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라이브 컨퍼런스에 참석한 서영희, 김성오, 신정원 감독, 이정현, 이미도, 양동근(왼쪽부터)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TCO㈜더콘텐츠온 제공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영화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언론배급시사회 및 라이브 컨퍼런스가 열렸다. 외화의 경우 종종 진행돼 왔지만 한국 영화에서 라이브 컨퍼런스가 열린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연출을 맡은 신정원 감독과 배우 이정현, 김성오, 서영희, 양동근, 이미도가 화상으로 연결돼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제목 그대로 죽지 않는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밤새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돈 잘 벌고 자상한 남편 만길(김성오 분)과 단란한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던 소희(이정현 분)는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 어느 날, 그가 지구인이 아니라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변형한 외계인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길의 뒤를 밟아 그가 이미 세 번의 결혼 생활을 겪었고 전처들은 모두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숨졌다는 점을 파악한 소희는 여고 동창인 세라(서영희 분), 양선(이미도 분)과 함께 ‘죽기 전에 죽이기 위한’ 모험(?)을 강행한다.
이날 라이브 컨퍼런스에 참석한 김성오는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이게 뭐지?’ 싶었다”고 운을 떼 기자들 사이에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어찌 됐든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역할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며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은 소망, 그리고 신정원 감독님을 향한 믿음이 합세해 재밌게 찍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죽여도 죽지 않는 외계의 존재 ‘언브레이커블’ 남편에게 맞서는 소희와 그의 여고 동창친구 세라와 양선은 ‘여걸 3인방’으로 이야기의 든든한 중심을 지킨다. 사진=TCO㈜더콘텐츠온 제공
극중 김성오는 ‘죽지 않는 인간’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캐릭터에 걸맞게 철저한 코미디 분위기 속에서도 나홀로 공포와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오마주한 것 같은 추격 신과 극 중후반부에서부터 색을 달리 하는 그의 연기 톤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가 단순히 관객들을 웃기기만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김성오와 그야말로 달콤살벌한 결혼 생활을 보내게 된 소희 역의 이정현은 출연을 선택하게 된 계기로 “장항준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고, 신정원 감독님이 연출한다고 해서 바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정원 감독님의 ‘시실리 2km’를 너무 재밌게 봤다”며 “재밌는 영화를 봐도 제가 잘 못 웃는데, 감독님 영화는 엉뚱하게 빵 터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출연했다”고 덧붙였다.
김성오는 극중 죽여도 죽지 않는 ‘언브레이커블’ 남편을 맡아 코믹한 분위기 속에서도 공포감을 조성한다. 사진=TCO㈜더콘텐츠온 제공
양동근은 “처음에 아무 말 없이 꾹꾹 참고 있었는데, 극장에서 (보면) 그림이 장난 아니겠다 싶은 거다”라며 “처음 얘기하는데 ‘캐스팅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놀랐다), 이게 가장 큰 출연 이유”라며 동료 배우들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와 함께 깨알 같은 커플 케미를 보여준 이미도 역시 “저희가 얘기하긴 그렇지만 연기파 배우들이 모였다”고 거들어 웃음을 자아냈다.
‘연기파 배우들의 이런 조합’을 만들어 낸 데에 감독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의 연출을 맡은 신정원 감독은 독특한 개그 센스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시실리 2km’ ‘차우’ ‘점쟁이들’ 등을 통해 독보적인 장르와 스타일을 개척하면서 악명과 미명(?)을 동시에 얻어낸 그의 작품 세계는 관객들에게 깊은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입 다물고 그냥 즐겨”를 외치고 있는 것은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도 동일하다. 관객들이 입을 열어야 할 때는, 웃음이 터질 때 뿐이다.
“얼굴만 봐도 빵 터질 수밖에 없는 남자” 양동근은 극중 언브레이커블을 쫓는 흥신소 소장 역으로 개그 캐릭터를 담당했다. 사진=TCO㈜더콘텐츠온 제공
그가 거론한 젠더 이슈로부터 작품의 중심을 이끌어 나가는 ‘여걸 3인방’, 소희·세라·양선이 탄생했다. 신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아서 여자들이 더 강인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해 왔다”며 “전작도 그렇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열을 가리긴 어렵지만 극중 이 여걸들은 그 면면도 독특해서 눈길을 끈다. 겉으론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일에서 제일 먼저 나서서 달려드는 깡다구의 소유자 소희부터 3번의 이혼 경력과 특수부대 출신으로 해외 파병 경험을 가진 ‘뚝배기 크러셔’ 세라, 카리스마로는 두 동창들에게 조금 밀리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잊히지 않을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무명 배우 양선까지. 전혀 섞이지 않을 것만 같은 강렬한 캐릭터들을 3인방으로 묶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은 타고난 이야기꾼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이야기꾼과 참배우들이 만나 장르의 한계치를 향해 달리고 있는만큼 영화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기대치에 맞는 온도와 맛으로 관객들을 사로 잡는다. “이게 말이 돼?”라는 감상은 이 영화를 볼 때만큼은 넣어두자. “말이 안 돼서 신정원표 개그다.” 110분, 15세 이상 관람가. 29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