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택의 은퇴투어는 여론에 밀려 무산됐지만 각 구단들의 환송식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LG 트윈스 제공
KBO리그 현역 최고령 타자인 박용택은 LG의 시즌이 끝나는 순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 박용택을 위해 지난 8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는 은퇴투어를 계획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논란을 빚었다. 결국 박용택은 자신을 둘러싼 은퇴투어 논란과 관련해 “은퇴투어 대신 한국시리즈 우승 후 헹가래를 받는 우승 투어를 하고 싶다”는 말로 모든 걸 정리했다. 팬들은 왜 박용택에게 은퇴투어를 허락하지 않았던 걸까.
당시 한 포털 사이트가 ‘박용택의 은퇴투어’ 여러분의 의견은? 이란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반대가 75.6%, 찬성이 22.7%(기타 1.7%)였다. 미디어에서는 박용택이 이승엽, 이호준 등 이미 은퇴투어를 치른 레전드들과 달리 우승 경험이 없고 2009시즌 타율왕(타율 0.372) 타이틀을 차지할 당시 자신의 기록을 ‘관리’하려던 모습이 팬들의 빈축을 샀다는 분석을 내놨다.
2009년 당시 박용택은 롯데전 포함 마지막 2경기를 앞두고 타율 선두를 달렸다. 그런데 LG 투수들이 롯데전에서 박용택의 타격왕 경쟁 상대인 홍성흔과 정면 승부를 피했고, 박용택은 그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서 홍성흔과 1리 차이로 타격왕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박용택의 태도가 ‘졸렬하다’는 비판이 따라다녔고, 일부 팬들은 그를 ‘졸렬택’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박용택은 최근 유튜브 채널 ‘썸타임즈-이영미의 셀픽쇼’ 인터뷰를 통해 당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그 후로는 최대한 졸렬하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 야구장 안팎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관련영상 은퇴 앞둔 줄무늬 레전드 LG 트윈스의 심장 ‘박용택’ 1편). 박용택이 직접 논란을 잠재우면서 은퇴투어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다 최근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등 정규시즌 마지막 원정 경기를 갖는 홈팀의 선수단이 박용택을 위해 간소하면서도 마음을 담은 소박한 ‘환송식’ 자리를 만들었다.
관중이 없는 자리에서 조촐한 행사였지만 팬들은 행사를 준비한 선수단에, 또 꽃다발을 받고 환한 미소를 짓는 박용택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더욱이 박용택은 은퇴를 앞둔 선수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올 시즌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일부 팬들은 박용택의 은퇴투어가 논란으로 사라진 데 대해 뒤늦게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민훈기 해설위원은 박용택의 은퇴 투어 무산에 대해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사진=LG 트윈스 제공
KBSN스포츠 민훈기 해설위원은 얼마 전 중계방송 중에 박용택의 은퇴투어와 관련해 작심하고 쓴소리를 남겼다.
“우리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팬들이 많은 것 같다. 박용택은 그 이후에(2009년 타격왕 논란) 반성과 행동으로 충분히 보여줬다. 은퇴투어를 하지 못한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박용택 정도면 당연히 은퇴투어 해야 할 선수가 아닌가.”
