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정치권에서도 입법안이 줄을 잇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동제한 등 헌법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일부 법안은 ‘소급적용’까지 가능토록 하는데 이는 위헌 소지가 크다. 지난 12년 동안 손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앞 다투어 “내가 해결하겠다”는 국회의원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쇼’라고 생각합니다”며 “조두순한테 어차피 적용하지도 못하는 것을 이제 와서 한다는 것도 웃기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했다.
9월 21일 기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서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글이 4106개에 달한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안산에 살겠다는 조두순
2008년 12월 11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서 등교하던 8세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영구적인 장애를 입힌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조두순이 오는 12월 13일 출소한다. 조두순은 출소 후 자신의 거주지였던 경기도 안산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조두순은 7월 실시된 안산보호관찰소 심리상담 면담 자리에서 “사회에서 내 범행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비난을 달게 받겠다”며 출소 후 안산시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에게 사죄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안산은 여전히 피해자가 거주 중인 곳이다. 피해자 부친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처지를 호소했다. 그는 “조두순이 반성한다면서 굳이 왜 피해자가 사는 안산으로 온다는 것이냐. 조두순을 안산에서 떠나게만 할 수 있다면 내가 신용대출을 받아 (이사 비용으로) 2000만~3000만 원을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인터뷰했다.
당연히 국민적인 비판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법무부 역시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150시간, 6개월 과정의 특별 치료 과정을 통해 조두순의 출소 후를 대비할 계획이다. 또, 출소 후 7년간 전자발찌를 착용케 하고 5년 동안 ‘성범죄자 알림e’로 신상정보를 공개해 향후 문제가 될 여지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쏟아지는 입법안들
‘조두순 안산 거주’ 희망에 국민적인 분노는 거세다. 국회의원들도 여론에 편승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두순 격리법(보호수용법)’과 ‘조두순 접근금지법(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조두순 감시법(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 등을 제정해 강력범죄자들의 출소 후 생활에 제한을 두겠다는 입법안들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조두순 접근금지법은 성범죄자의 피해 아동 접근 금지 반경을 최대 1km로 넓히는 내용이 주된 발의안이다. 피해 아동 청소년의 주거지나 학교 등으로부터 가해자 또는 가해자의 대리인의 접근 금지 거리를 현행 100m에서 1km 내외로 확대하는 방안이 담겼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정 의원은 해당 법안에 대해 “(여야 통틀어) 국회의원들이 전체적으로 동의를 많이 한다”며 “11월 정도에 입법을 시작하면 (조두순의) 출소일 전에는 (관련 법안들이) 통과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성범죄자들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해 활동반경을 주거지 200m 밖으로는 아예 못 나가게 하는 ‘조두순 감시법(전자장치부착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발의됐다. 안산단원갑 출신의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안에 따르면, 전자장치 부착자들 중 19세 미만 대상 성폭행범에게는 주거지역에서 200m 이외 지역을 출입금지 시킨다. 특별한 사정에 의해 200m를 벗어나야 하는 경우는 보호관찰관이 동행하는 등의 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야간 및 특정시간대 외출금지, 주거지역으로부터 200m 이외의 지역의 출입금지, 피해자의 주거 및 학교 등으로부터 500m 이내에 접근금지 등의 조항을 위반한 전자장치 부착자에 대해서는 벌금 없는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벌칙을 상향 조정한 점도 눈에 띈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아동 대상 성범죄자를 출소 뒤 1~10년 보호수용시설에 수용해 관리하는 내용의 ‘조두순 격리 법안(보호수용법안)’을 발의할 예정이고,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세 미만 아동 대상 강간·강제추행 재범자 등을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처하게 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하는 등 여야 모두 ‘조두순’을 노린 입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조두순은 이미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한 형량을 마쳤기 때문에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해당 법안들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국회의원 가운데 일부는 ‘소급적용’을 제안했지만 이는 형평성 논란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사진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위)와 MBC 실화탐사대(아래)에서 공개한 사진을 네티즌들이 세심하게 컬러로 복원한 것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대부분 위헌 소지
하지만 법조계 반응은 차갑다. 대부분의 법안이 형사법 기본원칙에 어긋나거나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출소 후 보호수용시설에 수용·관리할 경우 헌법 상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반한다. ‘조두순 감시법(전자장치부착법 개정안)’은 헌법이 제안하는 거주 및 이동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이라 위헌에 해당한다는 게 법조계 다수의 설명이다. 주거지에서 200m 이상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사실상 가택연금에 해당,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처하게 하는 특별법안 역시 비례성을 강조한 형사법 기본원칙에 어긋난다.
게다가 해당 법안을 제정한다고 해도 조두순에 적용이 불가하다. 조두순은 이미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한 형량을 마쳤기 때문에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해당 법안들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국회의원 가운데 일부는 ‘소급적용’을 제안했지만 이는 형평성 논란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법조계가 국회를 비판하는 대목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지난 12년 동안 충분히 고민하고 추가적으로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입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제 와서 국민 여론에 편승한 ‘입법 포퓰리즘’을 행사하고 있다”며 “죄를 지은 것에 대해 형량을 마치면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올바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두순 접근금지법은 20대 국회에서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폐기된 바 있다.
‘민식이법’ 논란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11일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사망한 김민식 군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법안인데, 김 군이 사망한 지 3개월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스쿨존 내 교통사고에 대한 가중 처벌 조항 등이 이중처벌 및 과도한 처벌 논란으로 불거지면서 경찰조차도 해당 법안을 적용할 때 내부적으로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국회가 ‘입법’으로 이슈에 대응하는 ‘입법 만능주의’에 빠진 것 같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위헌 소지가 넘쳐나는 입법 경쟁이 아니라, 성범죄자 및 강력범죄자들의 출소 뒤 재범 방지를 위해 얼마나 실효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조두순과 같은 이들이 사회에 다시 제대로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올바르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