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이니 진사니 하는 벼슬아치들 중에는 실력보다 부모의 배경으로 감투를 얻어 쓴 사례들이 많았다. 자식이 입신양명하면 그 아버지, 할아버지에게도 증직(贈職)이라며 자손의 명예에 부끄럽지 않은 벼슬을 내렸다. 굳이 ‘사’자 돌림 학위가 없어도 내로라하는 집안의 족보에 이름 석 자만 올라 있으면 그럭저럭 죽어서도 학생부군(學生府君)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입신출세는 물론 좋은 일자리를 얻어 상류계층에 오르자면 족보보다는 학력이나 학위가 마패노릇을 하는 시대다. 남부러운 학력과 학위에다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일류라는 간판이 붙은 학벌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어느 저명한 원로 교육학자는 우리사회의 학력구조가 중졸이나 고졸, 대졸과 같은 교육단계에 따라 종적으로 분화한 것과 학교의 종류나 일류네 이류네 하는 위신에 따라 횡적으로 분화한 2개의 차원으로 구조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사회에서 대접받자면 고졸이니 대졸이니 하는 학력이 중요하지만 어떤 종류의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는 간판을 따지는 학벌도 학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서울에서도 강남이니 강북이니 학군을 저울질하고 특목고니 외고니 학교의 종류를 따지는 것은 같은 학력이라도 어떤 종류의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국의 법망을 피해 다니는 불법과외가 성행하고 교육감과 교장자리가 돈으로 오가는 세상이 된 것도 좋은 학교 좋은 간판만 따면 평생이 보장된다는 교육지상주의에서 싹튼 독버섯이다. 일류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옮기고 자녀의 조기 유학을 위해 기러기 아빠니 기러기 엄마니 부부가 떨어져 사는 자발적 이산가족도 마다않고 온 집안이 ‘올인’하는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과잉 교육열기가 빚어낸 기현상이다.
수도 서울의 교육감을 지낸 고명한 교육자가 불법으로 돈을 받았대서 구속되었다. 그런가 하면 교육감 선거 때 유력후보에게 뇌물성 자금을 갖다 바쳤다는 혐의를 받은 교장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과잉교육 열기가 그려낸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한답시고 교육의 틀을 바꾸고 입시 제도를 손질했지만 입시위주의 교육, 명문학교를 겨냥한 거국적인 경쟁, 거기에서 파생되는 비리 등은 여전하다. 재선경쟁에 나선 서울시장은 교육시장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서울시장의 이런 공약이 실효를 거둘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늘날 우리 교육을 좀먹고 있는 고질은 시장이나 장관 한두 사람의 힘으로 고치기엔 그 환부가 너무 넓고 깊다. 정권이 명운을 걸고 정면대응해도 해결될까 말까 한 것이 오늘의 우리 교육현장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올가미다. 더욱 답답한 일은 고르디우스 신전의 얽히고설킨 매듭을 단칼에 끊었다는 ‘알렉산더의 검’은 어디에도 없으며 이제는 힘을 앞세운 그런 왕도가 통하는 시대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광훈 언론인