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 장애를 앓다 사망한 아들 아이반(왼쪽), 캐머런 총리는 당수 시절 자전거로 출퇴근할 정도로 자전거광으로 유명하다. |
캐머런은 한마디로 곱게 자란 ‘전형적인 영국 신사’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왔고, 졸업 후에는 곧바로 정계에 뛰어들어 일찌감치 정치가로 이름을 알렸다.
선천적으로 양쪽 다리에 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 이안 캐머런은 주식중개인이며, 귀족 가문 출신인 어머니 메리는 판사를 지냈다. 또한 고조부였던 이웬 캐머런은 ‘홍콩 상하이 은행’ 회장을 지내는 등 집안 대대로 금융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더욱 독특한 것은 그가 국왕 윌리엄 4세의 직계 후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엘리자베스 여왕과도 먼 친척 관계며, 어린 시절에는 앤드류 왕자, 에드워드 왕자와 함께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7세 때 버크셔주에 위치한 ‘헤더다운’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일찌감치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해야 했다. 매일 아침 7시에 기상했으며, 어린 나이에 이미 라틴어로 된 시를 달달 외워야 했다. 또한 화장실이 ‘숙녀용’ ‘신사용’ 외에 ‘운전기사용’이 따로 있을 정도로 학교에는 귀족이나 갑부 등 상류층 자제들이 주를 이루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역시 앤드류와 에드워드 왕자를 보기 위해서 종종 학교에 들르곤 했다.
그의 이런 생활은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에 입학해서도 계속 이어졌다. 영국 내 최고의 사립학교 중 하나인 이튼은 전통적으로 귀족 가문을 비롯한 상류층 자녀들이 많이 입학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윌리엄과 해리 왕자 역시 이 학교 출신이다. 이런 까닭에 이튼은 전통적으로 보수당 출신의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또한 역대 영국 장관 294명 가운데 75명이 이튼 출신이며, 총리는 이튼 출신으로는 캐머런이 19번째다.
하지만 캐머런이 이튼에서 모범적인 생활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15세 때 친구들과 마리화나를 피우다가 적발되어 자칫 퇴학당할 위기에 처했던 것. 다른 친구들이 마리화나를 팔기까지 했던 반면, 캐머런은 피우기만 해서 다행히 퇴학을 모면할 수 있었으며, 2주간 외출금지 명령과 라틴시 500줄 베껴 쓰기 등의 벌만 받았다.
2005년 보수당 당수 선거에 출마했을 때 그의 ‘마리화나 복용’이 문제가 됐었다. 당시 “마리화나를 피웠나?”라는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길 회피했던 그는 “나는 비교적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라면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어렸을 적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퇴학을 당할 뻔한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바짝 차린 그는 그 후에는 공부에만 매진했고, 결국 이튼스쿨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듬해에는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해 철학, 경제학, 정치학을 전공했다. 옥스퍼드 역시 전통적으로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명문으로, 역대 53명의 총리 중 25명이 옥스퍼드 출신이다.
▲ 지난 5월 11일 영국의 새로운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 그의 아내 사만다가 런던 다우닝 거리에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
하지만 옥스퍼드에서도 그는 ‘조용하게만’ 학창 시절을 보내진 않았다. 상류층 자녀들만 가입할 수 있는 ‘불링던 클럽’의 회원이었던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폭음을 일삼곤 했다. 특히 이 클럽의 학생들은 연미복 차림의 유니폼을 입은 채 술에 취해 레스토랑이나 호텔방 혹은 기숙사방의 기물을 부수는 악행을 일삼기로 유명했다. 가령 어떤 학생은 레스토랑 창문 바깥으로 화분을 집어 던지는 위험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렇게 파손된 기물들은 모두 며칠 안에 돈으로 보상되곤 했다.
하지만 영악했던 캐머런은 이런 생활을 오래 지속하진 않았다.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과격하고 무모한 행동을 하진 않았으며, 오히려 이런 생활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때문에 그는 보수당 당수 시절에도 이 클럽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그의 이럼 바람과 달리 2007년에는 클럽의 단체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한때 논란이 일기도 했다. 1987년 클럽의 유니폼인 푸른색 넥타이에 갈색 조끼의 연미복 차림으로 촬영한 몇몇 단체사진이 신문에 공개됐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사진이 이튼 시절의 마리화나 사건보다 더 치명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신문 칼럼니스트는 “이 사진은 캐머런이 영국인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아 했던 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면서 캐머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귀족적인 상류층 출신이란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노동당 측에서 흘린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명확한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줄곧 서민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던 그가 어떻게 총리직에 오를 수 있었을까. 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인 사만다(39)와 지난해 중증장애를 앓다가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사망한 큰아들 아이반이었다.
최연소 영부인이 된 사만다 역시 사실 귀족 가문 출신이긴 마찬가지다. 레지널드 셰필드경의 딸인 사만다는 어려서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브리스톨의 ‘웨스트오브잉글랜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캐머런과는 당시 절친이었던 캐머런의 여동생 클레어의 소개로 만났으며, 1996년 결혼했다.
하지만 그녀는 캐머런과는 사뭇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다. 귀족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 일부러 마약중독자 등 문제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거나 혹은 발목에 돌고래 문신을 하는 등 다소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 중에는 힙합가수인 ‘트리키’도 있었으며, 주말이면 줄곧 술집에서 만나 당구를 치는 등 곧잘 어울리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학교에서 그가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 데이비드 캐머런은(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대학 시절 불링던클럽에 가입해 폭음을 일삼곤 했다. |
뛰어난 패션감각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는 그녀는 한때 180㎝의 큰 키로 모델 활동도 했다. 현재 명품 문구회사인 ‘스마이슨’에서 14년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으며, 다우닝가에 입성한 후에도 내조에 전념하는 다른 보수당 정치인들의 아내와 달리 비정규직으로 계속 출근하고 있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캐머런 부부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첫째 아들 아이반을 낳은 직후였다. 아이반이 태어난 지 2주 만에 신경성 발작을 일으키는 희귀병인 ‘오타라하 증후군’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캐머런 부부는 수시로 발작을 일으키는 아들을 업고 6년 내내 병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으며, 병실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는 날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반은 6세이던 지난해 2월 결국 세상을 떠났다. 당시 아이반의 죽음은 전 영국을 슬픔에 빠지게 했다. 이례적으로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다.
장애인 아들을 키우면서 자연히 비슷한 처지의 부모를 많이 만나게 된 캐머런이 서민들의 생활과 의료서비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 상류층 사람들과만 어울려 지내던 캐머런에게 이런 서민들의 생활은 충격이었다. 그 후 그는 사회복지 서비스와 무상 국민의료서비스(NHS)의 중요성을 깨닫고 보수당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NHS의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또한 2008년에는 딸 낸시를 사립학교가 아닌 공립학교에 보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사만다는 넷째 아이를 임신 중에 있으며, 오는 9월 출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캐머런은 당수 시절 자전거로 출퇴근할 정도로 열렬한 자전거광인 동시에 늘 리무진 뒷좌석에 조깅화를 싣고 다니면서 조깅을 즐기는 등 정열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또한 록음악도 즐겨 듣는 그에게 많은 영국인들은 정치가로서 ‘젊고 패기 넘치는’ 모습 또한 기대하고 있다.
‘전형적인 영국 신사’에서 ‘서민을 챙길 줄 아는 지도자’로 거듭난 캐머런. 과연 그가 ‘젊은 영국’을 원하는 영국인들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을까. 다우닝가 10번지에서의 5년은 이제 막 시작됐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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