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매매 영세업체들은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저지하고자 시위·집회에 나서고 있다. 사진=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제공
#현대차그룹 중고차 시장 진출 밀어붙이는 이유
최근 현대차그룹은 중고차 사업 진출 염두에 두고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차 사업을 맡을 계열사로는 현대글로비스가 꼽힌다.
2018년 김정훈 현대글로비스 대표는 오는 2025년까지 현대글로비스의 매출을 40조 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국내 중고차 시장의 성장세와 일부 수입차 업체의 인증중고차업 선전을 고려할 때, 매출 증대 방안으로 중고차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지난해 현대글로비스의 매출은 18조 2700억 원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미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차 경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고차 거래 온라인 플랫폼 ‘오토벨’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에는 연간 거래액이 133조 원에 달하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현지에 합자회사 진출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글로비스의 매출 확대는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현대글로비스의 가치가 높아졌을 때 지분을 팔고 현대모비스, 기아차, 현대차 등의 지분을 사들여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올라설 수 있다.
현대차·기아차·르노삼성·한국지엠·쌍용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완성차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2018년 철회한 현대모비스와의 분할합병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명분도 생긴다. 당시 합병안은 현대모비스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현대글로비스 가치를 고평가해 산정한 합병 비율로 인해 무산됐다. 하지만 인증중고차 사업을 통해 현대글로비스의 가치를 끌어올린다면 분할합병을 추진할 명분을 얻는다. 특히 합병안 무산을 이끌었던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주식을 모두 매각해 지배구조 개편의 불확실성이 줄어들었다.
정의선 부회장은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지 못했다. 현대모비스(0.3%), 현대차(2.6%), 기아차(1.8%) 등의 지분율이 낮아 현대차그룹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총수로 인정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을 받지 못한 이유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 등 총 4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 가치를 올리는 게 현대차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적인 고리”라며 “현대차·기아차가 국내 자동차 내수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독과점인 상황에서 현대글로비스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면 수익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현대글로비스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신차 판매량이 줄어들어 현대차·기아차 주주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월 30일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공정거래법 개정 전 내부거래 비중도 낮춰야 해
현대글로비스는 내부거래 비중을 낮춰야 하는 과제도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26개사 중에 삼성물산 다음으로 현대글로비스가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21.6%가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2010년 49.5%에서 2016년 20.6%로 크게 줄었지만, 2017년 20.7%, 2018년 21.2%로 다시 소폭 늘어닜다.
문제는 정부·여당이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주요 국정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같은 달 31일 국회에 제출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감 몰아주기 대상 총수일가 지분 기준이 ‘상장사 30%·비상장사 20%’에서 일괄 20%로 변경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각각 6.71%, 23.29%씩 보유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사업을 다각화하고 비계열사 일감을 대량 수주하면서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고 있다. 지난 9월 17일 태국 재계 1위 CP그룹과 제휴를 맺고 편의점 상품 운송에 전기트럭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엔 폴크스바겐, 아우디, 포르셰, 벤틀리 등이 유럽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의 운송 계약을, 지난 5월엔 중국 칭타오 한국농수산식품 물류센터 운영 사업권을 따냈다.
폴크스바겐 등과 맺은 7월 계약의 기간은 기본 3년으로 2년 연장할 수도 있다. 총 계약금액은 5182억 원(5년 계약 기준)이다. 2010년만 해도 현대글로비스 운송 매출의 88%가 현대·기아차에서 발생했지만, 꾸준히 낮아져 지난해 47%로 떨어졌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