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움직이는 곳마다 ‘돈’
소방 무전을 도청해 시신을 옮긴 장의업자들이 사용한 장비. 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부산의 현직 경찰관 두 명이 변사사건으로 숨진 시신의 정보를 금품을 받고 장의업자에게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 중이다. 2011년에는 부산의 장의업자 전 아무개 씨가 시신을 연결해주는 대가로 부검의에게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전 씨는 부검의뿐만 아니라 경찰까지 접대했다며 고소장을 검찰에 냈는데 결국 재판을 통해 부검의가 시신을 알선하는 대가로 33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장례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들과 시신을 운구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 관련된 모든 업자들 사이의 유착 의혹이 거듭되고 있다. 고인이 의료기관 외 지역에서 사망했을 경우, 시신을 인근 병원이나 장례식장으로 옮기고 검안 후 장례를 치르게 돼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경찰, 운구업체, 장의업체, 심지어 부검의까지 유착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유족 입장에서는 처음 이송된 장례식장에서 다른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현장에 누가 먼저 도착해 어느 병원, 장례식장으로 이송하는지가 중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시신은 옮길 때마다 돈이 든다고 보면 된다. 통상적으로 시신 운구비용은 한 건당 20만 원 정도다. 제일 처음 현장에 도착한 운구업체가 시신을 옮기게 되는데, 결국 정보력 싸움이다. 사망 장소가 어딘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119 도청도 하고 경찰 로비도 하고 하는 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밥값’ 하라며 장례식장에 흰 봉투를 들고 다니는 업자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조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고인의 죽음과 관련 없는 이들이 돈을 버는 사이 유족들은 불필요한 돈을 내야 했다. 사망 원인이 불확실한 변사사건은 범죄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유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검안을 하고 있는데, 이 경우 경찰청 훈령인 ‘참고인비용지급규칙’에 따라 부검을 포함한 검안비는 국가가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무연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식은 국가가 연고자로부터 시신을 위임받아 장례절차를 대신하므로 시신 인수를 포기한 가족들에게는 별도의 비용이 청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들이 장례식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돈을 내기도 했다. 또한 병원 혹은 지자체 관계자가 검안비를 요구할 경우, 경황이 없는 유족들이 불필요한 돈을 내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는 것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에 따르면 지난 5월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무연고 사망자였던 동생의 장례 소식을 뒤늦게 듣고 공영 장례식장에 온 형제들에게 지자체 관계자가 “장례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며 검안비 지급을 요구했고, 결국 형제들이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돈 없어 시신 포기하는 유족
서울시립승화원에서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식이 열린다. 사진=박은숙 기자
한편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을 어렵게 찾았지만 또 다시 무연고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민간 장례식장이나 병원 안치실에 그동안의 시신 보관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 비용을 지불하지 못한 까닭이다. 시신 보관비는 병원과 장례식장마다 다르지만 하루 평균 6만~15만 원이다. 안치료와 냉동보관비를 따로 받는 경우도 있다.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연고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데까지는 보통 1~3개월 걸리므로 최대 1350만 원을 지불해야 시신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 가족 대부분이 빈곤층이라는 데 있다. 매일 15만 원씩 3개월 동안 쌓인 시신 보관비를 감당할 수 없는 유족들이 시신을 포기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이런 시스템은 결국 무연고 사망자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작동한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가족의 사망 소식을 듣고 왔다가 시신 보관비를 부담하지 못해 시신을 포기하는 분들이 상당하다. 병원에서 요구하는 금액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는 거다. 가족이 있으면서도 쫓겨나듯 무연고자 신분으로 장례를 치르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죽음마저도 돈의 논리로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비판했다. 박진옥 사무국장이 활동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은 공영장례 서비스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는 죽음조차 사회경제적 비용으로만 다루고 있다. 한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산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보인다. 누구나 애도 받을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최소한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