민훈기 해설위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자신이 방송으로 그런 이야기를 전한 건 현실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용택은 어느 누구보다 KBO리그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다. 10년 연속 3할 타율을 이뤘고, 7년 연속 150안타를 기록했으며 정성훈(2223경기)에 이어 2208경기 출장으로 역대 2위에 올랐다. 무엇보다 현재(9월 18일) 2497안타를 기록했고, 곧 2500안타를 눈앞에 두고 있다. LG에서 이룬 통산 타율이 0.308이다. 얼마나 대단한 숫자들인가. 더욱이 박용택은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는 선수다. 야구를 대하는 태도, 사생활 등에서 잡음이 없고 성실하다. 단 한 가지의 흠이 2009년 타격왕 타이틀을 위해 경기에 빠진 부분이다. 이 부분은 박용택이 여러 차례 사과를 전했고, 열심히 봉사활동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선수가 실수했다고 해도 충분히 사과하고 반성한다면 두 번째 기회는 줘야 하지 않나. 자신한테 너그럽고, 남한테 엄격한 문화가 박용택의 은퇴투어를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용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충분히 은퇴투어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여론에 막혀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메이저리그(MLB)에는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은퇴 시즌 동안 마지막 원정지에서 상대팀으로부터 성대한 은퇴 기념식과 의미 있는 선물을 받았다. 그 행사가 치러지는 동안에는 양 팀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나와 은퇴를 앞둔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시카고 컵스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한 롯데 자이언츠 성민규 단장은 “KBO리그도 메이저리그처럼 아름다운 은퇴투어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미국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든, 방출 형태로 팀을 나간 선수든 은퇴투어를 하는 선수한테 최대한 예우해서 기념식을 마련해준다. 떠날 때는 아름답게 헤어지자는 생각 때문이다. 일부 팬들이 박용택 선수의 은퇴투어 관련해서 왜 반대 입장을 나타냈는지 이해한다. 그러나 이젠 지난 일이고, KBO리그의 틀을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박용택 선수를 품어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더불어 가야 한다. 선수들의 팬 서비스도, 이런 은퇴투어도 모두 문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박용택 선수가 2500안타를 앞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왔다는 걸 의미한다. 앞으로 박용택을 능가할 만한 선수가 몇 명이나 될지, 그래서 어떤 선수가 은퇴투어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LG 트윈스는 10월 13, 14일 정규시즌 마지막으로 사직 원정 경기를 치른다. 성 단장은 LG전을 앞두고 박용택 은퇴 관련 환송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박용택의 은퇴투어 논란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LG 차명석 단장은 최근 KIA와 한화가 준비한 박용택 ‘환송식’을 보고 조계현(KIA), 정민철(한화) 단장을 직접 찾아가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고 말한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란 성어처럼 먼저 나서서 행동하지 못하지만 진심으로 원했던 일이 박용택 은퇴투어였다. 그러나 논란이 일면서 없던 일이 돼 마음이 안 좋았는데 상대팀에서 조촐한 행사를 마련해주니 얼마나 고마웠겠나. 진심으로 감사했다.”
차 단장은 레전드급 선수 은퇴투어가 여론에 좌지우지되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은퇴투어는 선수가 시즌 전에 먼저 은퇴를 결심해야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 베테랑 선수들은 세월에 떠밀려 은퇴하는데 이승엽, 이호준, 박용택 등은 미리 은퇴 의사를 밝히고 시즌을 치렀고, 치르는 중 아닌가. 한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만 KBO리그에서 이들의 역할은 지대했다고 본다. 처음에는 박용택의 은퇴투어를 반대했던 분들도 지금 KIA와 한화의 은퇴 행사를 보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은퇴투어를 할 정도의 선수는 스타플레이어들이다. 선수의 기록, 공헌도, 후배들의 평가 등이 고루 적용된 후 은퇴투어가 진행된다. 박용택은 이미 지났지만 앞으로 선수의 은퇴투어에 팬들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차 단장은 박용택과 남다른 인연을 이어왔다. 그는 자신이 코치 시절 박용택한테 배팅볼을 던져주며 친분을 쌓았다고 말한다.
“박용택 타격 훈련의 70%는 내가 던진 공으로 이뤄졌다. 그가 2500안타를 달성한다면 내 지분이 10%는 들어 있다는 걸 기억해 달라(웃음). 야구 후배이자 팀 선수로서 박용택만큼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선수도 없을 것이다. 박용택보다 더 좋은 타자는 나올 수 있어도 박용택보다 더 많이 노력한 선수는 나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타고난 능력보다 노력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걸 인정해줘야 한다.”
차 단장은 19년간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수많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채 야구 선수의 길만 걸어온 박용택을 존경한다고까지 표현했다. 다만 차 단장은 LG 구단이 준비하는 박용택 은퇴식은 올 시즌에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한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관중이 없는 가운데 경기를 치르고 있다. 박용택 은퇴식은 LG 팬들이 가득 찬 야구장에서 성대하게 치르게 해주고 싶다. 선수도 팬들 앞에서 정식으로 인사하고 은퇴식을 치르고 싶다고 말하더라. 박용택의 은퇴식은 꼭 팬들 앞에서 이뤄지게 할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