에도 시민단체가 직권남용 및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추 장관을 고발한 사건도 배당된 상태다.
검찰 한 고위 인사는 “국방부 등을 통한 압수물 분석이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수사 상황에 따르면 법적으로 크게 문제될 부분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서도 추 장관과 아들이 받고 있는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란 해석이 우세한 모습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핵심인 외압 여부와 관련해서 추 장관 측이 설령 전화를 걸었다고 해도 이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치인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나올 순 있지만 단순 문의라고 반박하면 사법처리는 힘들다”고 했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추 장관 소환 여부다. 앞서의 검찰 고위 인사는 “현직 법무부 장관을 구체적 혐의 입증 없이 소환하는 건 힘들다”라고 전하면서도 “하지만 국민적 의혹이 큰 상황에서 조사 한 번 안하면 부실 수사라며 우리가 욕을 먹는다. (추 장관 소환을 놓고) 수사팀이 골치 아플 것”라고 토로했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사팀이 추 장관을 직접 방문하거나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은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며 각을 세웠다. 올해 1월 고발된 사건을 미루다가 최근에서야 속도를 내는 것을 두고는 ‘면죄부를 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파다하다. 고발 당시 수사 지휘부가 얼마 전 검찰 인사에서 대검으로 대거 영전한 부분, 그리고 현 동부지검 수사라인이 추 장관과 가깝다고 분류된다는 점도 검찰 불신과 맞닿아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친정권 라인이 인사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판명 난 지금, 수사팀이 과연 성역 없이 진상을 파헤칠지 의문”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특임검사 또는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특임검사의 경우 법적으로 검사 비위가 대상이다. 추 장관 아들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회가 해야 하는 국정조사 역시 민주당이 원내에서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사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임준선 기자
실제 윤 총장은 서울동부지검 수사와 관련해 ‘패싱’ 논란에 휩싸였다. 현직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에 대해 검찰총장이 전혀 보고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검찰 내에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윤 총장은 추 장관 아들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윤 총장은 동부지검 지휘부가 아닌 일선 검사들을 상대로 ‘원칙 수사’를 강조했다고 한다.
검찰의 또 다른 고위 인사는 “흔하게 하는 말로 검찰엔 검사가 많다. 덮는다고 덮이는 게 아니다”라면서 “윤석열 총장이 한참 어린 후배 검사들을 향해 자꾸 메시지를 내는 것을 허투루 봐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